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대왕의 꿈, 정통 사극의 부활을 예고했다!

조정우 2012. 9. 9. 10:00

   지난 5월 광개토태왕이 끝난 후, 무려 4개월간, 오랫동안 뜸들여 왔던 KBS대하사극, '대왕의 꿈'이 반민족적이라는 나당동맹에 반대하는 김유신의 무혈봉기로 서막을 열었습니다.

   나당동맹으로 우리민족이 만주의 광활한 영토를 잃고, 한반도의 소국이 된 천추의 한이 된 역사가 있기에, 드라마틱한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왕의 꿈이 정통사극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절대 있었을 리가 없는 김유신의 거병으로 서막을 연 것 같습니다.

   검을 뽑아든 김춘추와 김유신, 어떻게 될까 하는 순간, 때는 609년, 그러니까, 김유신이 15살에 화랑도에 입문했던 것으로 알려진 해로 시간 이동을 하더군요.

   김유신이 주인공인지 김춘추가 주인공인지......

   김유신이 쇠뇌 기술자들을 포로로 잡아 가려는 백제군을 단기필마로 상대하는 용맹을 떨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서라벌로 가서 영장이 이끄는 화랑의 패거리들에게 둘러싸여 난처했던 천관녀를 구하는 장면에 이르기 까지, 아직 김춘추가 어려서인지, 초반은 김유신이 사실상 주인공이더군요.

   

   광개토태왕에서 374년생으로, 385년, 겨우 12살이어야 할 광개토태왕이 성인의 모습으로 요동성에서 요동을 침입한 후연과 싸우는 장면을 연출한 전례에 비해 김유신이 화랑에 입문한 609년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해를 서두로 장식한 것을 보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 권력의 실세로 추측되는 미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랑세기를 보면, 612년 18세의 김유신을 풍월주로 추대한 것은 다름 아닌 미실로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를 위로하기 위해 당시 화랑도의 2인자, 부제인 아들 보종의 양보를 이끌어내 유신을 풍월주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때 전방대화랑인 염장, 천관녀를 희롱하던, 그가 풍월주를 유신에게 양보하라는 미실의 명에 따르지 않아 풍월주 호림공을 난처하게 했다고 하는데, 김춘추의 첫번째 아내인 보라궁주의 아버지이자, 김유신에게 풍월주를 양보한 후, 김유신에 이어 풍월주가 된 보종도 곧 나오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미실이 김유신이 풍월주가 된 612년, 화랑도의 풍월주 임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볼 때, 미실이 권력의 실세임이 분명한데, 나오지 않아 아쉽군요.

   지난 선덕여왕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활을 한 미실이기에 드라마에 잠시 등장시키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609년 김유신이 화랑도에 입문하고, 풍월주가 되고, 천관녀와 헤어지는 것이 금방 넘어갈 것이기 때문에 미실을 잠시 등장시키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 아닐지요.

   김유신과 김춘추의 소년 시절 이야기, 그러니까 609년에서 612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곧 끝날테니, 김유신과 김춘추의 소년기와 함께 사라져야하는 미실의 역할이 애매하여 등장시키지 못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통사극으로서 중요한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당시 권력의 실세였을 미실의 역활이 생략됨으로써 진지왕의 폐위를 주도한 미실의 이야기가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정권을 탈취한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쓰게 마련이라 기록된 글로만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화랑세기에는 당시 진지왕이 자신을 왕후로 삼지 않자, 미실이 문노를 비롯한 화랑들까지 끌어들여 진지왕을 폐위시켰다고 되어 있어, 진지왕은 미실이 앞장서 폐위시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미실의 이야기를 생략함으로써 사도태후가 주도한 것으로 만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태후는 진지왕의 모친으로 정말 사도태후가 진지왕 폐위를 주도했을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미실의 공백이 커보입니다.

   이전의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미실의 존재감에 주눅들어 미실의 캐릭터를 생략함으로써 스스로 자충수를 둔 셈이 되고 만 것이 아닐지요.

    기왕에 정통사극을 표방한 대왕의 꿈이, 609년을 배경으로 연출한 장면이 이 당시, 권력의 실세인 미실을 생략함으로 어쩌면 절간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도태후(사도태후는 이 당시 비구니가 되어 절에 있었다)를 친아들인 진지왕을 페위시키고, 아들의 손자를 암살하라는 명을 내리면서도 고뇌하지 않는, 피도 눈몰로 없는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대왕의 꿈이 '왕건'이나 용의 눈물'처럼 국민들의 사랑받는 정통사극으로 부활하려면, 좀 더 세심한 스토리 구성이 필요하지 않을지요.

 

   사도태후가 정말 진지왕 폐위를 정말 주도했다면, 지금쯤은 친아들인 진지왕을 폐위시킨 일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개연성이 있을텐데, 어린 김춘추를 오히려 죽이려고 하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드라마에서 사도태후를 신라를 위해 혈육마저 죽이는 냉혈한 여인으로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권력을 위해 아들마저 죽인 중국 3대 악녀라는 측천무후도 아니고, 친아들을 죽인데 이어 아무 고뇌없이 증손자마저 죽이려는 모습은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미실이 이 모든 일을 꾸미고 있다면, 말이 되는데, 미실을 빼고, 그 자리에 사도태후를 대신하려 하니, 모순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친아들을 폐위시키고, 친아들의 손자를 죽이려는 사도태후......

   대왕의 꿈이 정통사극을 표방한 만큼, 좀 더 개연성있는 전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