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명량 대첩의 7대 미스테리를 밝힌다! 1화

조정우 2014. 8. 6. 09:00

  명량 대첩의 7대 미스테리를 밝힌다! 1화

  


이순신 불멸의 신화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4-07-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의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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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척으로 330여 척의 일본 함대를 격파한 명량 대첩은 미스테리가 한두개가 아니다. 마치 세계 7대 미스테리처럼, 한국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미스테리가 한두개가 아니다.

필자 역시 이 소설을 쓰기 전에는 여섯 가지의 미스테리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대체 어떤 전술로 이긴 것일까?

   포탄과 화약은 충분했을까?

   일본군은 왜 대포를 쏘지 않았을까?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시간은 언제일까?

   명량에 철쇄를 설치해 일본 함대를 전복시켰다는 설이 사실일까? 

   강강술래는 명량 대첩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의문들은 작가의 말에서 밝혔는데,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은 일본 함대가 쳐들어올 날을 어떻게 알았을까? 

   9월 14일 척후 군관 임준영의 보고를 토대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조만간 쳐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수영으로 전령선을 보내어, 우수영 앞바다와 양도 앞바다에 걸쳐 있는 피난선의 피난민들에게 곧 싸움이 벌어질 터이니 육지로 피난가도록 하였다. 

   난중일기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명량 해전이 있기 하루전'필사즉생, 필생즉사'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이 9월 15일에 장수들을 불러 말하기를,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하였고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말은 76전 64승 12무,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추앙받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장 오기의 저서, 오자병법에서 인용된 말이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은 임준영의 보고를 통해 일본 함대가 9월 16일 보름 사리를 이용해 명량으로 쳐들어 올 것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명량의 물살이 가장 거센 보름 사리를 이용해 쳐들어 오리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고, 그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정유년 9월 14일 자 난중일기가 말해주고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 당시 임준영이 김중걸이라는 자를 통해 조선 수군을 섬멸하고 한양으로 쳐들어가려는 왜군의 모의를 전해줌으로써 알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임진년에 포로가 된 김해인(김해 사람)이 이 사실을 김중걸에게 몰래 한밤중에 귓속말로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김해인은 여인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도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이 김해인은 왜장에게 빌어서 사로잡힌 김중걸의 포박을 풀 정도로 왜장은 호의적이었는데, 왜장의 신임을 받아 왜군의 모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엿들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엿들었다 해도 자유롭게 왜장의 처소를 드나들 정도로 왜장의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해남에는 명량 대첩을 앞두고 왜의 함대가 명량으로 쳐들어올 날짜를 가르쳐준 어란포의 여인, 어란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 어란 여인이 김중걸을 통해 왜군이 명량으로 쳐들어올 날짜를 알려줌으로써 명량 대첩의 승리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나머지 6가지의 미스테리는 다음 기회에 하나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다. 

   먼저, 이순신 장군은 대체 어떤 전술로 이긴 것일까? 

   이 부분을 지난 사흘에 걸쳐 포스팅을 했는데, 좀 더 상세히 살펴보겠다. 요약하려면, 명량해전도(鳴梁海戰圖一)를 올려야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내일의 미스테리, 이순신 장군은 대체 어떤 전술로 이긴 것일까? 

    내일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 간략히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이 홀로 명량에서 가장 좁은 해협에서 몇 시간을 버티어냈다. 일종의 버티기 전술인 셈이다. 명량의 거친 물결이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전투가 시작될 무렵은 필시 물살이 가장 거센 대조기였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아마도 밀물의 대조기가 썰물의 대조기로 바뀌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썰물의 대조기로 바뀔 때 총공격에 나서며 승부수를 걸지 않았을까? 

   자세한 것은 내일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