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23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1. 1. 21. 08:00

 

 선덕여왕 23화

 

 

 선화공주가 알천이 연모하는 여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백제의 왕후가 된 후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던 알천의 눈빛에 깊은 연모의 정이 담겨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늦은 깨달음이었다.
 선화공주는 회상에 잠긴 듯 잠시 눈을 감은 채 침묵하였다. 덕만공주는 가만히 서서 선화공주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화공주는 침묵을 깨고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겠느냐? 내가 알천의 마음을 모른 것도, 알천이 나의 마음을 모른 것도, 모든 것이 운명인 듯 싶구나!"
 선화공주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덕만공주는 손수건으로 선화공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화공주가 눈물을 그치자 덕만공주가 말했다.
 "언니, 알천랑이 지금 장안에 있습니다. 제가 알천랑을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선화공주는 알천이 사무칠 정도로 그립고 보고 싶었지만, 말하기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하고 덕만공주가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도 알천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덕만공주는 이러한 선화공주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저는 의자왕자에게 평화협상을 제의할 생각입니다. 평화협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언니가 도와주세요. 그때 알천랑을 데려갈께요."
 선화공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에 손수건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고마웠다."

 선화공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덕만공주는 선화공주의 미소가 알천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선화공주는 알천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였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머지 않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알천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생각하자 기분이 울적해졌다.
 덕만공주는 선화공주의 울적한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의자왕자를 칭찬했다.
 "언니, 의자는 효성이 지극하다고 신라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어미로서 아들이 효자인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습니까?"
 선화공주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의자가 효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효자라서 걱정이구나."
 "의자가 아직 어리니 언니께서 잘 가르치신다면, 만인의 존경받는 효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덕만공주는 선화공주의 수심에 가득한 표정을 보자, 선화공주가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나치게 효성이 강한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효도라는 삶의 목표를 잃어 방탕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선화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가 너처럼 성인의 풍모를 지녔으면 좋겠구나."

 덕만공주는 선화공주의 칭찬에 수줍어 얼굴이 붉어졌다.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가 언니의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너무 겸양하지 말거라. 나는 너처럼 어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의자가 너처럼 어진 사람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구나."

 "저는 언니처럼 현명한 여인이 되고 싶은걸요. 저는 부족한 점이 많으니, 언니께서 저를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 현명한 여인이 못된다. 허나, 너보다 인생을 더 살았으니,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미력하나마 내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우마."

 "언니께서 도와주시겠다니, 참으로 감사해요. 조금 더 언니를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터인데, 저는 그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그래,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구나."

 덕만공주는 문득 오래전에 헤어진 정인이 떠올라 회상에 잠겼다. 선화공주도 알천의 늠름했던 모습이 떠올라 둘은 잠시 침묵하였다. 덕만공주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언니, 춘추를 만나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선화공주는 길게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내가 무슨 낯으로 춘추를 만날 수 있겠느냐?"

 "춘추가 언니를 뵙고 싶어합니다."

 

 김춘추는 한때 신라를 떠난 선화공주를 원망하고 미워한 적이 있었다.
 선화공주가 신라를 등지고 백제로 떠나 왕후였던 외할머니가 폐위된 후에 마음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천명공주의 마음고생이 컸기 때문에 김춘추는 선화공주를 몹시 원망하였다.
 천명공주는 이러한 김춘추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춘추야, 이 세상에 혈육보다 소중한 것은 없느니라. 비록 너의 이모가 과오를 범하였으나, 너의 외할머니께서는 눈을 감으실 때까지 너의 이모를 걱정하셨단다.
아바마마께서도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너의 이모 생각이 간절하실 것이다. 허니 너도 이모를 용서하거라. 대장부는 마음이 넓어 원수까지 품어야 하는 것이다."
 김춘추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자 그제서야 선화공주에 대한 원망을 버릴 수 있었다.

 선화공주는 김춘추가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가 나를 원망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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