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천하의 명신 성충

조정우 2012. 12. 2. 08: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역사소설

 

   특별회 - 천하의 명신 성충

 

   기유년(649) , 2천여 척에 이르는 당의 함선이 서해를 뒤덮었다. 지난해 겨울, 춘추에게 원병을 약조했던 당제 이세민이 소정방을 대장군으로, 함선 2천여 척에 무려 20만 대군을 파병하여 백제 정벌에 나선 것이었다. 애초에 이세민은 수군 30만을 동원하여 고구려 정벌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춘추의 원병 요청을 받자 캍끝을 고구려에서 백제로 돌린 것이다. 이 소식이 사비궁에 당도하자, 백제 의자왕은 황급히 대전회의를 소집하였다. 좌중을 둘러보는 의자왕의 얼굴은 극도로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당이 이천 척이나 되는 함선을 동원하여 쳐들어온다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성충이 앞으로 나서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신이 아는 바로는 당 수군은 수년 전 고구려 수군 도독 연수영에게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한 이후 근래에 새로이 모집하였다 하오니, 비록 그 숫자가 많다고는 하나 아군의 장점으로 당군의 허실을 노려 맞선다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심려치 마옵소서."

   "당군을 무찌를 좋은 방책이 있소?"

   "우리 백제군은 해전에 능하여 바다에서만큼은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소신에게 당 수군을 대적할 묘책이 있사오니, 소신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근심이 가득했던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윽고 성충에게 보검을 하사하며 말했다.

   "성충, 내 그대를 대장군에 임명할 터이니, 아국의 영토를 함부로 침략한 저 무도한 당군을 섬멸토록 하시오."

 

   서풍을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항해하던 당의 수군 앞에 반경이 20리쯤 되는 커다란 섬이 나타났다. 이를 본 소정방이 섬을 가리키며 파수장에게 물었다.

   "저 섬이 덕물도(덕적도)인가?"

   "그러하옵니다."

   당 수군은 덕물도를 지나 옹천도를 경유하여 미추홀에 상륙해 사비성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어느새 옹천도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돛대 위의 전망대에서 파수를 보던 파수병이 외쳤다.

   "옹천도 정동쪽에 적선이 나타났사옵니다!"

   소정방이 옹천도 정동쪽의 수평선을 바라보니, 적지 않은 수의 까만 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점들이 점점 커지면서 서서히 배의 윤곽이 드러나자, 소정방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적선이 나타났다! 전투태세를 갖추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여 척의 백제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월진을 펼쳐라!"

   2천여 척의 당 함선이 반월진을 펼치며 포위해오자, 백제군은 직진을 펼치며 쇠뇌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 수군이 월등한 함선의 수로 포위망을 좁혀옴에 따라 백제군은 뱃머리를 반대로 돌려 퇴각하기 시작했다.

   "추격하여 섬멸하라!"

   백제 함선은 신속하게 퇴각하여 미추홀과 자연도 사이의 해협으로 들어갔다. 당의 함선이 해협으로 추격해 들어오자 백제 함선은 돌연 뱃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백제 수군의 대장으로 보이는 장수가 검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백제의 용사들이여,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싸우라! 나 의직은 오늘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다!"

   백제의 수군 도독 의직이었다. 당 수군의 진영과 백제 수군의 진영 사이가 좁혀지자, 소정방이 명을 내렸다.

   "화공이다! 불쇠뇌와 불화살을 쏴라!"

   소정방의 명이 떨어지자, 수백 척의 당 선봉군이 미추홀과 자연도 사이의 해협에 진을 백제 수군 진영을 향해 무수한 불쇠뇌와 불화살을 쏘며 돌진하였다. 당 수군이 맹렬하게 화공을 펼치자, 20여 척의 백제 함선이 화마에 휩싸였고, 불길은 때마침 세차게 불고 있던 서풍을 타고 백제 수군 진영 전체로 번져갔다.

해안으로 퇴각하라!”

백제의 함선들은 화마를 피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며 해안으로 퇴각하였다. 백제 수군이 함선을 버리고 도망치자, 당 수군은 해안까지 추격하여 백제 함선들을 침몰시켰다. 이 광경을 본 소정방이 크게 웃으며 부장 설인귀에게 말했다.

   "하하하, 아군의 단 일격에 백제 수군이 초토화되었구려! 내친 김에 미추홀에 상륙하여 도망치는 백제군을 모두 섬멸하는 것이 어떻겠소?"

   "소장이 본군에 앞서 먼저 상륙하여 길을 열까 하옵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좋소. , 설장군께 병선 이백 척을 주겠소."

   소정방의 허락이 떨어지자, 설인귀는 병력을 이끌고 미추홀 해안에 이르렀다. 설인귀의 당군이 미추홀에 상륙했을 때 멀리서 뿌연 흙먼지가 날리더니 한 떼의 군마가 요란한 수레바퀴 소리를 내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왔다. 백마를 타고 전열의 선두에서 군마를 진두지휘하는 장수는 다름 아닌 계백이었다.

   "침입자를 모두 섬멸하라!"

   1만에 이르는 백제군은 천여 대의 전차를 앞세워 당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백제군의 전차에서 쇠뇌가 비오듯 쏟아지자 설인귀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

   "방원진을 펼쳐라! 방패부대는 앞 열에서 쇠뇌를 막아라!"

   그러나 미처 진을 펼치기도 전에 백제군이 중앙을 돌파해오니, 당군의 진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진영이 무너지, 설인귀의 퇴각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당군은 서로 앞다투어 도망쳐 함선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설인귀는 퇴각 명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선봉군을 제외하고 모두 퇴각하라!"

   설인귀는 2만에 이르는 당군이 함선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결사대 수천 기를 이끌고 진을 펼쳐 백제군을 막았다. 그 틈을 타 설인귀의 당군은 겨우 퇴각할 수 있었지만, 결사대 수천 기는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기세 좋게 미추홀에 상륙했던 설인귀의 군대가 싸움도 제대로 못해보고 퇴각하자, 소정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정방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돛대 위에서 전망을 보고 있던 파수병이 서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백제 함선이 남서쪽 바다에 나타났사옵니다."

   성충이 이끄는 2백여 척의 백제 함선이 옹천도 해안에 나타난 것이다. 성충은 의자왕이 하사한 보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백제의 용사들이여! 무도한 외적들이 아국의 영토를 침략해 왔으니, 하늘을 대신하여 모두 섬멸토록 하라!"

   백제 수군은 직진을 펼치며 반월진을 펼친 당 수군 진영으로 돌진하였다. 간격이 백보 거리로 좁혀지자, 성충이 명을 내렸다.

   "불쇠뇌를 쏴라!"

   백제의 함선에서 불뇌쇠가 쏟아져 내리자, 소정방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101의 싸움이었지만, 세찬 서풍이 불고 있는데다 2천여 척의 당 함선이 미추홀과 자연도 사이의 좁은 해협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당 수군 진영은 화마에 휩싸였다. 서해 미추홀 해안의 지형과 풍향을 잘 알고 있는 성충의 노련한 전략에 당 수군이 말려든 것이었다. 성충의 명을 받은 의직이 수십 척의 함선을 희생시키면서 당 수군을 미추홀과 자연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유인했던 작전이 주효했던 것이다. 백제군의 전략에 속았음을 안 소정방은 크게 당황하여 외쳤다.

   "두려워 말고, 함선을 적선에 가까이 붙여 백병전을 하라!"

   당 함선이 백병전을 하기 위해 백제 함선으로 바짝 붙으려 하자, 백제 함선에서 불쇠뇌와 불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요행히 불쇠뇌와 불화살의 공격을 뚫고 백제 함선에 붙어 백병전을 벌인 당군조차도 오랜 항해로 노독이 쌓여, 기세가 오른 백제군을 당해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 수군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소정방은 어쩔 수 없이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2천 척에 이르는 당 수군은 절반이 넘는 1천여 척을 잃는 참패를 당한 채 북쪽 항로로 퇴각하였다.

 

출판사와의 협약으로 일부만 하이라이트로 발췌하였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