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29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1. 1. 30. 08:00

 

 선덕여왕 29화

 

 

 양비의 눈빛은 가족을 잃은 것처럼 몹시 슬퍼보였다. 양비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애써 미소지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덕만공주와 선화공주가 자리에 앉자 양비는 시녀들에게 눈짓을 했다. 시녀들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린 후 차를 가져왔다.

 "차를 들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해주시오."

 선화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시했다.

 "양비마마께서 우리 자매에게 귀한 차를 하사해 주시니, 황송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선화왕후, 그대와 나 사이에 그런 형식 치례 인사는 필요치 아니하오. 허니, 편하게 생각하기 바라오."

 "양비마마의 뜻대로 편히 생각하겠나이다."

 양비는 시녀들에게 다시 눈짓을 했다. 시녀들은 양비에게 인사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갔다. 선화공주와 덕만공주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양비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양비도 입을 다물고 있어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양비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덕만공주를 바라보다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덕만공주,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구려! 10년전에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것 같소.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이오?"

 덕만공주는 양비의 칭찬에 부끄러워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소녀, 양비마마의 과분하신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양비마마께서는 천하의 절색이시온데, 소녀가 어찌 양비마마께 아름다움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겠나이까? 소녀가 양비마마를 뵈오니, 양비마마야 말로 10년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지신 듯 하옵니다."

 양비는 덕만공주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양비는 미소를 지었지만, 양비의 눈빛에는 여전히 깊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양비의 눈빛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듯 슬퍼보였다.

  

 덕만공주는 처음에는 양비의 슬픈 눈빛이 세상을 떠난 수양제나 패망한 수나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양비의 눈빛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듯한 슬픈 눈빛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현무문의 정변!'

 당태종은 얼마전에 현무문의 정변을 일으켜 형 태자 이건성과 동생 제왕 이원길과 그들의 자식들마저 죽였다. 덕만공주는 양비의 슬픈 표정이 현무문의 정변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던 양비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더니 마침내 눈물을 쏟았다. 양비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은 후에 말했다.

 "미안하오. 그대들이 다정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언니가 생각났소."

 양비는 수나라가 망하자 언니 남양공주와 헤어져 여태까지 생사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양비가 눈물을 쏟은 것은 언니 남양공주 때문이 아니라 현무문의 정변에서 당태종에게 목숨을 잃은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비는 수양제가 장안을 버리고 강도의 이궁으로 피신하자 당나라의 고조에게 몸을 의탁하였는데, 고조는 양비를 공주의 예로 대하였다.
 양비는 절세의 미녀였기 때문에 고조의 세아들 이건성, 이세민, 이원길이 모두 양비를 사모하였지만, 양비는 당시 아버지 수양제의 죽음과 조국의 패망으로 복수심에 불탔기 때문에 고조의 세아들 중 문무가 가장 뛰어난 이세민을 선택하였다.

 양비는 이세민의 칼을 빌려 자신의 혈육을 죽인 원수들을 죽였는데, 이세민이 당대의 영웅이었던 두건덕을 용서하지 않고 장안으로 압송하여 처형한 이유도 두건덕이 양비의 언니인 남양공주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양비는 이세민이 현무문의 정변을 일으켜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을 죽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양비는 한때 이건성과 이원길 사이에서 갈등하였지만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원수에 대한 복수를 약속한 이세민과 혼인했기 때문에 양비의 슬픔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양비가 사실을 확인하려고 시녀들을 불러 물었을 때, 태자비가 와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양비, 부디, 나의 자식들을 살려주시오. 그대만이 살려줄 수 있소."

 양비는 너무나도 놀라 할말을 잃었다.
 양비와 태자 이건성은 한때 서로를 연모했던 사이였기 때문에 양비와 태자비는 앙숙처럼 사이가 나빴지만, 태자비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양비에게 애원하였다.

 "양비, 부디, 내 자식들을 살려주시오."
 "데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진왕(이세민)이....... 태자 저하와 제왕을 모두를 살해하였소...... 어찌 천륜을 저버리고 이럴 수 있는 것이오?"

 태자비는 감정이 복받쳐 통곡하며 울었다.

 양비는 태자비를 진정시킨 후 이세민을 찾아갔다.
 "세민, 사실인가요? 당신이 태자 저하과 제왕을......"
 이세민은 몹시 괴로워하며 말했다.
 "사실이오. 허나, 형님께서 동생과 짜고 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소."
 양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어요. 태자 저하께서는 인자하시온데, 어찌 자신의 동생을 죽이려 했겠습니까?"
 "어찌 내 말을 믿지 못하시오?"
 양비는 태자와 제왕의 자식들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세민에게 말했다.
 "허면, 태자님과 제왕의 자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세민은 이미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의 아들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에 양비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양비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양비는 절규하듯이 울면서 말했다.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군요."
 이세민은 괴로워하면서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소. 형님과 동생이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었소."
 "허면 왜 자식들까지......"
 "살려두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기 때문이오."
 "나를 끌어들이지 마세요. 나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당신도 이 일에 상관이 있소. 내가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당신이 당할 것이기 때문이오."
 양비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들과 아무 원한이 없어요."
 "양비, 그대가 그들과 아무 원한이 없다고 해도 그들은 그대에게 피맺힌 원한이 있소. 그대는 나의 아내인데, 어찌 원한이 없겠소? 내가 그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들이 그대를 죽이려고 할 것이오."
 양비는 피맺힌 원한이 생기면 앞뒤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아버지 양제가 암살당하자 양제의 호위병사들까지 책임을 물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양비는 당태종의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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