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선덕여왕 33화 (조정우 역사소설 수정판)

조정우 2011. 2. 11. 08:00

 

 선덕여왕 33화

 

 

 모레 있을 백제와의 평화협상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덕만공주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어제 오늘 피로가 누적된 탓에 몹시 고단하여 곧바로 침소에 들었다. 이미 자시가 지났지만, 내일 김춘추가 자신을 대신하여 사신단 대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춘추가 내가 한말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덕만공주는 침소에서 일어난 후 김춘추를 처소로 불렀다.

 "소신, 공주마마의 부르심을 받고 왔나이다."

 "내, 너에게 일러둘 것이 있어 너를 불렀느니라."

 "말씀하소서."

 "지금 신라는 폐하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라, 내일 있을 폐하와의 알현에 국운이 걸려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의 세치혀에 국운이 걸려있으니, 말 한마디마다 깊이 생각해본 연후에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네가 알아서 하리라 믿으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니, 새겨 두거라."

 "공주마마, 소신도 그 점, 잘 알고 있사오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할 일을 너에게 미루는 듯 하여 미안하구나. 내키지 아니한다면, 하지 아니하여도 된다. 너의 생각을 말해보거라."

 "소신,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겠나이다. 소신을 믿어 주시옵소서"

 "허면, 너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겠다."

 "소신을 믿어 주시오니, 망극하나이다."

 "밤이 깊었으니, 이만 물러가 보거라."

 김춘추는 할말이 남아있다는 듯이 그대로 서있었다. 덕만공주가 말했다.

 "할말이 있으면 말해보거라."

 김춘추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모님을 만나뵈셨사옵니까?"

 "그래. 네 이야기도 했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사옵니까?

 덕만공주는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이야기가 기니, 나중에 하자꾸나. 내일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 있지 아니하느냐?"

 "소신, 이미 준비를 마쳤사오니, 말씀하여 주소서."

 "허면 말해주겠다. 세세한 이야기를 다하려면 날이 새도록 말해도 끝이 없을 터이니, 간략히 말하겠다. 너의 이모님은 지금 강녕하게 잘 지내신다. 그리고 너를 보고 싶어 하시니, 네가 찾아뵙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황후마마와 양비마마께서 앞으로 언니를 만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셨으니, 앞으로 더 만날 수 있을 듯 싶구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느냐?"

 김춘추가 무엇보다 알고 싶은 것은 선화공주가 신라를 버리고 떠난 이유였다. 김춘추는 선화공주가 떠난 후 어머니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이 떠올라 울분이 솟구쳤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모님께서는 어찌 신라를 져버리고 백제로 떠나셨사옵니까? 소신은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춘추야, 그건, 몇날 며칠이 걸려도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덕만공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언니께서 그때 얼마나 힘드셨는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민망한 괴소문을 온나라 백성들이 사실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아바마마조차 언니를 의심하셨으니, 언니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춘추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오나, 고충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어찌 신라를 져버리고 떠나실 수 있사옵니까?"

 "춘추야, 사람이란 누구나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언니는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신 것이다. 허나, 언니께서 백제의 무강을 따라가신 것은 백제와 신라의 평화를 염원하셨기 때문이다. 언니께서 신라를 떠나신 것은 신라를 져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신라와 백제의 전쟁을 멈추고자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내, 어찌 언니의 마음속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겠느냐만, 나는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언니께서 신라를 떠나신 것은 신라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신라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자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덕만공주는 선화공주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김춘추는 덕만공주의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춘추는 자신이 선화공주를 오해했음을 깨달아 백제 사신단이 있는 방향을 향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이모님, 제가 이모님의 숭고하신 뜻을 모르고 이모님을 오해하였사옵니다. 어리석은 조카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덕만공주는 김춘추가 선화공주에 대한 오해를 풀자 몹시 기뻤다.

 "춘추야, 자책하지 말거라. 나도 한때 언니의 깊은 뜻을 오해한 적이 있거늘, 어찌 그것이 너의 잘못이겠느냐?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려 참으로 다행이구나. 언제 한번 나와 함께 너의 이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공주마마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덕만공주는 문득 신라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선화공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니, 이제 춘추도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바마마께서도 언젠가는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실 것이니 그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세요.'

 

 

 

이전 글 : 선덕여왕 32화 (재연재 중인 역사소설입니다) 

연재 : 배달민족 치우천황 22화 (신재하 작가의 역사소설입니다)

선덕여왕 전편을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 알라딘 창작 블로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