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불멸의 신화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7. 25. 08:00

  이순신 불멸의 신화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이순신 불멸의 신화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4-07-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의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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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즉시 제장들을 진해루로 소집하였다. 제장들이 모두 좌정하자, 이순신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몸이 제장들을 부른 것은 경상우수사가 청병 서신을 보내왔기 때문이오. 그대들도 알다시피, 이미 경상도의 바다는 왜군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소. 경상우수영군은 거의 궤멸되어 우리 전라좌수영군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나, 아직 조정으로부터 경상도로 출격해도 좋다는 명이 내려지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해야 할지 그대들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시오."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란이 발발한 이래 조선군은 일본군을 단 한 차례도 이긴 적이 없었다. 조총 소리만 나도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조선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경상도로 출병해도 좋다는 조정의 허락이 없어 자칫 싸워 이기고도 전라도의 수군이 경상도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죄를 추궁당할 수 있는 실정이었다. 제장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때 팔척 장신의 장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땅히 출병해야 하오! 왜적들이 우리 조선땅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는데, 어찌 조정의 명이 없다 하여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왜적들의 함선이 천 척이라 한들, 우리 전라좌수영군이 죽기로 싸운다면 능히 당해낼 수 있을 것이외다. 때마침 서남풍이 불고 있으니 조수를 타고 나가면 하루 안에 경상도에 당도하지 않겠소이까."

   녹도 만호 정운은 이순신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였다. 성격이 다혈질인 것이 다소 흠이지만, 용맹에 있어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다. 광양 현감 어영담이 정운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말했다. 

   "그렇소. 바람도 우리 편이니 지금이야말로 왜적들에게 우리 조선 수군의 매운맛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소?"

   올해로 예순한 살인 어영담은 남해안의 지리를 자신의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어영담의 말이 끝나자, 순천 부사 권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경상도로 출병할 때가 아닌 줄로 아오. 첫째, 경상도로 출병해도 좋다는 조정의 명이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경상도로 출병하는 것은 조정의 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둘째, 아직 전라우수영군이 당도하지 아니하였는데, 전라좌수영군 단독으로 천 척이나 되는 왜의 수군을 상대하여 만에 하나라도 패한다면 그 화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소이까? 허니 경상도로 출병하라는 조정의 명이 떨어지고, 전라우수영군이 합류한 이후에 출병하는 것이 만전의 계책이 아니겠소이까?"

   올해로 쉰두 살인 권준은 항상 만전의 계책을 강구할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었다. 여기저기서 권준의 말에 찬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부사의 말씀이 옳은 듯하오."

   정운의 군관 송희립이 흥분해 시뻘게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왜적들의 손에 온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무엇을 더 기다린단 말이오? 조정의 명은 출병 후에 나중에 보고 하면 될 것이요, 우리 조선 수군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죽기로 싸운다면 왜선이 천 척이라 한들 못 당할 리가 있겠소?" 

   송희립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권준의 말에 찬성한 장수들이 기가 죽을 정도였다. 불혹의 나이인 송희립은 용맹하기가 범 같을 뿐 아니라 지략도 뛰어나 이순신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낙안 군수 신호가 일어나 말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조정의 명도 없고, 전라우수영군도 오지 아니하였는데, 섣부르게 병력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좀 더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 

   올해로 쉰셋인 신호는 전투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이었다. 신호의 말에 여러 장수들이 맞장구를 쳤다. 

   "낙안 군수의 말씀이 옳소이다. 조정의 명이 떨어지고, 전라우수영군이 당도한 후에 출병하는 것이 순리인 듯하오."

   출병에 찬성하는 목소리보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순신의 귀에 더 많이 들려왔다. 바로 그때, 정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분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수사 영감, 소장은 이만 가보겠소이다! 장수들이 출병하지 아니하겠다면 우리 녹도의 병사들만이라도 출병하겠소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싸움을 회피하려는 듯한 장수들의 태도에 정운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운은 마치 당장이라도 출병할 듯한 기세였다. 정운이 자리를 뜨려 하자, 이순신이 손을 들어 만류하였다. 

   "정만호, 자리에 앉으시오."

   정운은 위엄서린 이순신의 말을 차마 거역할 수 없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모두 들으시오! 이제 내가 결단을 내릴 참이오!"

   이순신의 우렁찬 목소리에 좌중이 숙연해졌다. 순간 이순신이 장검을 뽑아들었다. 장검엔 '三尺誓天 山河動色'(삼척서천 산하동색 - 석자 검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떠는도다)이라 쓰여 있었다. 이순신이 장검을 높이 치켜들자, 시퍼런 검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이때에 나라의 국은을 입은 장수가 어찌 나가 싸우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전라좌수영군은 경상우수사의 청병에 응해 경상도로 출병할 것이다. 제장들은 오월 초하루까지 각각의 병선과 병력을 이끌고 전라좌수영 앞바다로 집결하라! 군법이 한번 내려지면 거둘 수 없는 법, 군법을 어기는 자는 이 검으로 베리라!"

   23전 23승, 이순신의 해전 신화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5월 초하루,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바다에는 남풍만 거세게 불고 있었다.

나쁜 날씨로 인해 출병을 연기한 이순신은 진해루에서 녹도 만호 정운, 순천 부사 권준, 방답 첨사 이순신, 흥양 현감 배흥립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바람이 이처럼 불면 함선이 좌초될 수 있는데, 내일은 날씨가 좋으려나......"

   정운의 푸념섞인 한마디에 별안간 이순신의 시선이 굴강에 정박되어 있는 거북선을 향했다. 거북선을 큰 바다에서 시험 항해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불과 열흘 전 20여 문의 지자포를 장착한 거북선의 시험 항해는 여수 앞바다에서만 몇 차례 했을 뿐이었다. 이순신은 생각에 잠긴 채 거북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 출병에 거북선은 출전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이런 이순신의 마음도 모르고 배흥립이 거북선을 향해 엄지를 치켜 세우며 말했다. 

   "거북선이야말로 천하무적이옵니다. 거북선이 선봉에 선다면 왜의 함선 수백 척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능히 격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번 출병에 거북선을 출전시키지 아니할 생각이네."

   실로 뜻밖의 이순신의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답 첨사 이순신(입부 이순신李純信으로 이순신李舜臣과 동명이인)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아니, 수사 영감, 거북선을 출전시키지 아니하다니요, 대체 연유가 무엇이오?"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왕족인 입부(李純信의 자) 이순신은 누구보다 이순신(李舜臣)을 존경하고 따랐지만, 왕족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인지 이따금 자신의 상관인 이순신(李舜臣)에게 언성을 높이곤 했다. 이순신(李舜臣)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거북선은 시험 항해를 좀 더 한 연후에 출전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권준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수사 영감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나, 조선 수군이 왜의 수군에 비해 열세인데, 거북선마저 없다면......"

    권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순신이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의 승패는 병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졸들의 마음에 있는 것임을 모른단 말이오?"

   이순신의 나무라는 말에 누구도 항변할 수 없었다.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이순신은 말없이 탁자에 있는 술병을 들어 입부 이순신, 권준, 정운, 배흥립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마침내 정적을 깨고 이순신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순신과 그대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오."

   이 한마디에 입부 이순신, 권준, 정운, 배흥립이 숙연해졌다. 또 다시 정적이 흐르고 나서 정운이 술을 벌컥 단숨에 마시고는 우렁차게 말했다. 

   "나 정운은 수사 영감과 함께라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아니하리다!"

   마음이 통한 것일까. 그들 모두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나대용이 이순신의 처소를 찾아왔다.

   "수사 영감께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출병 차비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샌 이순신은 이제야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너라."

   이순신에게 인사를 하고서 나대용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거북선이 출전하지 아니하다니요. 어찌 그런 명을 내리셨사옵니까?"

   지난 1년간 주야로 연구해 전란 하루 직전에 거북선을 완성한 나대용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이었다. 나대용의 말에 이순신이 깜빡 했다는 듯 무릎을 쳤다.

   "내, 어제 자네에게 명을 전하려 하였으나 공무에 분주하여 그만 잊었구나! 미안하네."

   "거북선이 출전하지 아니하는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소인을 믿지 못하시는 것이옵니까?"

    이순신은 한숨을 내쉴 뿐 말이 없었다. 나대용이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북선이 침몰한다면 소인의 목을 내놓겠사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소서."

    한동안 침묵하던 이순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북선이 침몰한다면, 네 목 뿐만 아니라 내 목과 전라우수사의 목도 떨어질지 모르거늘, 좀 더 시험 항해를 해본 연후에 출격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겠느냐?"

   나대용은 할 말을 잃었다. 조정에는 이순신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만에 하나라도 거북선이 침몰한다면, 조정은 이를 빌미로 이순신의 목을 자르려고 하지 않을까. 이 생각이 미치자 나대용은 등골이 오싹했다. 나대용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사 영감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소인,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나대용이 처소를 떠나자, 이순신은 생각에 잠겼다. 

    '거북선은 한낱 병기에 불과하거늘, 장수들조차 거북선을 이토록 의지하다니......'

    장졸들이 자신의 용맹보다 거북선을 의지한다면, 거북선 추가 건조는 득보다 실이 크리라. 이번 출병 만큼은 거북선없이 싸우는 것이 최상책일 듯싶었다. 기실 이순신은 왜적을 무찌를 자신이 있었다. 왜적들의 주력 무기인 조총은 석치 두께의 나무방패도 뚫을 수 없었고, 왜적들의 주력 함대인 세키부네는 대포를 장착할 수 없었다. 왜적들의 대함선인 아타케부네조차 들보에 매어야 한두 개의 대포를 장착할 수 있었다. 왜적들은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 왜적들의 약점을 파고든다면 능히 이기고도 남으리라. 

    오시 무렵, 이순신은 진해루에 올라갔다. 이날따라 하늘이 청명하게 맑았다. 이순신이 남해안 지도를 보며 작전을 세우고 있을 때, 전령기를 든 병사가 이순신 휘하의 병사와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삼도 순변사의 전령이옵니다."

   탄금대의 싸움에서 전사한 신립에 이어 삼도 순변사가 된 이일이 전령을 보낸 것이다. 이일의 전령을 받은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씁슬한 미소를 지었다. 수년 전, 북병사(함경도의 북병영에 둔 병마절도사)였던 이일은 녹둔도 전투에서 조선군이 중과부적으로 여진족에게 패하자, 당시 조산 만호였던 이순신에게 패전의 책임을 전가하여 백의종군토록한 장본인이었다. 

   전령을 펼치는 순간, 이순신은 충격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믿었던 신립이 탄금대에서 참패하여 한양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아닌가! 

   '신립 장군의 기병대가 탄금대에서 궤멸당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소. 한양 사수의 명을 받은 전라순찰사가 전라좌수영의 순천 부사 권준을 차출할 것을 청하였으니 즉시 차출에 응하시오.'

   조정으로부터 한양을 사수하라는 명을 받은 전라순찰사 이광이 자신의 옛 부관인 권준을 차출한 것이다. 이순신이 전령병에게 물었다. 

   "김여물 장군은 어찌 되셨소?"

   "전사하였사옵니다."

   전령병의 말에 이순신은 절망섞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찌하여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김여물 장군은 천하의 인재이거늘, 전사하였다면 신립 장군이 김여물 장군의 작전을 따르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권준은 나의 한쪽 팔과도 같은 사람이거늘, 차출한다면 권준의 빈자리는 어찌 한단 말인가!'

    조정의 명에 따르는 도리 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권준을 불러 전령을 보여주었다. 권준이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을 듯하옵니다."

    이순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라의 사직이 위태로우니 속히 가보게나. 차후에 조정에 장계를 올려 다시 부르겠네."

   권준은 이순신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진해루를 떠났다. 점점 멀어져가는 권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준을 차출한 이광은 무인이 아니라 문인이었다. 이순신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인인 이광이 한양을 사수할 수 있을까. 권준의 빈자리는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나라 걱정으로 상념에 잠긴 이순신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원했다. 

   '하늘이시여, 부디 이 나라의 사직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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