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9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0. 12. 20. 06:00

 

 선덕여왕 9화

 

 

 선화공주는 칠흑처럼 어두운 밤길을 가슴을 졸이며 걸어갔다. 어디선가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소름이 돋았지만 용기를 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약도에 표시된 장소의 근처에 이르자 초막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집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볼 때 집 안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선화공주,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소."
 "그대는......"
 "무강왕자요."
 무강왕자는 훨친한 키에 옥을 깍아 놓은 듯한 얼굴의 미남자였다. 달빛에 비치는 선화공주의 자태는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무강왕자는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여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선화공주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강왕자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선화공주,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오."
 선화공주는 낯선 사내의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졌지만, 누가 볼까 두려워 할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선화공주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무강왕자에게 물었다.
 "무강왕자, 내, 그대에게 물어 볼 것이 있어 왔소."
 "말씀해 보시오."
 "서동이라는 자를 알고 있소?"
 "서동은 신라인이거늘, 내 어찌 알겠소?"
 서동은 무강왕자가 신라에서 사용한 가명이었지만 무강왕자는 시치미를 떼었다.
 선화공주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무강왕자를 바라보았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찌 알고 찾아왔소?"
 "우연히 알게 되었소. 오래전 나와 함께 신라에 망명한 자가 있는데, 그가 여기서 공주를 보고 나에게 연통해서 알게 된 것이오."
 "허면, 그자는 밀정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그는 이제 신라의 선량한 백성일뿐, 백제와는 아무 연관이 없소."
 "선량한 백성이라면 어찌 적국의 왕자에게 연통할 수 있소?"
 "나 또한 연통만 받았을 뿐,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오. 공주를 공경하여 어려움에 처한 공주를 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겠소?"

 선화공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디, 나를 믿어주시오."

 "나는 그대를 모르거늘, 어찌 그대를 믿을 수 있겠소?"

 "그대가 나를 믿지 않았다면, 여긴 어찌 오셨소?"

 선화공주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었다.

 "내, 궁지에 몰려 죽을 각오로 온 것이오. 만일 그대가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이 비수로 목숨을 끊겠소."

 "선화공주, 부디, 나를 믿어주시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에 무강왕자가 입을 열었다.
 "선화공주, 꿈에도 그리던 그대를 다시 만났으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이제 모든 것을 그대의 뜻에 맡기겠소."

 선화공주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내, 그대가 다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소. 나와 함께 백제로 갑시다. 허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대를 지켜주겠소. 아니면 나의 목을 베어 진평왕에게 바치시오. 어느 쪽이던 그대에게는 최선이 될 것이오."
 선화공주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느 쪽도 싫소. 신라의 공주인 내가 어찌 백제의 왕자인 그대를 따라 갈 수 있겠소? 내 어찌 무고한 그대의 목을 취할 수 있겠소?"

 무강왕자는 애절한 눈빛으로 선화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나를 저버린다면, 더 살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사무치는 그리움의 고통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그대를 구하고 그대의 손에 죽고 싶소."
 선화공주는 무강왕자의 말에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을 흘렸다. 무강왕자는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선화공주는 갑자기 비수를 무강왕자의 목에 겨누었다.
 "무강왕자, 나를 생각하는 그대의 마음은 고맙기 그지 없으나, 나는 결코 신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오. 허니, 돌아가시오. 돌아가지 않는다면, 내 차라리 그대의 목을 취하겠소."

 무강왕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대없는 세상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만이 있을 뿐이니,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오."

 "그대는 어찌 이리도 어리석단 말이오. 정말 죽고 싶은게요? 내가 그대를 죽이지 않는다 하여도 발각되면 죽을 것이니, 어서 떠나란 말이오."
 "그대를 이대로 버려두고 내 어찌 떠날 수 있겠소?"
 선화공주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떠나시오. 나는 아바마마의 뜻에 따를 것이오."
 "평생을 절에서 비구니로 살라 해도 따를 것이오? 공주는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오."
 선화공주는 무강왕자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의연하게 말했다.
 "그건 당신이 알바가 아니오. 그대는 공연한 말로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그대는 어찌 이리도 나의 진심을 몰라 주시오? 내, 그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전혀 아깝지 않소. 내, 그대없이는 살고 싶지 아니하니, 차라리 나의 목을 취하시오. 그것이 나와 그대, 모두에게 최선인 듯 하오."
 선화공주는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로 비수를 무강왕자에게 들이밀었다.
 "떠나지 아니하겠다면, 그대를 죽이겠소."

 무강왕자는 태연하에 목을 내밀었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오."
 무강왕자는 마치 선화공주가 찌르기를 기다리듯이 두 눈을 감았다.
 선화공주는 비수로 무강왕자의 목을 겨누었지만, 차마 찌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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