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7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0. 12. 18. 06:00

 

 선덕여왕 7화

 

 

 선화공주는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선화공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이 내 운명이 아니겠느냐?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운명이란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선화공주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늦었다. 자식들이 백제에 있는데, 어미가 어찌 자식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느냐?"

 덕만공주는 한숨을 지었다. 선화공주는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절에 유폐되기 전까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였다."

 

 
 26년전, 천하절색의 미모로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선화공주에게 갑자기 시련이 찾아왔었다. 서동요를 통해 선화공주가 밤 몰래 서동을 만난다는 소문이 온 서라벌에 퍼진 것이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멋도 모르고 서동요를 부르면서 서라벌에 퍼졌지만, 나중에는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다.
 소문을 들은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불러 엄히 꾸짖었다.

 "소문이 사실이냐?"

 "아니옵니다. 소녀, 서동과 일점의 면식조차 없사옵니다."

 "허면, 소문이 어찌 생긴 것이냐?"

 "소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진평왕은 화를 버럭 내며 호통쳤다.

 "네가 행실을 바로 하였다면, 어찌 이같은 망측한 소문이 생겼겠느냐?"

 선화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녀, 한번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실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진평왕은 화를 내며 용상을 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듣기 싫다. 온 나라의 백성들이 너의 부덕한 행실을 노래하고 있다. 네가 정녕 잘못이 없다면, 어찌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겠느냐? 짐의 명이 있을 때까지 계변성(울산)에 있는 절에서 반성하고 기다리고 있으라."
 선화공주는 크게 탄식하였다.
 '아바마마께서 나의 말을 믿지 않고, 허황된 소문만을 믿으시다니...... 평생토록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적이 없거늘,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구나!'
 절에 유폐된 선화공주는 날마다 진평왕과 왕후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느 날 선화공주가 산책을 하고 돌아와보니 서찰 봉투가 상위에 놓여 있었다.
 선화공주는 호기심이 생겨 서찰 봉투를 뜯어 보았다.

 '선화공주, 나는 백제의 왕자 무강이오. 오래전부터 그대를 연모하였는데, 백제에서 그대가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이다.

 나는 예전에 정적들에게 쫒겨 신라에 신분을 숨기고 숨어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선화공주 그대의 행차를 보았소.
 그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소.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대를 보자 나의 마음을 빼았겨 버렸지만, 정적들에게 쫒기고 있었던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대를 잊어려고 했었소.
 세월이 흘러 나는 왕자로서 다시 백제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대 생각에 하루하루가 그리움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소.
 온종일 그대 생각으로 가득하여 식사를 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꿈을 꾸는 듯 했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당신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대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 온 것이오.
 선화공주, 나는 깨달았소.
 내가 그대를 얼마나 연모하고 있는지......
 그대가 이곳에 유폐된 것은 당신의 정적과 후비들의 모함 때문이라고 들었소.
 그러니 다시 돌아가기 힘들 것이오. 나와 함께 백제로 가는 것이 어떻겠소?
 이제 그대에게 나의 목숨을 맡기겠소.
 내일 자시에 그대를 찾아가겠소.

 만약 그대가 나와 함께 갈 수 없다면, 나의 목을 그대의 아버지께 바치시오. 
 나, 무강의 목을 보면 그대의 아버지 진평왕은 크게 기뻐할 뿐만 아니라 그대는 큰 공을 세워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나의 목이 그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의 목숨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오.
 선화공주, 나의 운명을 그대에게 맡기겠소.'

 

 선화공주는 서찰을 읽은 후 촛불에 태웠다.
 '무강이 어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을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보면, 신라 내부에 첩자가 있음이 틀림없구나. 하지만 정말 호의로 찾아온 것 일지도 모르는데, 어찌 해야 될까?'
 선화공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내가 정말 그를 잡아 아버지께 바치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유배생활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나에게 호의로 온 것인데, 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하루가 지나 밤이 되어 무강이 오겠다는 시간이 가까워오자 선화공주는 초조해졌다.
 '무강, 부디, 오지 마시오. 그대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소.'
 선화공주는 무강왕자가 자신을 찾아왔다가 잡혀 죽을까봐 걱정되었다.

 자시에 가까워오자 선화공주는 무강을 피하기 위해 호위병사들을 거느리고 산책을 갔다. 선화공주는 축시가 되서야 처소로 돌아왔는데, 어제처럼 서찰이 상위에 놓여 있었다.

 '선화공주, 그대가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겠다면, 병사들을 시켜 나의 목을 베시오.
 그것이 그대를 잊을 수 없어 고통받는 나를 도와주는 일이요. 
 나의 거처를 알려줄테니 나를 만나지 않겠다면, 그대는 병사들을 보내 나를 잡으시오.'

 서찰에는 무강왕자의 위치를 표시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선화공주는 약도를 종이에 배낀 후 서찰을 촛불에 태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