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기황후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3. 16. 06:00

 기황후 인터파크 판매처 


    기황후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이 시각, 최원직은 세상을 떠난 아내 지씨의 묘소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었다. 달포 전, 기자오로부터 혼담을 받은 이후부터 아내 지씨가 자주 꿈에 보이더니, 이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리워졌다. 엷여덜의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서른이 채 못되어 아내 지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 십년 전의 일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어찌 한순간이라도 잊을 수 있으랴. 천상의 선녀처럼 미소짓던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부인, 우리 영이가 기자오의 여식을 사모하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기자오의 여식이 우리 가문에 시집오면, 부인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구려.'

   최원직의 아버지 최옹이 충렬왕의 사부였음에도 하사받은 전답과 노복을 모두 사양하였고, 아버지의 청렴결백함을 본받은 최원직은 과거에 합격하여 사헌부 간관이 된 이후에도 전답 한 마지기 받지 않고 아담한 초가집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최원직을 사모하여 시집온 지씨는 가난한 살림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다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부인이 전답 한 마지기 없는 내게 시집오지 아니하였던들,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장부로서 아내를 지키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져 최원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버님, 너무 슬퍼 마소서. 어머님께서는 하늘의 뜻을 받들며 살다 떠나셨사오니, 필시 이승에서 못다 누린 복을 저승에서 누리고 계실 것이옵니다."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 묘소를 찾아온 최희가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열셋의 어린 나이에도 효성이 지극한 그녀는 연로한 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이 아비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네 어미는 항상 하늘의 뜻을 받들고 살았으니, 하늘이 보우하실게다. 그만 가자꾸나."

   최원직은 자신의 초가집 앞 말뚝에 낯선 말 한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보았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집 안에서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능숙한 연주 솜씨로 보아 아들이 손님을 위해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기완자가 '가시리' 연주를 끝내자, 최영이 기완자를 위로하기 위해 '청산별곡'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마당에서 가야금 소리가 흘러나오는 주인 아씨의 방을 기웃거리던 하녀 소희가 뒤늦게서야 최원직을 보자 화들짝 놀라 외치듯 말했다.

   "나리, 기낭자께서 찾아오셨나이다." 

   순간, 가야금 소리가 멈추더니, 최영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버님, 기낭자가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너는 물러가보거라."

   최원직이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기완자가 큰절을 올렸다. 

   "낭자가 어찌 이 노부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이오?"

   기완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소녀, 어르신께 청할 것이 있나이다."

   "말해보시오."

   "소녀의 아버님께서 어르신의 아드님과 혼인을 승락하셨사오니, 어르신께서도 혼인을 승락해주시기를 청하나이다."

   참으로 당돌해 보였다. 제법 이름이 있는 기씨 가문의 낭자가 스스로 찾아와 혼담을 청하리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최원직은 자신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나왔다.

   "허허허, 혼담이란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순리거늘......"

   웃음을 멈춘 최원직이 인자한 얼굴로 기완자를 보며 타이르듯 말했다. 

   "그 혼담은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오? 그리 알고 이만 물러가시오."

   순간, 기완자의 눈에서 이슬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간곡히 말했다. 

   "어르신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하오나......"

   최원직은 기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기완자가 수줍은 듯 말을 이었다. 

   "청컨대, 이 혼담을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리만 하여 주시오면, 소녀, 여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최원직은 기완자의 간곡한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최원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한번 재고하여 보리다. 이제 되었소?"

   "참으로 감사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기완자가 다시 큰절을 올린 후 방을 나서자,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최영과 눈이 마주쳤다. 눈시울이 붉은 것이 기완자가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기완자가 방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자, 최원직은 상황을 짐작하고 마당을 향해 말했다. 

   "영아, 아비가 할 말이 있으니, 이리 들어오거라. 소희야, 기낭자를 배웅하거라."

   그제야 기완자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최영은 두손을 모아 인사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방에 들어갔다. 기낭자가 대문을 나서는 기척이 들리자, 최원직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영아, 기낭자를 어찌 생각하느냐?"

   최영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소자에겐 과분한 규수이옵니다."

   최원직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네 말이 맞다. 하여 아비가 혼담을 거절했던 것이다. 아비의 뜻을 알겠느냐?"

   최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소자, 아버님의 뜻을 따를 뿐이옵니다."

   최원직은 아들의 목소리에서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속내를 감춘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비의 뜻을 따라주니 고맙구나. 이만 나가보거라."

   최원직은 아들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자,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부인, 내 결정이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소. 부인이 계시다면 부인의 뜻을 따르련만......'


인터파크 도서 작가인터뷰에 소설 '기황후'에 대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조정우 인터파크 인터뷰 : 로맨틱한 역사소설가가 바라본 기황후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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