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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20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1. 1. 16. 08:00

 

 선덕여왕 20화

 

 

 덕만공주는 누군가 엿듣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화공주에게 눈짓을 한 후에 말했다.

 "여자의 몸으로 어찌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아바마마께서는 아직 당신의 후계자를 정하지 아니하신 줄로 압니다."

 선화공주는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엿듣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거늘,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선화공주는 알았다는 뜻으로 눈을 깜빡인 후에 말했다.
 "그렇구나. 여하튼 알천은 천하에 둘도 없는 충신이니, 만약 너의 정혼자가 왕이 된다면, 알천을 추천하거라."

 덕만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덕만공주는 주위를 둘러본 후에 가만히 다가가 선화공주의 귀에다 속삭였다.
 "헌데, 언니, 저는 아직 정혼자가 없습니다."
 선화공주는 덕만공주가 아직 미혼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정혼자도 없다는 사실은 몰랐다. 선화공주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속삭였다.
 "그러냐? 정혼자가 없다니, 뜻 밖이구나. 마음에 드는 자가 없는 것이냐?"

 덕만공주는 진심으로 연모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진평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가슴아픈 기억이 떠오르자 고개를 떨구며 침묵을 지켰다.
 선화공주는 이러한 덕만공주의 모습을 보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연한 말을 하여 아픈 상처를 건드렸구나!'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선화공주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덕만아, 천명 언니는 잘 지내시냐? 천명 언니가 너무도 그립구나!"
 덕만공주는 천명공주를 생각하는 선화공주의 마음씨에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으며 말했다.
 "천명 언니가 이곳에 계시다면, 좋아하셨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선화공주는 천명공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렸다.

 "26년이 지나도록 언니를 다시 뵙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덕만공주는 문득 선화공주가 김춘추를 만나 보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천명 언니의 아들 춘추가 여기 있습니다.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선화공주는 눈물을 글썽인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용춘공께 큰 빚을 졌거늘, 무슨 낯으로 춘추를 보겠느냐? 

 

 30여년 전, 진평왕은 김용춘을 왕위 계승자로 정한 후에 천명공주와 선화공주 중 한명을 시집보낼 것을 결심했지만,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선화공주는 천하절색일 뿐만 아니라 총기가 뛰어나 진평왕의 마음은 그녀에게 기울어졌지만, 두 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자 둘을 시험한 후에 정하기로 결심했다.

 진평왕은 두 딸을 부른 후 먼저 천명공주에게 물었다.
 "항왕이 고조에게 패하여 천하를 넘겨 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항왕은 진나라를 정복한 후에 민심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항복한 진나라의 20만 병사들을 땅에 묻어 죽여 진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잃었지만, 고조는 진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하옵니다."
 진평왕은 천명공주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에 선화공주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선화공주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항왕은 불세출의 명장 한신을 등용하지 않는 우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명신 범증을 의심하여 떠나게 만들었사옵니다. 한신을 등용하지 아니한 것과 충신 범증을 의심하여 떠나게 만든 것이 패인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고조가 한신을 등용하지 아니 하였다면, 어찌 항왕을 이길 수 있었겠사옵니까? 항왕에게 범증이 있었다면, 어찌 한신이 항왕을 이길 수 있었겠사옵니까? 소녀는 항왕이 고조에게 천하를 넘겨 준 것은 이 두 사람을 기용할 줄 몰랐기 때문이라 생각하옵니다."
 진평왕은 선화공주의 답변에 흡족하였지만, 선화공주를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
 "너는 범증을 충신이라고 생각하느냐? 범증이 충신이라면 어찌 항왕을 떠났겠느냐?"
 선화공주는 잠시 생각한 후에 침착하게 말했다.
 "사서에 의하면 항왕은 범증을 '아보'라고 불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소녀는 항왕이 범증을 존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온데, 항왕은 진평의 이간책에 범증을 존대하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범증이 떠난 것을 탓할 수 있겠사옵니까? 뿐만 아니라 왕이 신하를 덕으로 다스리지 못하여 떠나게 만들었으니, 이는 항왕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옵니다."
 진평왕은 선화공주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자 그녀를 김용춘과 혼인시킬 것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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