이야기

나관중의 삼국지가 불후의 걸작인 이유

조정우 2010. 3. 20. 06:00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생기기 전에 쓰여진 세계 최초의 소설입니다. 비록 삼국지연의 이전에도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쓰인 글이 있지만,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지요. 
 또한 '삼국지연의'는 현대소설과 비교해도 사실성이나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고,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까지 탁월해서 문학 역사상 최고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문학 역사상 최고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손색없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당시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관중의 천재성은 톨스토이를 능가할지도 모르지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세계 최초의 소설이자, 세계 최소의 심리소설이기도 합니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심리소설 못지 않게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버지니아 울프의 심리소설같은 현대의 심리소설과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는 문학 역사적으로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지요. 

 아마도 나관중은 심리학자에 못지 않게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유비, 관우, 장비의 대사에서 지혜로운 제갈공명과 패기찬 주유의 대화를 보면 마치 등장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하고, 나관중이 창의한 이야기조차 사서에 기록된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지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너무나도 그럴듯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역사로 알고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삼국지연의의 50% 이상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내용으로 나관중의 상상력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 이야기,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준 이야기, 제갈공명이 무방비 상태에서 칠현금을 연주하여 사마의가 물러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초선의 미인계, 방통의 연환계, 유비가 방통에게 자신의 말을 타게해서 방통이 화살에 맞고 죽은 이야기,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벤 이야기, 제갈공명이 조조를 속여 10만개의 화살을 얻은 이야기, 진궁이 동탁에게 쫒기던 조조를 살려준 이야기, 조조가 오해로 여백사를 죽이고 도망친 이야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수많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아 허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서에 나오지 않는 삼국지의 일화는 대부분 허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쓴 것인데,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1000년이상 늦게 태어난 나관중이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단지 나관중의 소설이 너무나도 리얼하기 때문에 진수의 정사인 '삼국지'에 누락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일들이라는 것이지요. 

 관우가 옛정 때문에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이야기도 완전한 허구입니다.
 당시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기는 했지만, 전군이 몰살당한 것이 아니고 해군만 참패한 것이기 때문에 조조군은 여전히 막강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병력이 많지 않았던 관우가 조조를 살려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최소한 수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조조가 1만도 되지 않는 관우의 병력에 무릎을 끓고 목숨을 구걸할 일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조차 조조를 정통으로 본 진수가 생략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 오늘 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는 것이지요.
 
 나관중이 창조한 허구들이 문학적인 가치가 높은 이유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들마저 사실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개연성있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온 역사책에도 '관우가 조조를 살려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관우가 조조를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관중의 소설이 너무나도 리얼하기 때문에 만들어 낸 착각이지요.
 나관중은 또한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제갈공명이 사용한 천재적인 작전 역시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나관중이 창조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지요.
 전쟁 전문가가 전쟁을 묘사했기 때문에 삼국지연의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소설속에 나오는 수많은 용병술이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니 나관중은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들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제갈공명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5만에서 10만 정도의 병력으로 위나라의 20만에서 40만 대군과 싸우면서도 위나라 병사들을 떨게 만든 제갈공명의 능력을 보면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임은 틀림없지만, 마속에게 가정의 수비를 맡겨 절호의 기회를 놓힌 점이나 1차 북벌 때 장안으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아 기회를 놓친 점 등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지적했던 문제점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기회였던 1차 북벌 때 마속이 잘못해서 패했다고 하지만, 위연이나 조자룡 같은 명장을 놔두고 마속을 기용한 제갈공명의 잘못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제갈공명은 불과 수 만 병력으로 삼진을 평정한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나 수 만 병력으로 진나라의 20만 대군을 격파한 항우와 같은 명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요.

 한신이나 항우, 백기 등의 명장이 3만 병력으로 20만 이상의 대군을 대파한 이야기를 보면 제갈공명은 명장이긴 하지만 한신이나 항우 정도의 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보면 제갈공명이 한신과 싸우면 제갈공명이 이길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제갈공명을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로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신을 보면 3만 병력으로 10만 대군도 쉽게 이긴 경우가 많았는데, 한신이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신이 3만 병력으로 조나라의 20만 대군과 싸웠을 때 조나라의 작전 참모 이좌거는 대장군 진여에게 승승장구하는 한군과 정면승부를 한다면 질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7배나 가까이 많은 병력으로도 정면승부하면 질 것이라고 하니 한신이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알 수 있게 하는 이야기이지요.
 항우 역시 수만의 병력으로 진나라의 명장 장한의 20만 대군을 대파한 일이 유명한데, 특히 3만 병력으로 한나라의 56만 대군을 대파한 일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승리이지요. 
 상대는 한나라를 창시한 유방이었다고 하니 항우가 얼마나 대단한 명장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한고조 유방도 대단한 명장이었다고 합니다.
 열배나 되는 진나라의 대군과 싸워 항우의 승리를 도왔던 명장 경포가 두려워 하는 사람이 3명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유방이었습니다.
 유방도 사실은 보기 드문 명장이었지만, 항우가 워낙에 대단하다 보니 항우에게 수없이 져서 중국 전쟁 역사상 최다패 장군이라는 우스운 말도 있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 보니 뛰어남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 유방이 항우를 기습 공격을 하기도 하고 항우와 팽팽하게 싸운 적도 있다고 합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대부분의 명장들은 역사학자들이 보기에는 유방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고 있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유방은 관우나 장비 수준의 명장이었다고 합니다.
 유방이 그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항우의 라이벌이 될 수도 없었겠지요.

 삼국지연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장비, 관우 등의 무용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는 것과 제갈공명의 작전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는 것이지만, 사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옥의 티도 될 수 있지만 삼국지연의의 매력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나관중은 소설로 제갈공명을 한신 수준의 명장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관우나 장비 등의 용장은 항우 수준의 용장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지요.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개연성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사실로 믿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등장인물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과장은 옥의 티일수도 있지만,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삼국지연의처럼 읽을 때 몰입하여 빠져든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나관중이 지어낸 것이지만, 역사학자들조차 사실로 착각할 정도의 리얼한 묘사와 인물들의 심리를 대화를 통해서 잘 드러내는 나관중의 능력은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의 천재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삼국지연의의 문학적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지요.
 나관중... 그는 어쩌면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천재적인 작가였을지도 모르지요.
 나관중의 천재성이 어떻든 간에 그의 소설은 삼국지연의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학 작품 중에 하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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