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1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6. 22. 08:00

    이순신 조정우 역사소설 1화 거북선 진수식



이순신 불멸의 신화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4-07-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의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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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는 여수 해안가에 수만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검은 전립을 쓰고, 푸른 납의를 입은 1만여 병졸들의 맨 앞 열에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붉은 소매를 단 남색 철릭(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군복)을 입고, 산호주로 만든 구슬갓끈을 단 검은색 전립(군장용 모자)을 쓰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굴강(선박의 수리 및 정박을 목적으로 만든 방파제로 썰물 때 물이 빠지고 밀물 때 물이 차는 구조로 거북선을 건조하고 정박한 장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랑이 눈썹, 부리부리한 눈, 우뚝 솟은 코, 제비턱, 용수염의 팔척 장신 사내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의 시선은 굴강에 정박되어 있는 거북선에 집중되었다. 때마침 밀물이 굴강 안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온통 철갑을 씌운 거북선이 햇살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났다. 귀갑 무늬의 동철을 씌운 등판은 한치의 발 디딜 틈없이 송곳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길이 13자, 넓이 3자인 거북선 머리는 마치 살아있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여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180여 명의 장졸들이 일제히 거북선에 승선했다. 이순신이 깃발을 치켜들며 외쳤다. 

   "발진하라!"

   길이 113자 (약 34 m), 폭 34자 (약 10 m), 높이 21자 (약 6.3 m)의 육중한 거북선이 오색기를 펄럭이며 굴강의 입구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양옆에는 전라순찰사 이광을 대신해 온 군관 남공심과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서 있었다. 남공심이 굴강을 벗어나는 거북선을 찬찬히 훑어 보더니 용머리 아래에 달린 도깨비 머리 모양의 돌출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돌출부는 대체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이오?"

   "충각(뱃머리에 장착하여 적의 배를 부수는 장치)이오."

   거북선 머리 아래에 있는 도깨비 머리 모양의 반구형 돌출부는 돌격시 적군의 배에 충돌시켜 부수는 충각이었다. 남공심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철갑을 씌운 저 육중한 거북선이 제대로 앞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억기가 남공심의 말에 동의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거북선은 바다 가운데로 나가자 마치 나는듯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질주했다. 수만의 군중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거북선의 속도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남공심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저, 저럴 수가......"

   격군 여섯이 젓는 거대한 노를 양쪽에 여덟개씩 단 거북선은 조선의 그 어떤 배보다 빨랐다. 온통 철갑을 씌운 육중한 거북선이 이토록 빠를 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남공심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며 철갑을 씌운 거북선의 등판을 가리켰다. 

    "속도는 참으로 빠르오. 허나, 저 거북선 한 척에 저토록 많은 동철을 쓰다니,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니오?"

   이순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외다. 거북선 스무 척만 있다면, 천 척의 왜선이 쳐들어온다 한들 능히 물리칠 수 있을진대, 어찌 무모하다 할 수 있겠소?"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이순신의 초청에도 거북선 진수식에 오지 않고 군관 남공심을 보냈다. 이순신과 같은 덕수 이씨인 이광은 이순신을 철썩처럼 신임했지만, 거북선을 건조하려는 이순신의 계획 만큼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남공심이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철을 씌운 육중한 거북선이 전투 중에 침몰하지 아니한다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여하튼 거북선에 대한 전라도 차원의 지원은 불가하다는 것이 순찰사 나리의 뜻이외다."

    이순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쪽 바다의 방비를 위해 거북선이 꼭 필요하니, 공이 순찰사께 잘 말씀해 주셨으면 하오."

    남공심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수사의 뜻을 순찰사께 전해드리리다."

    안타까워하는 이순신의 눈빛과 마주친 이억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북선 한 척에 저토록 많은 동철을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판옥선과 대포를 더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

   이순신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밀정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축성한 나고야에 20여 만의 일본군이 집결해 있다고 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순신이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적선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면 최소한 세 척의 거북선이 필요하오. 일단 거북선의 진수식을 지켜본 연후에 다시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거북선은 순천부 선소, 방답진 선소, 여수 선소, 세곳에서 각각 한 척씩 건조되었지만, 동철이 부족하여 겨우 여수 선소에서 만든 거북선만 등판을 비롯한 배의 윗 부분에 철갑을 씌울 수 있었다. 

    남공심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억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일단 한번 봅시다."

   양녕대군의 4대손 이연손의 아들인 이억기는 누구보다 이순신을 아끼고 있었지만, 거북선 건조 만큼은 찬성할 수 없었다. 판옥선 수십여 척을 만드는 재정이 필요한 거북선이 침몰이라도 한다면 이순신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 이억기는 이순신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순간 거북선의 입에서 천지를 진동시킬 듯한 굉음을 내며 불을 뿜었다. 

   "쾅!"

   거북선의 입에서 발포한 포탄이 해안가에 목표물로 세운 목책에 적중했다. 목책이 산산이 부서졌다. 실로 엄청난 대포의 위력에 이억기가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저것은 천자포가 아니오?"

   굳게 다물었던 이순신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천자포가 아니라 지자포요."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육중한 천자포를 배에 장착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뱃머리 앞으로 튀어 나온 길이 13자의 거북선 용머리에 천자포를 설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쾅! 쾅!"

   거북선에서 연이어 포성이 울렸다. 거북선 정면에서 발사된 두 발의 포탄에 목책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억기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자포의 위력이 천자포에 못지 않구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조선 수군이 개량한 지자포요."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래 조선 수군의 주력 대포인 지자포 개량에 힘써왔다.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천자포를 주조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지자포 개량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거북선이 부두에 정박하자, 이순신은 이억기, 남공심과 함께 거북선에 승선하였다.

그때 푸른 철릭을 입은 군관이 이억기와 남공심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소인은 군관 나대용이라 하옵니다."

   거북선을 설계한 나대용이었다. 나대용은 손짓을 해가며 이억기와 남공심에게 설명했다. 

    "거북선은 기존의 동철보다 훨씬 튼튼한 동철 합금을 씌워 대포의 포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사옵니다."

    나대용의 설명에 이억기가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참으로 천하의 기물이요!"

    어느새 이순신을 애워싼 병졸들이 만세를 외쳤다. 

    "조선 수군 만세! 거북선 만세!"

    거북선의 병사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기가 충천했다. 이억기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북선이 세 척만 있다면 천 척의 왜선이 온다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듯싶구나!'

   거북선에서 내려서자, 이억기가 이순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좋소. 내, 거북선 건조에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리다!"

   이순신이 이억기의 손을 꼭 잡았다. 

   "참으로 고맙소!"

   남공심도 마음이 바뀐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순찰사 나리를 설득해 보리다."

   이때 군중들이 이쪽으로 몰려와 만세를 외쳤다. 

   "조선 수군 만세! 조선 만세!"

   이 무렵 조선팔도에는 조만간 전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지만, 전라좌수영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전라좌수영 백성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이순신이 있는 한 전라좌수영 수군은 천하에 적수가 없으리라.

   이억기와 남공심이 전라좌수영을 떠나자, 이순신은 해안가를 순시했다. 이순신의 시선이 해안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전라좌수영 해안가 모래사장 곳곳에 함선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나무 조각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나무 조각들이 조선에 없는 삼나무인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떠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남해안 곳곳에서 이토록 많은 양의 삼나무 조각이 발견된 것은 일찌기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던가!

   수개월 전에 이순신은 조정에 장계를 올려 남해안 곳곳에서 발견된 다량의 삼나무 조각들을 근거로 일본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고했건만, 조정의 대응은 너무도 안일했다. 이순신의 장계를 받은 조정 대신들은 일본에서 떠내려온 삼나무 조각들이 함선의 파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리당략에 빠진 조정 대신들은 일본이 조만간 쳐들어올 것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요행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푸르디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하느님, 부디 조선의 금수강산을 지켜주소서! 조선의 금수강산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이순신은 문득 고향 아산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오십여 년간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어머니 변씨, 스물여덟 해를 동심일체가 되어 함께 한 부인 방씨, 효성이 지극한 세 아들과 딸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이순신에게 가족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이순신은 스물여덟 해 전 시집왔던 곱디 고왔던 방씨의 자태를 떠올리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부인, 이제 곧 전란이 닥쳐올 터인데, 내가 가족을 위해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전란이 닥치면 가족의 안위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