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조정우 역사소설 7월 출간!

조정우 2014. 6. 30. 08:00

   오늘이 다음뷰 서비스가 끝나는 날이네요. 

   뭔가 아쉬운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 글을 계속 발행할 생각입니다. 

   비록 다음뷰 서비스는 끝나도, 새로운 방식의 추천과 새로운 방식의 블로그 지원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다음을 모바일로 접속할 때 스토리로 가면 바로 블로그 서비스가 나오더군요. 

   다음뷰 서비스가 끝났다기 보다는,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 사실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가 하루 10명도 안되어 거의 방치된 상태인데, 계속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 블로그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실은 며칠 전에 저의 신작소설 이순신을 출간 계약을 맺었습니다. 

   요즘 '명량'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던데, 저의 소설 '이순신'도 관심 부탁드립니다.

    7월에 출간 예정인데, 성원 부탁드려요. 

    그간 이 소설을 집필하느라, 이웃 블로거님들께 인사도 못드렸군요. 

    아직 수정할 부분이 있어 지금도 마음은 바쁘지만 그래도 계약을 맺어 한숨은 돌렸습니다. 

   다음뷰 서비스가 끝나기 전에 이웃블로거님들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사실 제가 소설가로 데뷰할 수 있었던 것이, 이웃블로거님들의 격려와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2009년부터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했는데, 여러 이웃블로거님들께서 재미있다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기자셨던 이웃블로거님이 많은 격려를 보내셨는데, 요즘은 블로그를 안하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웃블로거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결정적인 동기는, 오래전부터 이순신 장군께서 어떤 전술로 세계 역사상 전후무후한 불패의 신화를 이루셨는지,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는데, 그 부분을 만족시켜 주는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소설의 경우,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에 대해 대략적이라도 묘사한 소설이 없는 것 같아,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등의 해전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이 있어, 이 소설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쓰여진 것들, 즉, 이미 알려진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강강술래가 명량해전의 허허실실의 전술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래전부터 이순신 장군께서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추게 하여, 허장성세 전술로 왜군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노래 가사도,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도 우수영은 강강술래 우리 장군 대첩지라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장군의 높은 공은 강강술래 천추만대 빛날세라 강강술래......"

    저 나름대로의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겠습니다. 

    명량해전 중, 부녀자들이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도 우수영은 강강술래 우리 장군 대첩지라 강강술래~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면, 왜군은 명량 해안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지례 겁을 먹고, 명량에 상륙해 조선 수군의 진영이 있었던 우수영을 불태워 조선 수군의 근거지를 없애려던 계획을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명량 해전이 있었던 날, 일본은 명량 서쪽 해안에 상륙했고, 의병들이 싸워 상륙한 왜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그리고, 명량해전 이전에 대규모의 일본군이 전라우수영 방향으로 진격했지만, 즉,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기상으로 볼 때 전라우수영으로 진격하려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의병들의 활약에 막혔다고 하는군요. 

   지면상의 문제로 명량해전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치겠습니다. 

   

   제가 처음 이순신을 쓸데, 주변의 여러분들이, 이순신의 이야기는 너무 알려져, 매리트가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명량해전의 이야기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특히, 해전에 대해서는 아직도 대략적인 추측만이 있을 뿐, 이순신 장군께서 어떻게 이기셨는지 정확히 모르는 부분이 많아 해전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다면 어떨가 하는 생각했습니다. 

   도화선의 길이로 폭발시간을 조절하는, 일종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200여개의 산탄이 쏟아지는 조환란, 등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사용한 무기에 대해 조사했는데,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파괴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 대한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께서 학익진이나 일자진을 주로 사용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이순신 장군께서 가장 많이 사용한 전술 중 하나가 장사진과 정자진입니다. 

   우선 잘 알려지지 않은 정자진을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일자진은 옥포해전, 즉, 이순신 장군의 첫번째 해전에서 쓰인 전술로, 사천해전부터 거북선이 몇 척의 판옥선과 함께 선봉에 나서 공격했기 때문에 사천해전부터 쓰인 전술은 일자진이 아니라 정자진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정자진은 영어로 T자와 비슷해 T자진이라고도 하는데, 선봉이 중앙에서 적의 중앙을 찌르는 동시에, 후위는 길게 늘어서 공격하는 전술로, 사천해전 당시 거북선이 한 척 밖에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설령 당시 거북선이 두 척이나 세 척이라 해도 적군을 포위할만한 함선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마도 정자진을 썼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학익진은 포위전술로 항상 학익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일부 역사학자나 소설가들이, 이순신 장군이 항상 학익진만 쓴 것처럼 묘사하고 있더군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께서 옥포해전부터 학익진을 썼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던데, 포위전술인 학익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처음으로 학익진을 사용한 것은 한산대첩이 맞습니다. 

   당항포해전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 장군이 가세한 삼도 연합군이 일본 수군을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학익진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포위했다고 학익진은 아닐 듯 싶습니다. 

   제 소설을 보신다면, 이러한 오류들을 아시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 중심이 된 저의 신작 소설 '이순신'이 7월말에 출간될 예정인데, 이웃블로거님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연재 글 : 성웅 이순신 2화 조정우 역사소설 (7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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