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2화

조정우 2015. 12. 3. 17:00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2화 조정우 퓨전 역사소설


   가족과 가문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


   유성룡은 이순신의 손을 잡아 방으로 인도했다. 자리에 앉은 이순신은 유성룡이 자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차려 놓은 제사상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제사상에는 이순신이 평시에 좋아하던 장국, 어육, 숭어전, 고사리, 취나물 등의 음식들과 이순신이 즐겨 마시던 제주(술 종류)가 차려져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아는 자신을 위해 이처럼 정성스럽게 차려진 제사상을 보자 이순신은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둘 사이의 한동안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유성룡이었다. 


    "술 한잔 하세."


    침묵으로 무거워진 분위기를 해소하는데는 술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유성룡이 제주가 담긴 술병을 기울여 따르려 하자 이순신이 말했다.


    "그 술은 마시지 않겠네."


    제사가 끝나면 제사상의 술을 마시는게 관례였지만, 이순신은 살아있는 자신의 제사상에 차려진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술은 제사상에 차려진 제주 뿐이었다. 


    "음식이라도 좀 들겠는가?"


    음식도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들 뿐이라 유성룡이 음식을 권하자 이순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냉수 한사발이나 떠다주게."


    냉수 한사발을 마신 이순신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이번에도 유성룡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이순신이 한동안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1년 전, 내가 왜적의 총탄에 맞긴 하였으나 죽지는 아니하였다네."


    "그래서 자네의 자식들이 내가 관을 열지 못하게 했던 것이로군......"


   유성룡은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순신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을 때 이순신의 두 아들 이회와 이울이 이순신의 관을 열지 못하게 했던 이유를. 유성룡이 오랜 벗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관을 열려고 했을 때, 이순신의 아들 이회와 이울이 이순신의 유지라며 유성룡이 관을 열지 못하게 했었다. 그때는 이순신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네. 주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죽음을 위장했던 것일세."


   유성룡은 탄식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것이로군. 그때 주상께서는 우리의 충정심을 의심하셨지."


   유성룡은 알고 있었다. 그때 이순신이 죽음을 위장하지 않았다면, 필시 화를 당하였을 것이다. 선조는 12척으로 300여 척의 왜군 함대를 깨뜨린 이순신을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했었다. 전란이 끝난 마당에 이순신은 의심이 많은 선조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을 뿐이었다. 


   한때 선조가 철석처럼 믿었던 유성룡조차 노량 해전이 있었던 1년 전 11월 19일, 서인들의 모함으로 파직을 당한 후, 지금까지 하회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고의 충신 이순신이 자신의 한 목숨 살리고자 임금을 속일 리가 없었다. 가족과 가문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틀림없으리라. 


   유성룡은 이순신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몹시 안타까운 듯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자네를 이해하네. 허나,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이 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매한가지니, 지금처럼 죽음을 위장하여 산다면 무할탈 걸세."


   유성룡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유성룡은 지금처럼 이순신이 죽음을 위장하여 살다 죽는다면 이순신의 재능을 썩히 것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이순신은 그야말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불세출의 명장이 아닌가! 


    이순신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임금을 기만한 중죄를 지은 몸일세. 죽음 이외에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유성룡이 곰곰히 생각해보다 입을 열었다. 


   "한번 방도를 생각해보세."


   "다른 방도는 없네. 조용히 살다가 죽는 날이 오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유성룡은 이순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몸이 죽을지언정, 그대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네. 그대는 이 나라를 구한 성웅이요. 이 백성의 희망일세."


   이순신은 굳은 얼굴로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지 않을걸 그랬네. 내, 자네에게 완이를 부탁하러 왔건만......"


   지난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왜군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을 때, 이순신의 조카 이완은 약관의 나이로 조선 수군을 지휘하여 이순신이 노량 해전에서 일구었던 승리를 지켜냈다. 


   어린 나이에 용맹과 지략을 갖춘 이완이 언젠가는 자신에 못지 않은 명장이 되리라 기대한 이순신은 유성룡에게 이완을 부탁하려고 발걸음을 했던 것이다. 


    순간, 유성룡의 뇌리에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묘책이 생겼다.


    '옛날에 죽음을 위장하여 임금의 용서를 받은 신하가 있지 않은가!'


   시종 어두웠던 유성룡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내가 주상의 뜻을 떠보겠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의논해보세."


   이순신이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유성룡이 이순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나를 믿게나. 내 목숨을 걸고..."


   유성룡은 자신의 목숨만으로는 이순신과 이순신의 가족과 가문을 지키지 못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바꿔 말했다. 


   "아니, 내 목숨과 내 가문을 걸고, 자네와 자네의 가족과 가문을 지킬걸세."


   이순신은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가문을 걸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가문을 지키겠다는 유성룡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순신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뜻을 따르겠네."


    "참으로 고마우이."


    유성룡은 이순신이 자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순신의 목숨 뿐만 아니라 이순신의 가족과 가문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믿어준 것이 한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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