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칠숙의 난 (최종회)

조정우 2012. 12. 30. 09: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역사소설

 

 

   특별회 - 칠숙의 난 (최종회)

 

  

   이 시각 칠숙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양궁과 사량궁을 장악한 호성장군 진주는 병사들을 이끌고 대궁을 포위하고 있었다. 전임 우방화랑이었던 진주는 부제 예원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화랑도를 뛰쳐나와 칠숙의 편에 귀의하여 호성장군에 임명되었기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자 부득이하게 가담한 것이었다. 진주가 내성사신 알천이 철통처럼 지키는 대궁에 총공세를 퍼붓고 있을 때, 칠숙이 남산신성에서 흠순이 이끄는 화랑군에 패하여 월성으로 퇴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주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이제 역적으로 몰리게 생겼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진주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칠숙이 겨우 천여 명 남짓한 병사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들어왔다. 진주가 수심에 찬 얼굴로 칠숙에게 물었다.

   "칠숙공, 이제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칠숙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대궁에 옥새가 있소. 대궁만 장악하면 조서를 위조하여 보로왕자를 왕위에 내세울 수 있으니,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소. 헌데 왕후께서는 어디 계시오?"

   "대궁에 계시옵니다. 왕후께서는 폐하를 간병하시느라 줄곧 대궁에 계셨사옵니다."

   "왕후께서 옥새를 쥐고 계시니, 우리가 대궁을 장악하면 대사를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허나 유신이 경외병을 이끌고 오고 있다고 하니, 속히 대궁을 장악하여야 하오. 이제부터는 내가 작전을 지휘하겠소."

   "칠숙공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대궁을 장악할 좋은 방책이 있사옵니까?"

   "대궁을 지키는 장수들 중 알천만이 뛰어나니, 성동격서의 전술로 협공한다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오."

 

   대전의 처소에서 인사불성 상태인 진평왕을 간병하던 승만왕후는 칠숙이 남산신성에서 덕만공주의 무리들에게 패하여 왕궁으로 퇴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보로는 왕이 될 운이 없는 모양이구나! 이제 보로까지 화를 당하게 생겼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승만왕후는 보로를 태자에 세워달라는 자신의 청을 거절했던 진평왕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벌써 며칠째 인사불성 상태이온데 아직도 멀쩡히 살아계시오니, 폐하께서는 참으로 명줄이 질기시옵니다.'

   순간 승만왕후의 마음속에 살의가 생겼다. 지금 진평왕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만 있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음이었다. 승만왕후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를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호흡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임금의 명줄을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끊어놓을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승만왕후가 베개로 진평왕의 얼굴을 누르려는 순간,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한참을 망설이다 그만 베개를 내려놓고 말았다. 주름진 진평왕의 얼굴을 본 승만왕후는 그런들 내 손으로 죽이기까지 해야 하나라는 연민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승만왕후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내가 폐하를 시해하려 하다니, 미친 게로구나! 나의 모든 꿈이 일장춘몽이 되었으니,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승덕아, 이 어미도 너의 뒤를 따라가고 싶구나!'

   승만왕후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대궁의 수비를 맡은 내성사신 알천은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명장으로, 일천 남짓한 병사로 수천의 적들을 대적하고 있었다. 칠숙이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며 대궁의 문에 총공세를 펼치자, 대궁의 정문을 지키는 수비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방어했다. 일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을 때, 갑자기 대궁의 후문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칠숙이 대궁의 관문에 총공격을 퍼붓는 동안 진주가 병사들을 이끌고 대궁의 후문을 공격하여 수비망을 뚫었던 것이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알천은 시위들을 이끌고 후문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후문은 진주가 이끄는 칠숙의 병사들이 점령한 후였다. 칠숙의 병사들이 후문을 장악하자 정문을 지키던 시위들은 크게 동요했. 마침내 후문에서 들이친 칠숙의 병사들이 정문의 앞뒤로 공격을 해대자 정문마저 칠숙의 병사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알천은 다급하게 명을 내렸다.

   "모두 대전으로 퇴각하라!"

   칠숙의 병사들이 대궁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승만왕후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서 인사불성이시니, 칠숙공이 대궁을 장악하면 조서를 내려 보로를 태자로 세우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칠숙의 병사들이 대궁의 후문과 정문을 장악할 무렵, 덕만공주가 춘추, 흠순과 함께 화랑군과 남산신성의 병사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이때 흠순과 나란히 말을 몰고 가던 춘추는 갑옷을 입은 흠순의 모습이 유신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춘추는 흠순의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흠순공, 나에게 칠숙의 무리를 깨뜨릴 좋은 방책이 있소이다."

   "무엇이오?"

   "공을 보니, 공의 형님이신 유신공과 쏙 빼닮았구려. 공이 쌍검을 든다면 모두들 공을 유신공이라 생각할 터이니, 아군이 경외병의 깃발을 들고 진군한다면 칠숙의 무리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오."

   "좋은 방책이오."

 

    대전에서 칠숙의 병사들과 알천의 병사들이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고 있을 즈음, 5천은 족히 되어 보이는 군마가 경외병의 깃발을 펄럭이며 왕궁에 이르렀다. 경외병으로 위장한 덕만공주의 병사들이었다. 맨 앞 열에서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흠순은 양  손에 쌍검을 치켜들며 유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외쳤다.

   "항복하라! 나 유신이 경외병을 이끌고 왔다!"

   이어 흠순의 옆에 있던 덕만공주가 외쳤다.

   "나 덕만공주가 너희들 모두에게 약조하겠다. 항복하면 모든 죄를 불문에 붙이겠다. 항복하라!"

   왕궁 정문의 수비를 맡은 만덕은 춘추의 종숙부인 염장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오른 자로, 흠순의 외침과 덕만공주의 회유를 듣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어찌 천하의 유신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만덕은 고심 끝에 정문을 열었다. 정문이 열리자 화랑의 낭도와 병사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승만왕후가 칠숙이 병사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알천이 보낸 시위 하나가 달려 들어와 아뢰었다.

   "왕후마마, 칠숙의 무리들이 대전으로 들어왔사옵니다. 소신들이 목숨을 바쳐 폐하와 왕후마마를 지킬 것이오니, 심려치 마소서!"

   승만왕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대들만 믿겠소."

   대전의 뜰엔 시위들과 칠숙의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하였다. 천의 시위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니 칠숙의 병사들은 좀처럼 대전의 수비망을 뚫을 수 없었다. 대전의 입구에서 시위들과 칠숙의 병사들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석품이 병사들을 이끌고 말을 몰아 달려왔다.

   "칠숙공, 큰일 났사옵니다. 유신이 왕궁의 정문을 장악한 후 대궁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칠숙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유신의 경외병이 오려면 한나절은 걸리거늘, 어찌 벌써 당도할 수 있단 말인가? 필시 위장술일 것이다."

   석품은 자신의 두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인이 이 두 눈으로 유신을 똑똑히 봤사옵니다."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던 칠숙은 순간 유신의 아우 흠순이 유신을 닮은 사실을 떠올렸다.

    "유신이 아니라 유신의 아우 흠순일 것이다."

    이때 사방에서 우레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덕만공주가 총공격을 명한 것이다. 그러자 덕만공주를 따르는 화랑의 낭도들과 병사들이 질풍노도의 기세로 대궁의 성벽을 향해 돌진하였다.

   "막아라!"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칠숙의 병사들은 대전을 점거하기는커녕 대궁을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칠숙의 병사들이 대전에서 물러가자, 알천은 시위 수백여 기를 이끌고 후문을 기습하여 장악하였다. 후문이 열리며 덕만공주를 따르는 낭도들과 병사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흠순이 용화향도를 앞세워 정문에 맹공을 퍼붓자, 정문마저 열렸다. 대궁 안으로 들어온 흠순은 쌍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항복하라! 나 경외대장 유신이 경외병을 이끌고 왔다!"

   쌍검을 치켜든 흠순의 모습은 유신과 아주 흡사하였기에 칠숙의 병사들은 정말 유신이 경외병을 이끌고 온 줄 알고 전의를 상실하였다. 춘추와 함께 대궁으로 들어온 덕만공주는 알천의 인도를 받아 대전 위로 올라가 외쳤다.

   "항복하라! 항복하면 모든 죄를 불문에 붙이겠노라! 나를 따르고자 하는 병사들은 모두 오른쪽에 서라. 그리고 무기를 버려라!"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칠숙의 병사들은 덕만공주의 외침을 듣고는 서로 앞 다투어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요하지 마라! 저자는 유신이 아니라 흠순이다! 저들은 경외병이 아니다!"

   칠숙이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유신이 경외병을 이끌고 모든 상황을 평정하리라 생각한 칠숙의 병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태반이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무기를 버리고 말았다. 칠숙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수십의 가복들과 함께 대궁의 정문으로 내달렸다. 이때 칠숙의 편에 가담하여 소판의 지위에 오른 염종이 수백의 가복들을 이끌고 칠숙에게 다가왔다.

   "염종공, 나를 엄호하여 주시오!"

   염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검으로 칠숙을 가리키며 외쳤다.

   "역적 칠숙을 추포하라!"

    염종의 명이 떨어지자 그의 가복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칠숙을 사로잡아 포박하였다.

   "염종공이 어찌 나에게 이러실 수 있소이까?"

   염종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이 몸은 왕후마마를 따랐을 뿐, 칠숙공을 따른 것이 아니었소. 임영리공, 대인공도 모두 태자마마께 충성을 바치기로 하였으니, 이제 체념하시구려."

   승만왕후를 따르던 상대등 임영리와 병부령 대인마저 덕만공주의 편이 되었다는 염종의 말에 칠숙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복들이 자신을 구하려 달려들자 그들에게 외쳤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가복들이라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의 가복들은 모두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임금의 자리를 꿈꿨던 칠숙의 난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출판사와의 협약으로 일부만 하이라이트로 발췌하였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