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16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1. 1. 9. 06:00

 

 선덕여왕 16화

 

 

 덕만공주는 이름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는 지귀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잠행중이라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잠행 중이라 나의 신분을 밝힐 수 없으니 가명이라도 지어 말해줄까?'
 덕만공주는 순간 선녀같다는 지귀의 말이 떠올라 절세의 미녀였던 언니 선화공주가 생각나서 선화공주의 첫자인 '선'자와 자신의 이름의 첫자인 '덕'자를 이용하여 가명을 지었다.

 덕만공주는 고개를 돌려 지귀를 바라보았다.
 "좋소. 나의 이름을 말해주겠소."

 지귀는 기쁜 표정으로 덕만공주를 바라보았다. 덕만공주는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린 후에 입을 열었다.

 "나는 선덕이라고 하오."

 지귀는 크게 감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덕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요. 나는 활리역 사람으로 지귀라고 하오. 선덕 낭자, 내, 그대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오."
 덕만공주는 지귀의 말에 크게 감격하여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덕만공주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만 가보겠소."

 덕만공주가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지귀는 손을 들며 외쳤다.
 "선덕 낭자,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덕만공주는 몸을 돌린 후에 의아한 표정으로 지귀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소?"
 "그대는 이곳 사람이 아닌 듯 싶소. 내 어릴 적부터 이곳 활리역에 살았지만, 그대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오. 그대는 어디 사람이오?"
 "남녀가 유별하거늘, 어찌 아녀자에게 사적인 것을 물으시오?"

 지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다시 그대를 보았으면...... 여한이 없겠소."
 지귀는 애틋한 눈빛으로 덕만공주를 바라보았다. 지귀의 애틋한 눈빛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덕만공주는 누나가 동생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대와 나는 아무 인연이 없으니, 부디, 나를 잊으시오. 나는 이만 가보겠소."

 덕만공주가 몸을 돌려 걸어가자 지귀가 외쳤다.
 "선덕 낭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덕만공주는 못들은 척하고 계속 걸어갔다. 지귀는 덕만공주를 따라오며 외쳤다.

 "선덕 낭자, 제발 부탁이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덕만공주는 발걸음을 멈춘 후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아직도 할말이 남아있는 것이오?"
 "낭자, 부디 노여워 마시고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나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족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왔소. 아무 삶의 목표도 행복도 없이 하루하루를 입에 풀칠만 하며 살아왔소. 헌데, 오늘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대를 보자 삶의 목표가 보였소."
 덕만공주는 지귀가 자신과 혼인하는 것을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줄 알고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만 하시오! 남녀가 유별하거늘, 어찌 나에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오? 못들은 걸로 하겠소."
 덕만공주가 떠나려고 하자, 지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선덕 낭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덕만공주는 몇걸음 걸어가다가 지귀의 애처로운 외침에 마음이 약해져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귀는 덕만공주가 발걸음을 멈추자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선덕 낭자, 오해하지 마시오. 나 같은 필부가...... 어찌 그대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꿈에라도 마음에 두겠소. 부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오."
 "말해보시오."
 "나는, 낭자를 가끔 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오. 내, 낭자를 보니, 귀한 집 따님 같은데, 나를 낭자의 집 하인으로 받아줄 수 없겠소? 낭자를 일년에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오."

 지귀가 덕만공주의 하인이 되려면 거세를 하여 환관이 되어야 한다. 덕만공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그대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나의 집은 하인이 더 필요하지 않으니, 이만 물러가시오. 나는 이제 떠나겠소."

 지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명 더 고용하면 안되겠소? 나는 누구보다 일을 잘 할 수 있소."

 "대장부가 어찌 남의 집 하인이 되려 하시오? 그대의 부모가 구천에서 그대가 남의 집 하인이 된 것을 보면, 그 마음이 어떻겠소?"

 지귀는 부끄러워 말문이 막혔다. 덕만공주가 지귀를 보니 행색이 초라한 것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덕만공주는 지귀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락지를 손가락에서 빼어 던져 주었다.

 "내, 이것을 그대에게 줄 터이니 받으시오."

 지귀가 얼떨결에 받아보니 귀한 물건이 틀림없었다. 지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나에게 이 귀한 물건을 주는 것이오?"

 "나는 서라벌에 살고 있소. 그것을 가지고 서라벌에 있는 나를 찾아온다면, 한번은 만나 주겠소. 허나, 한번만이오."

 지귀는 몹시 기뻐했다.

 "참으로 고맙소. 헌데, 서라벌은 넓은데, 어찌 그대를 찾을 수 있겠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나는 이만 가보겠소."

 덕만공주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지귀는 덕만공주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땅에 털썩 주저 앉은 후 눈물을 흘렸다.

 서라벌로 돌아온 덕만공주는 가끔 자신을 애타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지귀가 떠올랐지만, 공주의 신분으로 평민인 지귀의 사적인 감정까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하지만 덕만공주는 당태종이 청혼하자, 청혼을 거절하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에 지귀가 떠오른 것이다.

 

 당태종에게 지귀를 만난 과정을 설명한 덕만공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폐하, 소녀와 지귀는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질 수 없는 사이오니, 폐하께서는 뜻을 거두어 주옵소서."
 당태종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허허, 공주가 평민과 혼인한다면 어찌 나라의 기강이 서겠는가? 덕만공주는 평강공주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


 

연재 : 배달민족 치우천황 21화 (신재하 작가의 역사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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