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불멸의 신화, 1화 거북선 진수식

조정우 2014. 9. 18. 09:00

  이순신 불멸의 신화, 조정우 역사소설


이순신 불멸의 신화가 온북 티비에 소개되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1화 거북선 진수식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는 여수 해안가에 수만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검은 전립을 쓰고, 푸른 납의를 입은 1만여 병졸들의 맨 앞 열에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붉은 소매를 단 남색 철릭(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군복)을 입고, 산호주로 만든 구슬갓끈을 단 검은색 전립(군장용 모자)을 쓰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굴강(선박의 수리 및 정박을 목적으로 만든 방파제로 썰물 때 물이 빠지고 밀물 때 물이 차는 구조로 거북선을 건조하고 정박한 장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랑이 눈썹, 부리부리한 눈, 우뚝 솟은 코, 제비턱, 용수염의 팔척 장신 사내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의 시선은 굴강에 정박되어 있는 거북선에 집중되었다. 때마침 밀물이 굴강 안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온통 철갑을 씌운 거북선이 햇살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났다. 귀갑 무늬의 동철을 씌운 등판은 한치의 발 디딜 틈없이 송곳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길이 13자, 넓이 3자인 거북선 머리는 마치 살아있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여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180여 명의 장졸들이 일제히 거북선에 승선했다. 이순신이 깃발을 치켜들며 외쳤다. 

   "발진하라!"

   길이 113자 (약 34 m), 폭 34자 (약 10 m), 높이 21자 (약 6.3 m)의 육중한 거북선이 오색기를 펄럭이며 굴강의 입구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양옆에는 전라순찰사 이광을 대신해 온 군관 남공심과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서 있었다. 남공심이 굴강을 벗어나는 거북선을 찬찬히 훑어 보더니 용머리 아래에 달린 도깨비 머리 모양의 돌출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돌출부는 대체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이오?"

   "충각(뱃머리에 장착하여 적의 배를 부수는 장치)이오."

   거북선 머리 아래에 있는 도깨비 머리 모양의 반구형 돌출부는 돌격시 적군의 배에 충돌시켜 부수는 충각이었다. 남공심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철갑을 씌운 저 육중한 거북선이 제대로 앞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억기가 남공심의 말에 동의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거북선은 바다 가운데로 나가자 마치 나는듯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질주했다. 수만의 군중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거북선의 속도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남공심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저, 저럴 수가......"

   격군 여섯이 젓는 거대한 노를 양쪽에 여덟개씩 단 거북선은 조선의 그 어떤 배보다 빨랐다. 온통 철갑을 씌운 육중한 거북선이 이토록 빠를 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남공심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며 철갑을 씌운 거북선의 등판을 가리켰다. 

    "속도는 참으로 빠르오. 허나, 저 거북선 한 척에 저토록 많은 동철을 쓰다니,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니오?"

   이순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외다. 거북선 스무 척만 있다면, 천 척의 왜선이 쳐들어온다 한들 능히 물리칠 수 있을진대, 어찌 무모하다 할 수 있겠소?"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이순신의 초청에도 거북선 진수식에 오지 않고 군관 남공심을 보냈다. 이순신과 같은 덕수 이씨인 이광은 이순신을 철썩처럼 신임했지만, 거북선을 건조하려는 이순신의 계획 만큼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남공심이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철을 씌운 육중한 거북선이 전투 중에 침몰하지 아니한다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여하튼 거북선에 대한 전라도 차원의 지원은 불가하다는 것이 순찰사 나리의 뜻이외다."

    이순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쪽 바다의 방비를 위해 거북선이 꼭 필요하니, 공이 순찰사께 잘 말씀해 주셨으면 하오."

    남공심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수사의 뜻을 순찰사께 전해드리리다."

    안타까워하는 이순신의 눈빛과 마주친 이억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북선 한 척에 저토록 많은 동철을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판옥선과 대포를 더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

   이순신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밀정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축성한 나고야에 20여 만의 일본군이 집결해 있다고 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순신이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적선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면 최소한 세 척의 거북선이 필요하오. 일단 거북선의 진수식을 지켜본 연후에 다시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거북선은 순천부 선소, 방답진 선소, 여수 선소, 세곳에서 각각 한 척씩 건조되었지만, 동철이 부족하여 겨우 여수 선소에서 만든 거북선만 등판을 비롯한 배의 윗 부분에 철갑을 씌울 수 있었다. 

    남공심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억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일단 한번 봅시다."

   양녕대군의 4대손 이연손의 아들인 이억기는 누구보다 이순신을 아끼고 있었지만, 거북선 건조 만큼은 찬성할 수 없었다. 판옥선 수십여 척을 만드는 재정이 필요한 거북선이 침몰이라도 한다면 이순신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 이억기는 이순신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순간 거북선의 입에서 천지를 진동시킬 듯한 굉음을 내며 불을 뿜었다. 

   "쾅!"

   거북선의 입에서 발포한 포탄이 해안가에 목표물로 세운 목책에 적중했다. 목책이 산산이 부서졌다. 실로 엄청난 대포의 위력에 이억기가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저것은 천자포가 아니오?"

   굳게 다물었던 이순신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천자포가 아니라 지자포요."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육중한 천자포를 배에 장착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뱃머리 앞으로 튀어 나온 길이 13자의 거북선 용머리에 천자포를 설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쾅! 쾅!"

   거북선에서 연이어 포성이 울렸다. 거북선 정면에서 발사된 두 발의 포탄에 목책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억기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자포의 위력이 천자포에 못지 않구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조선 수군이 개량한 지자포요."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래 조선 수군의 주력 대포인 지자포 개량에 힘써왔다.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천자포를 주조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지자포 개량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거북선이 부두에 정박하자, 이순신은 이억기, 남공심과 함께 거북선에 승선하였다.

그때 푸른 철릭을 입은 군관이 이억기와 남공심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소인은 군관 나대용이라 하옵니다."

   거북선을 설계한 나대용이었다. 나대용은 손짓을 해가며 이억기와 남공심에게 설명했다. 

    "거북선은 기존의 동철보다 훨씬 튼튼한 동철 합금을 씌워 대포의 포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사옵니다."

    나대용의 설명에 이억기가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참으로 천하의 기물이요!"

    어느새 이순신을 애워싼 병졸들이 만세를 외쳤다. 

    "조선 수군 만세! 거북선 만세!"

    거북선의 병사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기가 충천했다. 이억기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북선이 세 척만 있다면 천 척의 왜선이 온다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듯싶구나!'

   거북선에서 내려서자, 이억기가 이순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좋소. 내, 거북선 건조에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리다!"

   이순신이 이억기의 손을 꼭 잡았다. 

   "참으로 고맙소!"

   남공심도 마음이 바뀐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순찰사 나리를 설득해 보리다."

   이때 군중들이 이쪽으로 몰려와 만세를 외쳤다. 

   "조선 수군 만세! 조선 만세!"

   이 무렵 조선팔도에는 조만간 전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지만, 전라좌수영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전라좌수영 백성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순신이 있는 한 전라좌수영 수군은 천하에 적수가 없으리라.

   이억기와 남공심이 전라좌수영을 떠나자, 이순신은 해안가를 순시했다. 이순신의 시선이 해안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전라좌수영 해안가 모래사장 곳곳에 함선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나무 조각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나무 조각들이 조선에 없는 삼나무인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떠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남해안 곳곳에서 이토록 많은 양의 삼나무 조각이 발견된 것은 일찌기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던가!

   수개월 전에 이순신은 조정에 장계를 올려 남해안 곳곳에서 발견된 다량의 삼나무 조각들을 근거로 일본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고했건만, 조정의 대응은 너무도 안일했다. 이순신의 장계를 받은 조정 대신들은 일본에서 떠내려온 삼나무 조각들이 함선의 파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리당략에 빠진 조정 대신들은 일본이 조만간 쳐들어올 것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요행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하느님, 부디 조선의 금수강산을 지켜주소서! 조선의 금수강산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이순신은 문득 고향 아산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오십여 년간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어머니 변씨, 스물여덟 해를 동심일체가 되어 함께 한 부인 방씨, 효성이 지극한 세 아들과 딸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이순신에게 가족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이순신은 스물여덟 해 전 시집왔던 곱디 고왔던 방씨의 자태를 떠올리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부인, 이제 곧 전란이 닥쳐올 터인데, 내가 가족을 위해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전란이 닥치면 가족의 안위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충청도 아산 금성촌의 아담한 기와집 사랑채에서 열대여섯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오자병법을 읽고 있었다. 남중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모가 수려한 소년은 숙연한 얼굴로 오자병법의 구절을 되뇌이고 있었다. 

   '필사즉생, 행생즉사.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나 요행히 살기를 바라면 죽을 것이다.'

   소년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삼남 이면이었다. 이면은 '필사즉생, 행생즉사' 한 구절을 수없이 되새기고 있었다. 

   '죽기를 각오한 병사 하나가 능히 천명의 병사를 당해낼 수 있으리라. 결국 전투의 승패는 병사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 병사의 투지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부전자전이라 할까, 겨우 열여섯의 이면은 이미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통달하고 있었다. 이토록 총명한 이면을, 이순신은 걱정스러워 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총명해 오히려 해를 입은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이순신은 이면이 자신처럼 무인의 길이 아닌 유성룡처럼 문인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언젠가 유성룡이 이순신의 집에 찾아왔을 때, 이면을 보고 이순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여해(이순신의 자), 그대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이토록 총명하니 참으로 좋겠소. 천하에 둘도 없는 장수감이오."

   이순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인의 길은 고단하오. 아비의 욕심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 아들이 이현(유성룡의 자) 그대처럼 문인이 되었으면 하오."

   유성룡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만사는 하늘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겠소? 하늘의 뜻이 그대의 아들이 무인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면, 인력으로 어찌 막을 수 있겠소?"

   이순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대도 알다시피, 원래 우리 집안은 문인의 집안이었소. 무인은 우리 집안에 나 한 사람으로 족하다 생각하오."

   이회, 이울, 이면, 이순신의 세 아들은 모두 총명했다. 이순신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총명한 무인은 모함을 받기 마련이었다. 불세출의 명장 한신도 모함으로 역적의 누명을 쓰고 가문이 멸문당하지 않았던가. 이순신은 아들들이 무인이 되어 벼슬에 오르면 모함을 당할까 두려웠다. 그런 까닭에 이순신은 세 아들에게 무예를 가르치지 않았다.

   오자병법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면은 붓통에 있는 붓을 들어 허공에 휘둘렀다. 검술 동작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기에 이렇게 붓을 들고 무예를 연마하곤 했다. 이면은 무인의 길이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팔도가 전란에 휩싸인다면 무인의 길을 가는 수 밖에. 

   이면이 붓을 힘차게 휘두르고 있을 때, 문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이면은 동작을 멈추었다. 스르르 장지문이 열리며 이면의 어머니 방씨가 사랑채 안으로 들어왔다. 붓을 든 채 서있는 이면에게 방씨가 물었다. 

   "검술을 연마한게냐?"

   부모님의 뜻을 어겼다는 생각에 이면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방씨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송구할 것 없다. 장부가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 어찌 흠이 될 수 있겠느냐? 어미는 다만 네가 검술보다 글공부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자신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말에 이면은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님의 뜻,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때 '푸드득' 비둘기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순신이 보낸 전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방씨는 재빨리 장지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으로 나갔다. 과연 예상대로 발목에 헝겁 조각이 묶인 전서구가 마당의 하늘을 돌며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방씨가 손을 흔들자 전서구가 그녀의 품안으로 날아들어왔다. 전서구 양발목에 묶인 헝겁 조각을 펼친 방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대체 무슨 내용이옵니까?"

   화들짝 놀란듯한 이면의 목소리에 방안에 있던 이회, 이울이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이회, 이울, 이면은 어머니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방씨는 사색된 얼굴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전란이 일어났다! 부산, 동래가 이미 왜적들의 손에 떨어졌다는구나!"

   순간 이회, 이울, 이면이 거의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이회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소자들도 아버님을 따라 종군하겠나이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회, 이울, 이면 모두 정식으로 무예를 익힌 적은 없으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은 동심일체였다. 그들은 눈짓을 교환하며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방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유정승께 전란 소식을 알린 후, 나라의 명을 기다리라는 것이 너희들 아버지의 뜻이니라. 알겠느냐?"

   이회의 나이 스물 여섯, 이울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열여섯인 이면만이 두 해 정도 징집을 피할 수 있을 뿐, 징집령이 떨어지면, 이회, 이울 모두 징집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이회와 이울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씨는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참고 있었다. 이회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겠나이다."

   방씨의 말이 이어졌다.

   "회야, 울아. 너희들이 이 소식을 유정승께 알리고 오너라."

   이회와 이울은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하고서 이면에게 말했다. 

   "열여섯이면 능히 대장부라 할 수 있다. 할머님과 어머님을 잘 보살펴 드리거라."

   "소제, 형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겠사옵니다."

   이때 사랑채의 문이 활짝 열리며 열네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방씨를 쏙 빼어닮은 소녀는 다름 아닌 이순신의 딸 이화였다. 안채에서 하녀들로부터 오라버니들이 집을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뛰어온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옵니까? 전란이 일어났사옵니까?"

   등짐을 진 이회, 이울, 두 오라버니의 비장한 얼굴을 본 이화는 전란이 일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방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란이 일어났다는구나! 하여 너의 두 오라버니들이 조정에 소식을 알리러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전란에 남편과 아들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방씨의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한동안 넋을 잃은 듯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이화가 눈물을 흘리며 이회, 이울, 두 오라버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큰 오라버니, 작은 오라버니, 부디 무탈히 돌아오소서......"

   이화는 두 오라버니 걱정에 말끝을 흐리며 울음보를 떠뜨렸다. 조만간 징집령이 떨어질 터, 두 오라버니가 한양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이회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누이의 손을 잡았다. 

    "걱정말거라. 무탈히 돌아오겠다 약조하마. 이 오라비가 언제 약조를 어긴 적이 있더냐?" 

    누이가 눈물을 진정시키자, 이회가 이면에게 말했다.

    "우리가 없는 동안에 네가 우리 집안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누이를 잘 보살피거라."

    이면이 이회의 손을 굳게 잡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소제, 목숨을 걸고 우리 가문을 지키겠나이다."

   이회가 이울과 함께 집을 나서자, 방씨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방씨는 이면과 이화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안채로 향했다. 

   안채로 들어선 방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장에 있는 남편과 전장으로 향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여인의 마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만약 하늘이 그녀로 하여금 남편과 자식의 목숨을 대신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기꺼이 한 목숨 바치리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물을 진정시킨 방씨는 스물여덟 해 전, 이순신을 처음 만났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씨의 아버지 방진이 딸의 혼처를 구할 당시 이순신은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다. 수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총기가 영롱한 이순신의 다부진 얼굴에 방씨는 마음이 끌렸다. 

   방씨가 이순신과 처음 마주친 곳은 아산 금성촌에 있는 서당이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방씨는 시녀 옥매를 대동하고 나들이에 나섰는데, 금성촌의 서당을 지나다가 낭랑하기 그지 없는 청년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사기에서 예양이 이르기를,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내를 위해 치장하고,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이치에 맞는 말이다. 이 나라는 과거를 통해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예양의 의로운 정신을 본받아 목숨을 바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각오로 학문을 익힌다면 뜻을 이루지 못할 바가 없을 것이다."

   참으로 낭랑한 청년의 목소리였다. 누굴까 하는 호기심에 방씨는 고개를 돌렸다. 다부진 얼굴의 청년이 방씨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총기가 넘치는 청년의 눈빛에 반한 것일까. 방씨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끌림에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순간 청년과 눈이 마주친 방씨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자리를 뜨고 말았다. 방년 열여덟인 방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청년은 다름 아닌 이순신이었다. 스물한 살의 이순신은 서당에서 어린 유생들에게 사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금성촌의 서당 선생인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몸이 아파 이순신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씨는 이때부터 이순신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였다.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방씨는 숙명처럼 이순신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방씨의 아버지 방진은 이 당시 한양에 사람을 보내 사윗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어머니 홍씨로부터 들은 방씨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옛부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사온데, 여기 아산에서 찾으면 될 것을, 구태여 한양까지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을지요."

    방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홍씨는 딸이 마음에 둔 사내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혹여 네가 마음에 둔 사내가 있느냐?"

   수줍음 탓에 방씨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씨는 붉게 물든 얼굴을 천천히 끄덕였다. 홍씨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누구냐? 어여 이 어미에게 말해보거라."

   방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달포 전, 소녀가 나들이에 나섰을 때, 금성촌의 서당에서 스물쯤 되어 보이는 도령이 어린 유생들에게 사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사오나, 소녀, 그때부터 그 도령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사옵니다......"

   홍씨로부터 딸의 이야기를 들은 방진은 곧장 금성촌의 서당을 찾아갔다. 조선 제일의 명궁인 방진은 서당에서 어린 유생들을 가르치는 이순신에게서 무인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이순신은 방진을 보는 순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순신은 수업을 멈추고 방진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소생은 이순신이라 하옵니다. 대인의 존성대명을 여쭈어도 될지요."

    방진은 이순신이 천하에 둘도 없는 사윗감이라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부는 방진이라 하네."

    방진이라는 말에 이순신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조선 제일의 명궁이신 방대인이시군요. 소생, 방대인을 흠모한지 오래되었사온데, 이렇게 뵈니 기쁘기 한량 없사옵니다."

    순간 방진의 뇌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순신을 제자로 삼는다면 사위로 삼는 것은 시간 문제리라.

   "혹여 내 제자가 될 의향이 있는가?"

   이순신은 주야로 무예를 연마하며 무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러한 이순신이 방진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이리하여 이순신은 방진의 제자가 되었고, 방진의 딸인 방씨와 혼인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