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불멸의 신화,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밝힌다!

조정우 2014. 8. 15. 11:00

   이순신 불멸의 신화,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밝힌다! 

   


이순신 불멸의 신화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4-07-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의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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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해전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23전 23승 해전의 신화를 이룬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께서 학익진이나 일자진을 주로 사용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많이 사용한 진법 중 하나가 정자진이다. 

   정자진이란 글자 그대로 丁자 모양의 진으로, 정자진은 영어로 T자와 비슷하여 T자진이라고도 하는데, 일렬 횡렬진인 일자진과 일렬 종렬진의 장사진이 겹친 형태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일자진과 장사진의 중간 형태로, 선봉이 중앙에서 적의 중앙을 찌르는 동시에, 후위는 길게 늘어서 공격하는 전술로, 사천해전 당시 거북선이 한 척 밖에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설령 당시 거북선이 두 척이나 세 척이라 해도 적군을 포위할만한 함선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라우수영군이 합류하여 삼도 수군 연합군이 결성되기 이전에 이순신 장군의 진법은 아마도 정자진을 주로 썼을 것으로 사료된다.  

   사천해전부터 거북선이 몇 척의 판옥선을 거느리고 선봉에 나서 공격했기에 사천해전부터 쓰인 전술은 일자진이 아니라 정자진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학익진은 반월진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반월 모양으로 진을 펼쳐 있다가 적이 중앙을 공격할 때 포위하여 적을 섬멸하는 포위 전술이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최초로 반월진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니발의 반월진이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과 아주 비슷하다. 

   즉, 적이 중앙을 공격할 때 좌우 양쪽에서 포위하여 적을 공격하는 전술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니발은 좌우 양쪽에 기병을 앞세워 포위하였고, 이순신 장군은 좌우에 양쪽에 거북선을 앞세워 포위하였다는 점인데, 병력이 최소한 비슷하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전술이 바로 반월진, 학익진이다. 

   카르타고가 망할 때, 한니발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반월진으로 로마의 명장 스피키오를 상대했다가 참패했는데, 이처럼 반월진이나 학익진은 포위가 제대로 안되면 오히려 병력만 분산되어 중앙을 집중 공격할 때 무너지기 십상이다. 

   반대로 적군의 중앙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만 있다면, 사방에서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학익진과 반월진은 형태가 비슷하면서도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진법인데, 아마도 반월진에서 중앙을 보강한 진이 학익진이 아닐까 싶다. 

   즉, 학익진의 머리 위치인 중앙에 병력을 충분히 두어 적군의 중앙 공격을 막으면서 포위 전술을 펼치는 것이다. 

   문헌을 보면, 학익진이라는 말이 임진왜란 이전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육전에서의 학익진은 이순신 장군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수전에서의 학익진은 문헌에도 언급이 없어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사료된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학익진을 사용한 것은 한산 대첩이 거의 확실하다. 

   당항포 해전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 장군이 가세한 삼도 수군 연합군이 일본 수군을 포위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학익진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포위했다고 학익진은 아닐 듯싶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당항포 해전에서 학익진을 썼다면, 난중일기나 승첩 장계에 언급하지 않았을까?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학익진을 언급한 것은 견내량파왜병장, 즉, 한산 대첩 때였다. 일단, 당항포 해전은 이억기 전라우수사가 전라우수영군을 이끌고 와서 삼도 수군 연합군이 처음으로 결성된 상황이라,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은 이순신 장군이 자주 쓴 전술로 알려진 일자진이 사실은 명량 해전에서 유일하게 쓰인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자진은 말그대로 일자로 진을 펼치는 것인데, 진의 중앙에 선봉군과 중군을 두는 경우가 많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일자진보다는 정자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적진과 떨어져 포격전을 펼칠 때는 문자 그대로 일자진을 펼쳤을 수도 있지만, 이때도 일렬로 진을 펼친 일자진보다는 이렬로 진을 펼친 직진이 아닐까 싶다.  

   일자진은 횡렬로 일자로 진을 펼치는 진인데, 수십 척의 함선을 일자로 진을 펼치기 보다는 협선과 포작선을 판옥선의 사이에 두어 이렬 이상으로 진을 펼쳤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편의상, 직진을 일자진으로 불렀을 가능성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자진이 아니지만, 중앙만 제외하고 일자진이라면 충분히 일자진이라 불렀을 가능성은 있다. 

   아마도 명량 대첩에서도 13척, 혹은 12척의 함선이 나란히 일렬로 일자진을 펼쳤을 가능성보다 한 두척의 함선이 앞에서 대장선을 호위하는 진을 펼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