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조정우 역사소설 기황후 보도자료

조정우 2014. 1. 7. 06:00

   조정우 역사소설 기황후 보도자료

     


기황후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북카라반 | 2013-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고 픽션을 가미한 최고의 ‘역사 소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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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역사를 복원하고 픽션을 가미한 최고의 역사 소설


출판사 서평

 

기황후와 최영의 운명 같은 사랑’!

 

기황후마마, 소생은 차마 왕명을 거역할 수 없나이다.

기황후마마를 지켜드릴 수 없는 소생을 용서하소서!”

 

광활한 대원제국을 호령하고

최영과의 가슴 아픈 사랑을 해야 했던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삶이 오롯이 펼쳐진다!

 

대원제국을 호령한 최초의 고려 여인 기황후와 사라진 고려 말의 역사를 복원하다

 

기황후는 공녀 선발을 중단시키고 고려의 복색과 풍습을 원나라 전역에 유행시켰으며 고려를 원나라의 행성에 편입시키려 했던 입성론立省論을 막은 것으로 알려진 여인이다. 반면 공민왕이 1356년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킨 것에 대한 복수로 8년 후인 1364년 고려에 몽골군을 파병했다. 이런 기황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는 이런 논란의 와중에 있는 기황후를 소설로 쓰는 것이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급반전 속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역사적 호기심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 있었던 1364년에 최유의 모략에 속아 고려를 침략했다는 내용의 사과 서찰을 보냈다는 것이다.

기황후가 가문의 멸문에 대한 복수로 고려에 몽골군을 파병한 것은 우리 민족에 비극이지만 곧바로 공민왕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외교 문서를 보냄으로써 비극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기황후는 공녀로 끌려가 숱한 역경을 헤치고 황후의 자리에 올라 30여 년간이나 대원제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고려 말은 나라의 주권을 잃고 원나라의 정책에 좌지우지되었던 암흑의 세월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기황후가 공녀로 끌려간 지 2년 만인 1335년에 공녀 선발이 중단되었고, 공민왕 대에 원나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무기와 저폐(원나라의 종이 화폐)를 보냈다는 기록은 그녀가 고려를 위해 애쓴 흔적을 역력히 드러낸다.

저자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서 전하는 기황후의 묘가 경기도 연천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원나라를 호령하던 그녀가 이곳에 안치되었다는 점이 무언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혹시 연천에 사모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연천이 최영의 고향인 철원과 연접해 있어 기황후가 사모했던 사람이 불세출의 명장 최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천에서 기황후와 최영이 마주친 것은 아닐까?

한낱 힘없는 나라의 공녀로 차출되어 만리타국으로 끌려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몽골의 황궁에서 황후로 되살아나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거머쥐고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던 여인, 기황후! 그리고 최영과 가슴 아픈 사랑을 해야 했던 그녀의 삶이 이 소설에서 오롯이 전해진다.

 

줄거리

 

드넓은 평지에서 청색 격구복을 입은 행주 고을의 기수들과 백색 격구복을 입은 철원 고을의 기수들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격구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철원 고을의 소년이 전광석화처럼 행주의 기수들을 제친 후 장시로 공을 후려쳐 구문 안으로 집어넣다. 행주, 철원 두 고을 처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준수한 소년은 최영이었다. 최영이 손을 들어 환호성에 답례하고 있는데, 기완자가 장시를 치켜든 채 최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년 전 충숙왕은 여인이 격구하는 것을 금하여, 부득이하게 남장을 하고 시합에 참가한 기완자는 최영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며칠 후, 기자오가 최영의 아버지 최원직에게 사람을 보내 혼담을 청했지만, 최원직은 기자오의 집안이 부유한 데 비해, 자신의 집안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한동안 마음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웠던 기완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최원직을 찾아갔다. 최원직은 지극히 아름다운 절세미인이면서 품행에 기품 있는 기완자를 보자 갈등했으나, 기완자가 가난한 자신의 집안에 시집와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 지씨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되어 혼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영이 아버지 3년상을 마칠 무렵, 기완자의 혼담을 받아들인 최영은 임시 방편으로 매파를 데려와 기완자와 혼약을 맺었다. 혼약을 맺은 여인은 공녀로 선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결혼도감 관원들이 기완자를 공녀로 차출해 가버렸다. 최영과 기자오는 기완자를 공녀 명단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결혼도감을 찾아가고, 충숙왕에게 알현을 청했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최영은 기철과 박불화를 비롯한 행주 고을의 사내들, 유화의 오라비 유총, 유씨 가문의 하인들과 함께 원나라 사신단을 습격하여 기완자를 구하려 했지만, 원나라 최고의 용장 탈탈이 이끄는 몽골군의 철통같은 방어망과 무시무시한 대포의 위력에 막혀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기완자는 대내 총관 독만질아의 주선으로 겨우 열네 살인 황제 토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이때 토곤은 허울뿐인 허수아비 황제로 당시 원나라의 권력은 황후 타나실리의 아비인 권신 엘테무르의 손에 있었다. 아버지 명종이 엘테무르에게 독살당한 토곤이 자신의 신변에 대해 불안해하자 기완자는 자신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탈탈을 황궁 시위대장에 임명할 것을 권했다. 토곤이 기완자의 말을 받아들여 탈탈을 시위대장에 임명하자, 엘테무르는 거사를 일으켜 토곤을 폐위시키려 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말미를 달라고 애원한 타나실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거사를 미루었다.

한편 오래전부터 기완자를 사모해왔던 박불화는 귀비에 책봉된 기완자를 곁에서 지키기 위해 거세하고 환관이 되었다. 기완자가 서서히 황궁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엘테무르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급사했고, 대도는 실로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엘테무르의 두 동생 사둔과 답리는 야심이 큰 인물이 못되었다. 사둔이 죽자, 문종의 양자로 황제에 오르려는 야심을 품은 탑자해가 당기세를 부추겨 숙부인 답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 어사대부 탈탈이 당기세를 죽인데 이어, 최영이 수천의 고려 의병을 이끌고 와 함락 직전인 황궁을 구원하고 답리를 죽이자 반란은 진압되었다. 이후 타나실리 황후는 폐위되었고, 토곤은 기완자를 황후로 맞으려 했지만, 황후족인 옹기라트 가문인 우승상 백안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기완자가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를 낳자, 우승상 백안은 기완자만을 총애하는 토곤의 편애에 불만을 품고, 황태제 연첩고사의 어미인 황태후 보다시리와 손을 잡고 토곤을 능가하는 권력을 거머쥔 후 자기 멋대로 이민족 차별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전횡을 자행했다. 또한 자신의 양부이자 백부인 백안을 추포하라는 토곤의 명을 받은 탈탈은 눈물을 머금고 백안에게 가문의 근거지인 통주로 사냥을 떠날 것을 제안해 대도성 밖으로 유인한 후, 거사를 일으켜 백안을 실각시켰다. 2황후에 책봉된 기황후는 황태후의 직속 기관 휘정원을 황후의 직속 기관 자정원으로 개편하여 원나라의 재정과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었다.

당시, 원나라 전국 각지에서 홍건적을 비롯한 한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중 장사성이 대운하의 요충지를 장악하자, 원나라에서 고려로 사신을 보내 응원군을 요청했다. 이에 공민왕은 대도의 고려인을 주축으로 응원군을 결성하자는 최영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병 2,000에 모집병 3,000, 5,000의 병력을 파병했고, 최영은 기황후의 주선으로 대도에서 18,000의 고려인을 모집하여 원정에 나섰다. 최영이 이끄는 23,000의 고려군은 연전연승하여 장사성이 점령했던 30여 성을 원나라 조정에 돌려준 후 장사성의 근거지인 고우에서 원나라 사령관 탈탈이 이끄는 20만 원군과 합동 작전을 펼쳤다.

최영의 고려군이 용전분투하여 고우성의 성문을 열었지만, 탈탈은 이사제의 말에 공격을 주저했다. 그때 천지를 개벽시킬 듯한 최영의 용맹을 본 탈탈은 20여 년 전 복면한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이 호위대장으로 있던 사신단을 기습했던 자가 최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최영을 하옥시켰다. 이로 인해 고려군이 진영을 떠났고, 원나라 단독으로 고우성을 공격했지만, 토곤이 탈탈을 공이 없다 책망하여 해임시키자, 원군이 동요하는 틈을 타 공격에 나선 장사성군에게 원의 20만 대군이 궤멸당했다.

이후 원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지자, 공민왕은 고려에서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기황후의 일가를 멸문시켰다. 기황후는 공민왕의 배신에 격노했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고려를 칠 여력이 없었다. 홍건적의 난이 진압된 1363, 죽은 줄 알았던 기철의 넷째 아들 기새의 부추김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위에 세운다는 조서를 발표했고, 이듬해 13641, 아이유시리다라가 2만 병력을 이끌고 고려 원정에 나섰지만, 수주에서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에 참패하여 퇴각했다.

당시 원나라 조정은 기황후를 따르는 친황태자파와 기황후를 반대하는 친황제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기황후가 친황제파의 수장인 태평과 노적신을 해임시키자, 노적신은 패라첩목아에게 가서 거병을 부추겼다. 패라첩목아는 대도성을 점령하여 조정의 권력을 거머쥐었다. 이에 아이유시리다라가 자신을 지지하는 태원의 군벌 왕보보에게 가서 원군을 청했다. 왕보보는 이듬해 거병을 일으켜 30만 대군을 이끌고 대도로 진격했고, 패라첩목아는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1368,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원나라가 내전으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원나라 정벌에 나섰다. 다급해진 원나라 황제 토곤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응원군을 보내달라 청했으나, 고려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기황후가 눈물을 흘리며 대도를 사수할 것을 간청했으나, 토곤은 대도를 버리고 만리장성 북쪽의 상도로 퇴각할 것을 결정했다. 도읍을 잃은 원나라는 그 여파로 중원의 땅을 모두 잃고, 결국 그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몽골 초원으로 쫓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기황후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황제가 된 아이유시리다라에게 어미가 죽거든 고려의 연천에 묻어주시오. 어미에게 연천은 말할 수 없이 뜻깊은 곳이라오. 그리해주시겠소?” 하고 당부한다. 기황후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차례

 

숙명적인 만남 7

어머니의 가야금 26

금혼령 39

하늘이시여! 54

추격 70

문화 유씨 82

기습 96

압록강 112

피할 수 없는 운명 124

엇갈린 인연 138

질투 151

악몽 같은 현실 169

솔롱고 182

사내의 진심 200

엘테무르의 신신당부 215

반란 229

혼례식 246

대의멸친 259

2황후에 오르다 273

공민왕과 노국공주 285

18년 만에 맺어진 인연 297

조일신의 난 312

고우성의 싸움 324

멸문지화 345

연천 369

 

작가의 말 390

 

 

본문 중에서

 

행주와 철원 두 고을 처녀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준수한 소년의 이름은 최영이었다. 손을 들어 고을 사람들의 환호성에 답례하는 최영의 모습에 기완자는 가슴이 떨렸다. ‘이웃 고을 철원에 이와 같은 인물이 있었구나!’ 순간, 백옥처럼 하얀 기완자의 얼굴이 최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기완자는 최영의 눈과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기완자를 본 최영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어찌 저리도 수줍단 말인가.’ 최영은 격구 모자를 푹 눌러쓴 기완자를 수줍은 미소년으로 보았던 것이다. (숙명적인 만남10~11)

 

최영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토록 기품 있고 아름다운 며느리를 마다할 어미가 있으랴. 기완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가야금을 뜯기 시작했다. 이내 은은한 가야금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모곡>이었다. 어머님을 여읜 최영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는 것일까. 애잔하게 마음을 적시는 가야금 소리에 최영은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가야금을 타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모곡>에 이어 <가시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떠난 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곡조였다. 백옥처럼 고운 섬섬옥수로 가야금을 뜯는 기완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기완자의 애절한 눈빛이 최영을 사로잡았다. 최영은 그녀가 곡조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야금32~33)

 

탈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영의 검이 섬광을 내뿜으며 탈탈을 내리쳤다. 탈탈이 검을 들어 막는 순간, 태산처럼 강맹한 최영의 검에 밀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실로 엄청난 힘에 탈탈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탈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최영의 검이 예리한 파공성을 내며 다시 탈탈을 향해 날아왔다. 탈탈은 재빨리 검을 휘둘러 최영의 검을 막았다. 순간 소리가 나며 탈탈의 검이 부러졌다. 탈탈이 중심을 잃고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최영의 검이 빗나가고 말았다. 단 두 합 만에 몽골 최고의 용사인 탈탈이 최영의 검에 밀려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기실, 탈탈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기완자를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검을 휘두른 최영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싸우는 최영을, 설령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라던 항우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당할 수 없으리라! (기습99~100)

 

토곤은 기완자의 눈빛이 조금도 기뻐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토곤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멍하니 있다가 눈짓으로 환관들에게 나가라는 명을 내렸다. 환관들이 처소를 나서자 토곤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진심을 알려다오. 짐이 싫은 것이냐?” 기완자는 문득 이번이 자신의 처지를 토곤에게 알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최영에게는 자신을 잊으라 간곡히 말한 기완자였지만 도저히 최영을 잊을 자신이 없었다. 최영을 잊기로 결심한 지난 하루는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공허하지 않았던가! 기완자는 작심한 듯 심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질투156)

 

기묘년(1339)의 어느 늦가을, 흥성궁에서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완자가 황자를 낳은 것이다. 산고의 고통으로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기완자는 아들임을 확인하자 연신 눈물을 흘렸다. 기완자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아들을 낳은 기쁨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기완자는 눈을 감은 채 회한에 잠겼다. ‘나도 이제 어미가 되었으니 영도령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 어미가 되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이젠 최영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의멸친259)

 

그로부터 2개월 후인 경진년(1340) 4, 마침내 제2황후에 책봉된 기황후는 실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낱 미천한 공녀로 끌려왔던 그녀가 대원제국의 국모가 될 줄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었으랴! 곤위에 오른 기황후는 백안으로 인해 실각한 황태후의 직속 기관 휘정원을 황후의 직속 기관 자정원으로 개편해 황실의 재정을 관할했다. 바야흐로 천하의 권력이 기황후의 손에 넘어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황후에 오르다284)

 

누가 한 많은 여인의 세월을 시샘했던가. 몽골의 황량한 초원에서 환갑의 나이를 넘긴 기황후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황제가 된 아이유시리다라에게 당부했다. “어미가 죽거든 고려의 연천에 묻어주시오. 어미에게 연천은 말할 수 없이 뜻깊은 곳이라오. 그리해주시겠소?” 연천은 기황후가 최영을 처음 만난 곳이었다. 그곳에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이 기황후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아이유시리다라가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자가 어찌 어마마마의 뜻을 어길 수 있겠나이까?” 기황후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감

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제 어미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소……. 부디 명군이 되어 중원을 회복하도록 하시오…….” 이 말을 남긴 채 기황후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뜻하지 않게 공녀로 끌려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기황후는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연천389)

 

 

지은이 소개 __ 조정우

 

연애론, 역사소설, 경제론 등으로 누적 방문자 1,000만 명을 돌파한 인기 파워 블로거다. 2009년부터 알라딘 창작 블로그에 연재 중인 조정우의 연애론은 조회수 1,900만에 이른다. 그동안 블로그에 다수의 역사소설을 연재해왔으며, 알라딘 창작 블로그 소설 부분에서 최장 기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에 김춘추를 소설화한김춘추, 대왕의 꿈, 2013년에 장옥정을 소설화한장옥정을 출간했다.

http://blog.daum.net/labyr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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