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성웅 이순신, 조정우 역사소설 소개글

조정우 2014. 6. 20. 08:00

   그간 이 소설을 집필하느라, 그간 이웃 블로거님들께 인사도 못드렸군요. 

    아직 수정할 부분이 있어, 지금도 마음은 바쁘지만 그래도 일차적인 집필이 끝나 한숨은 돌렸습니다. 

   아직 출판사를 정하지 못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긴 한데, 그래도 짬나는데로 여러 이웃 블로거님들과 인사도 하고 싶네요. 

   아,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실, 저의 소설 장르가 역사소설이라, 지난 2012년 9월 '김춘추'를 출간하기 이전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계획을 해왔습니다. 

   다만, 우리 민족의 영웅 중 유일하게 성웅이라 불리우시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생애를 소설로 쓴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 부담도 되서, 올해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고, 바로 며칠 전에 집필을 완료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 상태입니다. 

   좋은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이웃블로거님들이 계신 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사실, 제가 2009년 본격적으로 다음뷰 서비스, 그 당시는 다음 블로거 뉴스였던가요? 

   아무튼 다음에서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이웃블로거님들과 방문해주신 블로거님들, 구독자 블로거님들 등, 많은 블로거님들과 교류를 해왔는데, 제 성격이 다소 내성적이라 대부분의 이웃블로거님들과, 블로그상으로만 교류하고 만 것이 아쉽네요.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온라인을 넘어, 이웃블로거님들과 교류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비록 다음뷰 서비스가 끝나지만, 다음블로그, 티스토리 블로그 서비스가 건제하니 앞으로도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소설가로 데뷰할 수 있었던 것이, 

   이웃블로거님들의 격려와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2009년부터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했는데, 여러 이웃블로거님들께서 재미있다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결정적인 동기는, 오래전부터 이순신 장군께서 어떤 전술로 세계 역사상 전후무후한 불패의 신화를 이루셨는지,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는데, 그 부분을 만족시켜 주는 서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소설의 경우,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에 대해 대략적이라도 묘사한 소설이 없는 것 같아,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등의 해전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이, 이 소설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이미 쓰여진 것들, 즉, 이미 알려진 것들이 아니라, 현재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강강술래가 명량해전의 허허실실의 전술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 오래전부터 이순신 장군이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추게 하여, 허장성세 전술로 왜군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충분히 신빙성이 있습니다. 

    노래 가사도,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도 우수영은 강강술래 우리 장군 대첩지라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장군의 높은 공은 강강술래 천추만대 빛날세라 강강술래......"

     저 나름대로의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겠습니다. 

     자, 명량해전 중, 부녀자들이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라도 우수영은 강강술래 우리 장군 대첩지라 강강술래~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면, 왜군은 명량 해안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지례 겁을 먹고, 명량에 상륙해 조선 수군의 진영이 있었던 우수영을 불태워 조선 수군의 근거지를 없애는 것을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명량해전이 있었던 날, 일본은 명량 서쪽 해안에 상륙을 했고, 의병들이 싸워  상륙한 왜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더 발견한 사실은, 명량해전 이전에 대규모의 일본군이 전라우수영 방향으로 진격했지만, 즉, 확실하진 않지만, 시기상으로 볼 때 전라우수영으로 진격하려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의병들의 활약에 막혔다고 하는군요. 

   아, 지면상의 문제로 명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가, 근래들어 많은 역사가 왜곡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래 들어,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에서 전투 중 갑옷을 벗어, 사실상 자살한 것이다, 이러한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마치 사실인 양 널리 퍼져 제가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께서 이순신 장군이 사실은 갑옷을 벗어 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주 근거가 미약한 설에 불과한 이야기가 마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싸움이 한창인데, 대장이 어떻게 자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것은, 전투 중 위기에 빠진 진린 도독을 구하려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맞은 것이라, 여러 문헌에 나오는데, 이런 문헌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이룬 것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과 대포 덕분이지,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 뛰어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사실이 전혀 아닌데,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수군도 보통은 아니었고, 반면에 당시 조선은 전쟁 준비를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즉, 일본군은 조총이 주력 무기였고, 조선 수군은 대포가 주력 무기였는데, 이 대포가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판옥선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때, 도성인 한성에조차 대포도 없었다지요. 한 두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께서 수십 척의 판옥선마다 20여 개의 대포를 갖추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이 말하는데, 이 사실 하나만으로,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비무환의 정신이라 할까요. 

   그리고, 당시에 흔들리는 바다에서 대포를 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대포를 잘못쏘면, 자기 배에 맞을 수도 있다는...... 

   실제로, 이 당시만 해도 배에다 대포를 설치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고, 설령 설치한다 해도 10번 쏘면 한번 맞을까 말까해서, 일부러 대포를 배에 장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무게만 나갈 뿐, 실전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께서 연구를 통해(물론 연구는 기술자가 했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도 대포의 전문가라 대포를 직접 설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대포를 설게한 것이 아니라 해도 기술자들을 시켰다 해도 보통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따지면 한글도 집현전의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대포의 적중률이 아주 높였고, 그 결과 대포로 일본 수군을 앞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조선 수군의 무기가 우월해 일본을 이긴 것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지요. 

   한가지 알아야할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은 거의 완벽한 승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첫번째 승리인 옥포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었고, 치열했던 한산해전에서도 전사자는 1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보통 전투에서 대승을 했다고 해도, 전투가 격렬하면 병력의 10% 가까이 전사 혹은 부상자가 생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대부분이 불과 10여명 이하의 전사자가 발생한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였지요. 

  그리고, 명량해전에서는 13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의 함대를 대파하는 그야말로 기적같은 승리를 일구어 내지요. 

  당시, 여러 대신들이 말하길, 한신이나 제갈공명이 살아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신과 제갈공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당시는 문관들도 병법에 대해 잘 알았고, 종종 문관들이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기도 했고, 그런데, 대신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그만큼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 고금에 비할 데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실들이 점점 왜곡되어, 이순신 장군이 대포 덕분에 일본 수군을 이긴 것이라, 폄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 장군조차 이순신 장군은 '군신'이다, 이렇게 표현했다 하는데, 왜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을 폄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지요. 

   그래서, 저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수많은 오류들을 바로잡고, 역사에 길이남을,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 어떤 과정으로 이긴 것인지를 쓰고자,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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