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백제 부흥 운동

조정우 2013. 6. 3. 08: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역사소설


  특별회 - 백제 부흥 운동 


김춘추 대왕의 꿈

저자
신재하, 조정우 지음
출판사
아름다운날 | 2012-09-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는 누구인가! 삼국을 통일한 민족의 영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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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식진이 포박한 의자왕과 대신들을 인솔하여 성문을 열고 항복하자, 당군과 신라군이 물밀듯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승리에 도취된 당군이 민가의 재물과 여인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웅진성은 아비규환이었다. 당군이 민가로 들어가 부녀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니 웅진성 곳곳마다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진동하였다. 웅진궁 별궁의 처소에 감금되어 있는 왕후와 금화를 비롯한 후궁들이 공포에 질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신라 병사들이 처소 안으로 들이닥쳤다. 금화가 화랑도에서 유화로 있을 때 알고 지내던 낭도들이 금화를 정중하게 호위하여 나갔다. 금화는 인문이 자신을 데리러 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별궁 밖에는 금화가 꿈에도 그리워하던 인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화는 인문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쳤다.

   "왕자 전하......"

   인문은 금화를 데리고 후문으로 빠져나가 웅진성 밖의 신라군 막사로 돌아왔다. 금화의 뺨에 격정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인문은 손으로 금화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금화야, 너를 지키지 못한 나를 부디 용서하거라. 이제 이 몸의 명줄이 붙어 있는 한, 다시는 너와 헤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왕자 전하......"

   금화는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금화가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리자, 인문이 금화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실컷 울거라. 그리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이다."

   한동안 인문의 막사에는 금화의 흐느낌 소리만 들릴 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금화의 울음이 잦아들자, 인문이 말했다.

   "내가 불민하여 네가 백제의 밀정이 되는 것을 사전에 막지 못하였으니,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다 끝난 일이니, 이제 지난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자꾸나."

   금화는 눈물을 글썽인 채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소녀, 이미 백제의 후궁이 되었사온데, 어찌 왕자 전하를 모실 수 있겠사옵니까? 또한 소녀로 인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제인들이 죽었사온데, 어찌 죄 많은 몸으로 왕자 전하를 섬길 수 있겠사옵니까? 소녀는 죄 많은 여인이오니, 소녀를 잊으소서."

   인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금화야, 지난 십년 간 너 없는 나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거늘, 어찌 다시 떠나겠느냐? 내 너를 나의 목숨보다 사랑하니, 부디 나를 외면치 말아다오."

   인문이 금화를 품에 안았다.

   "전하......"

   금화는 목이 매여 인문의 품에 안긴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후 신라로 돌아온 금화는 월정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다. 금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몸을 더럽힌 자신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고, 자신 때문에 죽은 의자왕과 수많은 백제인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평생을 비구니로 살다간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낙엽이 붉게 물든 사비궁 대전 뜰에서 당과 신라 장수 백여 명과 백제 신료들이 참석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 연회는 당 대총관 소정방이 주관한 것으로 백제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나당 장수들을 치하하고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나당 장수들은 밝은 얼굴로 술잔을 들이켜며 담소를 나누었지만, 백제의 신료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무희들의 가무로 연회장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을 때, 소정방이 춘추에게 말했다.

   "실은 오늘 이 자리에 의자와 융을 불러 대당의 대총관인 이 몸과 왕께 사죄토록 하고자 하는데, 이 몸은 대국의 신하로 곧 떠날 객일 뿐이니, 왕께서 알아서 처결하시는 것이 좋겠소."

   춘추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자는 내 딸을 죽인 철전지 원수로 오늘이 오기까지 열여덟 해를 기다렸소. 대총관께서 의자를 내게 맡겨주시겠다니, 여부가 있겠소이까."

   소정방이 명을 내렸다.

   "의자와 융을 이리로 부르거라."

   의자와 융을 비롯한 40여 명의 왕자들이 소정방의 병사들을 따라 연회장에 들어와 춘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춘추는 자신의 딸 고타소를 죽인 의자를 보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소정방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의자와 융을 꾸짖었다

   "의자는 듣거라. 천자께서 그대에게 신라와 화친하라는 명을 내렸거늘, 감히 그 명을 거역하고 신라를 끊임없이 침탈하여 급기야 신라왕의 딸과 사위를 죽였으니, 그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면 신라왕께 무릎 꿇고 사죄토록 하라! 융 그대 또한 아비를 잘 보필하지 못한 죄, 적지 아니하니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면 신라왕께 무릎 꿇고 사죄토록 하라."

   소정방의 꾸짖음에도 의자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서 있자, 춘추는 두 손을 부르르 떨며 호통쳤다.

   "네가 무고한 내 딸을 죽였거늘, 무슨 낯으로 내 앞에서 염치없이 서 있는 것이냐? 대총관께서 너와 네 자식들을 내 손에 맡기셨으니, 네가 사죄하지 아니한다면 너뿐만 아니라 네 자식들까지 죽여 너의 죄 값을 치르게 하리라!"

   의자는 그제야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춘추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였다.

   "이 몸이 부덕하여 전쟁을 일으켜 왕의 사위를 죽게 만들고 딸을 죽였으니, 그 죄를 부디 용서하여 주시오."

   의자는 백제보다 소국인 신라왕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느니 차라리 자결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춘추가 자신과 왕자들까지 처참하게 죽일까봐 사죄한 것이었다. 이어 융이 무릎을 꿇으며 고개 숙여 사죄하였다.

   "소인이 부덕하고 효심이 부족하여 아바마마를 잘 보필하지 못하여 왕께 누를 끼쳤사오니, 그 죄를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춘추가 의자에게 손가락질하며 다시 호통쳤다.

   "네가 화친하라는 천자의 명을 감히 거역하고 전쟁을 일으켜 대국과 우리 장수들을 고단케 하였으니, 대국과 우리 장수들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라 사죄토록 하라. 여기 모든 장수들에게 술을 따르되 발바닥을 땅에 대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무릎을 꿇은 채 기어서 모든 장수들의 술을 따르도록 하라. 명에 따르지 아니하면, 너를 죽이기 전에 네 두 눈을 뽑고 사지를 먼저 절단하겠노라.“

   춘추는 허리에 찬 보검을 잡으며 살기 어린 눈으로 의자를 노려보았다.

   “어서 명대로 거행하지 못할까?”

   의자가 명에 따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벨 기세였다. 의자는 소름이 돋고 오금이 저렸다. 춘추의 딸 고타소를 능지처참해서 죽인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도 똑같이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포심에 휩싸인 의자왕은 비오듯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왕의 명을 따르리다."

   의자와 융은 앞으로 나가 소정방과 춘추에게 차례로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른 데 이어 무릎으로 기어 당과 신라 장수들에게까지 술을 따랐다. 의자왕의 용포는 다 찢어져 거의 속옷차림에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신도 신지 못한 맨발이었다. 실로 일국의 왕이라 할 수 없는 비참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백여 명의 장수들에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던 의자왕의 무릎은 땅바닥을 기느라 다 까져 피가 낭자했다. 61세가 되는 의자왕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무릎으로 길 때마다 뼈마디가 욱신거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의자왕이 고통에 못 이겨 비틀거리자 춘추가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똑바로 술을 따르지 못할까. 여봐라, 저놈이 제대로 술을 따르지 못하면 가차 없이 다리 하나를 자르거라!”

   신라 병사 하나가 검을 빼 들고 의자왕을 겨누자 의자왕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장수들에게 술을 따랐다. 의자왕이 술을 따르기 위해 무릎으로 기어간 자리의 흙바닥과 자갈바닥에 의자왕의 무릎에서 흘린 피가 맺혔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백제의 신료들은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눈물을 흘렸다.

   춘추가 신라군 진영으로 돌아올 무렵, 중군 막사에서는 작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춘추가 막사에 들어오자 유신이 말했다.

   "파수병에 따르면, 연회가 열리는 동안 당군이 아군의 진영을 정찰하였다 하나이다. 이는 필시 당군이 연회 중 우리 신라군의 허점을 노려 기습하려 했음이 분명하옵니다."

   소정방은 연회 중에 신라군 진영에 허점이 생기면 기병으로 기습한 후 13만 대군을 총동원하여 신라군을 괴멸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춘추가 놀라며 말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소.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유신의 부장 다미가 말했다.

   "당군은 항상 아군을 선봉에 세우니, 아군으로 하여금 백제 군복을 입혀 기습하면, 아군에 구원을 청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때, 아군이 구원에 응하는 척하다가 기습한다면 능히 당군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백제의 전 영토를 아국에 편입한 후 고구려와 화친한다면, 당도 고구려도 감히 아국을 침략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춘추에게 말했다.

   "다미공의 계책을 따르면, 능히 당군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춘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이 원병을 보내 우리 신라를 구했는데, 도리상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유신이 춘추에게 말했다.

   "개도 주인이 꼬리를 밟으면 문다고 하나이다. 당은 우리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하며 아국을 통째로 삼키려 하온데, 어찌 은혜를 생각할 수 있겠사옵니까?"

   춘추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은 당과 맞설 때가 아니오. 백제가 아직 완전히 평정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고구려가 아국을 위협하고 있는데 당까지 아국을 정벌하러 나선다면, 소국인 우리 신라가 어찌 세 나라를 당해낼 수 있겠소? 당의 손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연후에 당을 상대해야만 하오. 당이 먼저 도발해오지 않는 한, 우리가 참아야 하오."

   춘추는 일찍부터 삼한을 통째로 삼키려는 당의 야욕을 알았지만, 당을 이용하여 삼한을 통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춘추의 말을 들은 유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연회에서 의자왕이 왕자 융과 나당 장수들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르는 모습에 비분강개한 임존성주 흑치상지는 부하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사비성을 탈출하였다. 임존성으로 돌아온 흑치상지는 병사들을 모아 백제를 정복한 나당군에 반기를 들었다.

   "나당군이 항복한 우리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하며 부녀자 강탈을 일삼으니, 대장부가 어찌 이를 좌시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는 저들이 감히 어라하를 무릎 꿇려 나당 장수들에게 술을 따르시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늘, 신하로서 주군이 능멸당한 것을 보고도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용맹스러운 백제의 용사들이여, 모두 분연히 일어나 나당군을 몰아내고 나라의 주권을 되찾자!"

   백제 왕족인 흑치상지가 백제 부흥군을 조직하여 반란의 기치를 내걸자, 10여 일만에 수만의 병력이 임존성으로 몰려왔고, 주류성, 두시이성 등 20여 성이 반란에 동참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의자왕의 사촌동생 복신이 임존성에 당도하자, 흑치상지는 복신을 백제부흥군의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장군께서는 어라하의 사촌동생이시니, 마땅히 부흥군의 대장군이 되어 백제 부흥에 앞장서주소서."

   올해로 예순인 복신은 무왕 때부터 명성을 떨친 백전의 명장으로, 여러 차례 사양한 끝에 부흥군의 대장군에 취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춘추는 제장들을 소집하여 명을 내렸다.

   "백제 잔당들이 의자왕의 사촌동생 복신을 앞세워 반기를 들었으니, 저들이 세력을 키우기 전에 섬멸해야 백제를 온전히 평정할 수 있을 것이오. , 백제 잔당들의 근거지 임존성으로 출정할 터이니, 조속히 채비토록 하시오."

   춘추가 유신과 함께 전군을 이끌고 임존성으로 향하자, 소정방은 신라군에 공을 빼앗길까봐 10만 대군을 이끌고 임존성으로 향했다. 임존성은 비탈진 산에 세운 난공불락의 요새라 10여 일 간의 맹렬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 백제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키자, 춘추와 소정방은 사비성이 공격당할 것을 우려하여 각각의 병력을 이끌고 퇴각하였다.

   나당군이 퇴각하자, 좌평 정무가 복신에게 말했다.

   "승세를 몰아 추격하여 끝장을 보는 것이 어떻겠소?"

   "적군은 아군보다 다섯 배 가량 많을 뿐만 아니라 유신은 천하의 명장이니, 싸운다면 필시 아군이 패할 것이오."

   주류성주 도침이 복신에게 말했다.

  "허면 어찌할 작정이오? 어라하께서 사비성에 인질로 잡혀 있으시니, 사비성으로 진격하여 어라하를 구해야 할 것이 아니오?"

   복신은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비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적군은 이십만에 이르는 대군인데, 수만에 불과한 아군이 사비성으로 진공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다름이 없소. 더구나 천하의 명장 유신을 상대로 어찌 요행을 바랄 수 있겠소? 만약 아군이 사비성 수복에 실패한다면, 적들이 아군을 경계할 터이니, 사비성을 수복하기가 요원해질 것이오."

   도침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어라하께서 적들의 손에 잡혀 있으니, 신하 된 우리가 목숨을 걸고 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오?”

   복신이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숨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아니하나, 우리 부흥군이 패망하면 누가 백제의 사직을 일으켜 세우겠소?"

   정무가 도침을 보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가지 아니하시겠다면, 우리끼리라도 갈 것이니 그리 아시오."

   도침과 정무가 떠나자, 복신은 크게 탄식하였다.

   "사비성의 방비가 허술할 때 들이친다면 능히 수복할 수 있거늘, 오히려 적들로 하여금 경계토록 하니, 이는 적을 돕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깝구나!"

   복신의 예상대로 도침과 정무의 1만여 병사들은 나당군에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퇴각하였다. 당군은 군량이 바닥나자, 의자왕을 비롯한 수만의 포로를 이끌고 당으로 철군하였다. 의자왕은 늙고 심신이 쇠약해진데다 일국의 군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한 터라 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당나라로 끌려가는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