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명량 대첩의 미스테리, 왜장 마다시는 누구인가?

조정우 2014. 8. 12. 15:00

   명량 해전에 대한 기록은 아직도 베일에 휩싸여 있는데, 왜장 마다시가 누구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명량과 판박이라는 시코쿠의 미야쿠보가 근거지인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마다시라는 설이지만, 명량 해전에서 전사한 또 다른 일본 장수 간 마타시로가 마다시라는 설도 있다. 

   간 마타시로의 발음이 마다시와 비슷하여 간 마타시로가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구루시마 미치후사라는 설이 정설이 틀림없다. 

   주목할 점은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형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당포 해전, 혹은 당항포 해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보면,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당포 해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오류로 보인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포 해전의 왜군 대장은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아닌 가메이 코레노리로,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마에 화살을 맞고도 태연히 지휘했다는 왜군 대장은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아닌 가메이 코레노리다. 

   권준의 화살을 가슴에 맞은 가메이 코레노리는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일본측 기록에는 가메이 코레노리는 당포 해전에서 죽지 않고 살아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천하의 패권을 쥐게 하고, 도요토미 일가의 몰락을 가져온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로 보아 가메이 코레노리가 당포 해전에서 죽은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러다 보니 가메이 코레노리와 함께 당포 해전에 참가한 구루미사 미치유키가 전사한 것으로 처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이마에 화살을 맞은데 이어, 가슴에 화살을 맞고 전사한 왜장이 가메이 코레노리가 아니라 구루시마 미치유키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던 조선 여인 억대의 진술과 불일치하는 것으로, 억대의 진술에 의하면, 이마에 화살을 맞은 장수는 가메이 코레노리가 맞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혼동이 오는 것은 가메이 코레노리가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메이 코레노리도, 구루시마 미치유키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측 기록에는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당항포 해전 또는 율포 해전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구루시마 미치유키가 어디서 죽었던 간에 당포 해전에서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당항포 해전의 왜군 대장은 다름 아닌 구루시마 미치후사라는 기록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임진년에 참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측 기록에 의하면, 당항포 해전에서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전사했고,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오른쪽 눈을 잃었다고 한다. 

   형과 오른쪽 눈을 잃은 원한을 갚기 위해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명량 해전의 대장으로 온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