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불멸의 신화, 하일라이트

조정우 2014. 9. 10. 08:00

   이순신 불멸의 신화, 하일라이트 조정우 역사소설

   

이순신 불멸의 신화가 온북 티비에 소개되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의 전술을 밝힌 최초의 역사소설! 옥포, 사천, 당포, 당항포, 한산, 안골포, 부산포, 명량, 노량, 구국성전九國聖戰이라 불리우는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해전이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본문 하일라이트

   

   호랑이 눈썹, 부리부리한 눈, 우뚝 솟은 코, 제비턱, 용수염의 팔척 장신 사내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의 시선은 굴강에 정박되어 있는 거북선에 집중되었다. 

    때마침 밀물이 굴강 안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온통 철갑을 씌운 거북선이 햇살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났다. 귀갑 무늬의 동철을 씌운 등판은 한치의 발 디딜 틈없이 송곳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길이 13자, 넓이 3자인 거북선 머리는 마치 살아있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여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180여 명의 장졸들이 일제히 거북선에 승선했다. 이순신이 깃발을 치켜들며 외쳤다. 

   "발진하라!"

   길이 113자 (약 34 m), 폭 34자 (약 10 m), 높이 21자 (약 6.3 m)의 육중한 거북선이 오색기를 펄럭이며 굴강의 입구로 나가기 시작했다. 

   -거북선 진수식-

  

     "모두 들으시오! 이제 내가 결단을 내릴 참이오!"

   이순신의 우렁찬 목소리에 좌중이 숙연해졌다. 순간 이순신이 장검을 뽑아들었다. 장검엔 '三尺誓天 山河動色'(삼척서천 산하동색 - 석자 검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떠는도다)이라 쓰여 있었다. 이순신이 장검을 높이 치켜들자, 시퍼런 검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이때에 나라의 국은을 입은 장수가 어찌 나가 싸우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전라좌수영군은 경상우수사의 청병에 응해 경상도로 출병할 것이다. 제장들은 오월 초하루까지 각각의 병선과 병력을 이끌고 전라좌수영 앞바다로 집결하라! 군법이 한번 내려지면 거둘 수 없는 법, 군법을 어기는 자는 이 검으로 베리라!"

   -삼척서천 산하동색- 


     "사격 준비!"

   조선의 함선이 조총의 사정거리인 50보까지 다가오면 사격에 나설 참이었다. 승선해 있는 조총수 1000여 명이 조선의 함선을 향해 조총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60보 거리에서 91척의 조선 함선이 일제히 멈추는 것이 아닌가! 왜병들은 어리둥절했다. 도도 다카토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조선놈들이 조총의 사정거리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그때 60보 거리에서 멈춘 조선의 함선이 제자리에서 좌현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좌현 방향으로 일렬로 늘어선 조선의 함선은 마치 세상이 정지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조선군을 얕잡아 봤던 도도 다카토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 척후선의 정찰을 피해 기습해 온 것도, 이렇게 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진을 펼치는 것도, 도도 타카토라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렬로 늘어선 조선의 함선을 향해 왜병들은 조총을 겨눈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옥포해전-


    조선 함선은 집중 포격으로 순식간에 대함선 9척과 중함선 2척을 격침했다. 나머지 대함선 2척에는 조선인 포로가 있어 격침시키지 않고 포획했다. 조선인 포로의 대다수가 여인이었는데, 십여세 남짓한 소녀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순간 열네 살의 윤백련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 이순신은 가슴 속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순신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상륙하여 왜군을 섬멸하라!"

   조선 함선이 상륙하기 위해 해안가로 다가가자, 언덕에 있던 왜군은 조총과 화살을 쏘며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좌현으로 일자진을 펼쳐라!"

   이순신의 명에 조선 함선이 일제히 좌현 방향으로 돌아 일렬로 늘어섰다. 이순신이 적진이 있는 언덕을 향해 외쳤다.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라!"

   이순신의 명에 비격진천뢰가 요란한 포성을 울리며 적진으로 날아갔다. 적진이 있는 언덕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는 수초간 데굴데굴 구르다 천지를 뒤흔들듯한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쾅!"

   수십근이나 되는 비격진천뢰의 파편과 화약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비의 마음-


    괴상한 모양의 거북선이 쏜살처럼 돌진하자, 왜군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악! 이 한마디 외에 왜군의 공포를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리라!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용머리에서 우레같은 포성을 울리며 불을 뿜는 것이 아닌가! 거북선은 밀물을 타고 마치 물만난 물고기처럼 전속력으로 퇴각하는 아타케부네를 추격하였다. 거북선이 점점 거리를 좁혀 오자,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호승심이 불처럼 일어났다. 

   "용선이 50보 안에 있다. 뱃머리를 돌려 조총으로 집중 사격하라!" 

   대장의 명에 아타케부네 일곱 척이 뱃머리를 돌렸다. 

   "탕! 탕! 탕!" 

   왜의 조총수들이 일제히 거북선을 향해 총을 쐈지만, 총알은 거북선에 씌운 철갑을 맞고 튕겨나갈 뿐이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왜의 조총수들이 계속해서 거북선을 집중 사격했지만 총소리만 요란할 뿐 끄떡도 하지 않았다. 순간 거북선이 선봉에 있는 아타케부네의 뱃전을 향해 돌진하여 도깨비 머리 모양의 충각으로 들이받았다. 

   -사천해전-


  거북선이 지척에서 연달아 쏜 천자포와 지자포에 정통으로 맞아 왜의 대장선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데도, 가메이 코레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 명을 내렸다. 

   "돌진하여 대장선을 집중 사격하라!"

   대장의 추상같은 명에 왜의 함선 십여 척이 조선의 대장선을 향해 돌진했다. 죽음을 불사한 일본 수군의 역공으로 순식간에 조선의 대장선이 조총의 사정 거리에 들어왔다. 왜의 조총수들이 일제히 조선의 대장선을 향해 조총을 쏘아대자 이순신이 몸을 낮춰 피하며 연이어 명을 내렸다. 

   "방패를 들어 막아라! 중군은 대장선을 보호하라! 배를 뒤로 물려라!"

   이순신의 명에 따라 중군의 판옥선이 신속하게 움직여 조선의 대장선을 보호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북선의 뒤를 따라 돌진하던 판옥선에서 쏜 화살 하나가 가메이 코레노리의 이마에 박혔다. 권준이 쏜 화살이었다. 가메이 코레노리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태연하게 이마에 박힌 화살을 뽑아 던지고 외쳤다.

    "대장선을 집중 사격하라!"

    권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단한 놈이구나!" 

    권준은 재빨리 화살을 다시 날렸다. 권준이 쏜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가메이 코레노리의 가슴을 꿰뚫었다. 

   -당포해전-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가슴을 화살에 꿰뚫린 가메이 코레노리를 뗏목에 싣고 소소강 서쪽 해안에 있는 당항포에 당도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형님!"

   "아우야!"

   당포에서 전사한 줄 알았던 형을 만난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형님...... 소제는 형님을 잃은 줄 알았습니다......"

   도쿠이 미치토시라는 이름으로 도쿠이 가문의 양자로 입적된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사천과 당포에서의 잇따른 패전으로, 구루시마 가문의 후계자이자 시코쿠 영주인 동생 앞에서 면목이 서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별안간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아우야, 이 형의 치욕을 갚아다오. 우리 형제가 힘을 합쳐 이순신의 목을 베자꾸나!"

   구루시마 미치유키의 눈빛이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사천과 당포에서 이순신에게 잇달아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한 것은 장수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러한 형의 마음을 짐작한 듯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형님, 가메이 코레노리 수군 총사령관도 이기지 못한 이순신을 우리 형제만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소제가 거느린 함선 33척만으로 이순신을 상대하기는 무리이니, 안골포에 있는 구키 요시타카 다이묘께 청병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왜구 출신인 시마의 영주 구키 요시타카는 오다 노부나가(200년간 지속된 전국시대의 통일의 기반을 세운 다이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 시대부터 명성을 떨친 해전의 명수로 그와 연합하면 능히 이순신을 이기고도 남지 않을까. 하지만 한때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구키 가문의 앙숙인 모리 가문을 섬긴 과거가 있어 구키 요시타카가 청병에 응할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가문과 구키 가문의 관계가 좋지 못한데, 과연 구키 요시타카 다이묘께서 청병에 응하시겠느냐?"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수군 총사령관이신 가메이 코레노리 다이묘께서 명을 내리시면 청병에 응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메이 코레노리가 누각 안에서 가슴을 뚫었던 화살 상처에 금창약을 바른 후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구루시마 미치유키와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함께 들어왔다. 가메이 코레노리가 입은 상처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화살이 급소를 비켜가는 바람에 치명상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메이 코레노리의 상처를 살펴본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상처는 좀 어떠하오?"

   가슴을 꿰뚫은 화살을 뽑은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극심하게 밀려오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가메이 코레노리가 말했다. 

   "견딜만 하오."

   "천만다행이오."

   몹시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린 가메이 코레노리의 얼굴을 보자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한가지 청이 있소."

   "말씀해 보시오."

   "실은 안골포에 있는 구키 요시타카 다이묘에게 청병을 요청하려는데, 우리 가문과 구키 가문의 관계가 좋지 않은 터라 청병에 응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 가메이 다이묘께서 명을 내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메이 코레노리는 두 형제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내 그리하리다! 그대들과 구키 요시타카 다이묘가 연합한다면 능히 이순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오!"

   40여 척의 왜선이 정박한 안골포에 구루미사 미치후사의 전령병이 당도한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 가메이 코레노리의 전령을 받은 구키 요시타카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구키 요시타카는 자신의 앙숙인 모리 가문을 섬긴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연합하라는 가메이 코레노리의 전령이 못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구키 요시타카의 심복 무라타 시치다유가 주군의 마음을 이해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 장군은 주군 가문의 앙숙인 모리 가문의 사람이었으니, 청병에 응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구키 요시타카가 근심어린 얼굴로 가메이 코레노리의 서신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허나, 수군 총사령관의 명에 따르지 아니했다 하여 태합 전하께 죄를 추궁당하지는 않을런지......"

   이때 구키 요시타카의 아들 구키 모리타가가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님, 당항포는 협해라 40여 척의 함선이 머물기는 적당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저들보고 이쪽으로 오라 하소서. 그리하면 공을 세워도 아군의 공이요, 또한 태합 전하께 죄를 추궁당할 이유가 없을 듯하옵니다."

   이제 겨우 스무살난 아들의 생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총명한 계략이었다. 수군 총사령관의 명일지라도 적당한 이유를 둘러댄다면 죄를 추궁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근거지인 안골포에서 이순신의 목을 벤다면 온전히 자신의 공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구키 요시타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리하면 되겠구나!"

   날이 저물어갈 무렵, 구키 요시타카의 전령병이 당항포에 당도해 답신을 전했다. 

   '당항포는 협해라 40여 척의 함선이 머물기는 적당치 아니하니, 그대들이 함선을 이끌고 안골포로 오시오.'

   구키 요시타카의 답신을 읽은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분한 듯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말했다. 

   "우리더러 안골포로 오라는 것은 청병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청병을 요구한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니냐? 총사령관께서 명을 내리셨거늘,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구키 요시타카 다이묘의 제안에 따르는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듯합니다. 어차피 이순신은 우리 형제만의 힘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아닙니까?"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몇 차례 고개를 흔들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손으로 이순신의 목을 베는 수 밖에!"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자신의 병력만으로 천하의 명장 이순신을 상대하기는 무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아우의 두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 형을 도와다오! 두 차례나 이순신에게 참패한 내가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태합 전하를 뵐 수 있겠느냐? 이순신이 제 아무리 천하의 명장이라도 이기기만 할 수는 없을 터, 우리 형제가 힘을 합친다면 능히 이순신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다!"

   아우로서 형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일까.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한동안의 숙고 끝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당항포해전-


   이순신이 떠난 한산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비옥했던 둔전은 황량해져 갔고, 민심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이순신이 파직당한 후 권준, 정걸, 입부 이순신, 송희립, 정경달, 이봉수, 나대용, 이언량, 이기남 등의 유능한 장수마저 사직하고 한산도를 떠났다. 삼도 수군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천하무적이었던 예전의 위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7월 3일, 원균은 술을 마시며 날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도원수 권율에게 불려가 조정의 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곤장 50대를 맞은 원균은 술잔을 들이키며 분통을 삭히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몇 차례나 조정이 선전관을 파견하여 부산포로 출전하라 재촉했지만, 원균이 함대를 움직이지 않자 권율이 한산도로 찾아와 원균에게 장형을 내린 것이다. 연신 술잔을 들이키던 원균이 돌연 탄식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 내가 이순신의 전철을 그대로 밞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산포로 출전하지 아니하면, 결국 파직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달포 전, 조정은 요시라로부터 대마도에 대기 중인 일본의 10만 대군이 조만간 부산포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는 조선 수군을 부산포로 유인하려는 요시라의 속임수였지만, 조정은 요시라의 말만 믿고 원균에게 부산포로 출전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었다. 원균은 장형을 당한 사실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원균이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부산포로 가자! 왜적들에게 조선 수군의 위용을 보여주마! 공을 세워 도원수 권율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날이 저물 무렵, 마침내 원균이 명을 내렸다.

  "내일 새벽에 출전한다! 부산포로 진격할 참이니, 오늘밤까지 채비토록 하라!" 

   7월 4일 새벽, 원균은 200여 척의 함선에 2만에 이르는 조선 수군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항했다. 때마침 닥친 장마 탓에 조선 수군은 닷새 후인 7월 9일에서야 부산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였다. 척후병이 원균을 향해 외쳤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왜선이 출몰했사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왜선이 까마득하게 몰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절영도(부산포 앞바다의 섬)에 무려 1000여 척의 왜선이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의 함대에 주눅이 든 원균은 다급히 퇴각 명을 내렸다. 

   "가덕도로 퇴각하라!"

   때마침 거센 역풍이 불어와 조선 수군은 녹초가 되도록 노를 재촉하여 반나절 만에 가덕도에 당도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400여 명의 병사가 해안가에 상륙하여 물을 기르고 있을 때, 사방에서 산천을 뒤흔들듯한 총소리가 울렸다. 

   "탕! 탕! 탕!"

   수천에 이르는 왜의 조총수들이 이곳 가덕도에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원균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즉시 퇴각하라!"

   원균은 물을 길던 400여 명의 병사를 버려둔 채 함선을 수습하여 견내량을 향해 퇴각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새벽에 견내량에 당도한 조선 수군이 해안가에 상륙할 무렵이었다. 또 다시 사방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탕! 탕! 탕!"

   견내량에서도 왜군이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새벽이라 왜군의 규모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원균은 급히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싸움다운 싸움 한번 못해보고 퇴각하기에 바빴다. 전례없는 연전연승으로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쳤던 조선 수군이 이토록 허무하게 연전연패를 당할 줄이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급히 철천량으로 퇴각한 후 5일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머물렀다. 이대로 한산도로 귀환한다면 파직을 면할 길이 없기에 칠천량에 200여 척의 함선을 정박시킨 채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에 오르다-

   

   이순신이 사흘째 머무르고 있는 회령포에 수백여 척에 이르는 피난선이 모여들었다. 이곳 회령포에서 이순신이 신병 모집에 나섰다는 소식에 전라도, 경상도 각지를 전전하던 피난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온 것이다. 왜군은 지나는 고을마다 방화, 살육, 겁탈,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전라도, 경상도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가는 형국이라 갈곳을 잃은 피난민들이 배를 구해 이순신이 있는 회령포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임진년에 왜군이 평안도, 함경도까지 점령했을 때도 이순신이 버티고 있었던 전라좌수영은 그야말로 전란의 무풍지대가 아니었던가! 갈곳을 잃은 피난민들에게 이순신은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때가 늦가을이라 살이 떨릴 정도로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신병들의 대부분이 헐벗고 굶주린 터라 군량과 의복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해남 현감 유형이 방책을 제시했다. 

   "피난민들에게 식량과 의복을 구하는 도리 밖에 없을 듯하옵니다."

   올해로 서른둘인 유형은 4년 전, 선전관으로 한산도를 찾아와 이순신을 처음 만났는데, 이순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로 총명한 장수였다. 

   이순신은 내키지 않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그 방법 밖에 없는 듯하네." 

   피난선이 까마득하게 이어진 해안가에 이순신이 이르자 피난선에 있던 피난민들이 배에서 내려 우르르 몰려왔다. 이들은 이순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통제사 대감! 부디, 우리 백성들을 버리지 마소서! 조선 수군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나이다!"

   이들은 이순신이 함대를 인솔하여 다른 곳으로 떠날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에워싼 백성들을 향해 이순신이 외쳤다. 

    "백성들은 모두 들을찌어다! 너희들이 내 뜻을 쫓으면 살 것이로되, 쫓지 아니하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뜻을 쫓겠느냐?"

    "통제사 대감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삼도 수군의 장졸들이 헐벗고 굶주려 있거늘, 어찌 능히 왜적을 막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에게 남는 여분의 양식과 의복이 있다면 장졸들을 위해 내어다오. 그리하면 이 나라의 사직을 구하고, 너희들도 살 수 있으리라!"

     "그리하겠나이다!"

    기실, 이순신 자신도 조만간 다가올 전투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자신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여기 피난민들도 모두 죽을 수 밖에 없으리라. 이순신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반드시 왜적들을 무찔러 이 나라의 백성들을 지켜내리라!'

   수백 척의 피난선에서 피난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양식과 의복을 내놓자, 해안가에 군량과 의복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다. 피난민들의 도움으로 군량과 의복 문제를 해결하자, 이순신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우리 수군을 위한 너희들의 갸륵한 정성에 보답하여, 기필코 이 나라를 침략한 왜적들을 섬멸하고야 말겠다."

   이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제사 대감!"

   "마공!"

   한때 선공감주부로 임진년에 전라좌수영에서 거북선 건조에 참여했던 마하수였다. 이순신은 옛부하인 마하수의 손을 덥썩 잡으며 물었다. 

   "마군관, 그간 잘 지냈는가?"

   근래 들어 부쩍 수척해진 이순신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하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소생이야 그럭저럭 지냈사오나, 대감께서는 안색이 말이 아니옵니다......"

   이순신의 안색은 마치 산송장과도 같이 핏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금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데 이어 어머니 상을 당했고, 칠전량 패전으로 궤멸된 수군 재건을 위해 연안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것이었다. 이순신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심려치 말게나. 근래 먼길을 다녀와 몸이 좀 피로한 것일 뿐일세. 헌데, 마군관,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소생의 고향이 왜적들에게 쑥대밭이 되어 가족들을 데리고 여러 섬을 전전하다가, 대감께서 이곳에서 신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이옵니다."

   그러고 보니, 마하수의 바로 뒤에 건장한 청년 네 명이 서 있었다. 마하수가 네 명의 청년을 차례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소생의 아들이옵니다. 

   마하수의 네 아들 마성룡, 마위룡, 마이룡, 마화룡이 거의 동시에 이순신에게 인사했다. 

   "통제사 대감께 인사올리나이다."

    마하수가 이어 말했다. 

   "소생의 아들들이 모두 검법이 제법 쓸만 하니 대감께서 거두어 주소서."

    마하수는 자신의 네 아들을 수군에 입대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국난에 처한 나라를 위해 자식을 입영시키다니, 참으로 장한 결정일세."

   이때였다. 선비 차림의 사내가 이순신에게 인사를 건넸다. 

   "통제사 대감, 오익창이옵니다."

    -12척의 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