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소설 징비록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5. 4. 6. 08:00

   소설 징비록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소설 징비록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5-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임진왜란이 낳은 불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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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히 가마를 타고 대전에 당도한 선조는 박홍의 장계를 펼쳐들어 보이며 대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경들이 과인을 기만한 것인가? 전란은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라 경들이 과인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던가? 어서 말을 해보라!"

   선조의 말은 동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동인들에게 기만당했다는 생각에 선조는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인에 속한 대신 하나가 선조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경상좌수사의 장계만으로는 아직 전란이 일어난 것인지, 왜구 떼가 침입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사오니 다른 장계를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전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해왔던 동인들은 가급적 말을 아꼈다. 동인들은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적들이 평정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인들 역시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적이 단순히 왜구 떼가 아닐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지만, 경상좌우도의 자체 방어력만으로도 격퇴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설령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란을 일으켰다 한들 무탈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조정이 목이 빠지도록 새로운 전란 소식을 기다리는 가운데, 늦은 오후 무렵에서야 경상우병사 김성일의 장계가 당도했다. 

  '왜적의 손에 부산진성이 함락되긴 하였사오나 심려치 마소서. 적선은 기껏해야 100여 척에 불과하고 왜의 병력은 모두 합쳐도 1만이 넘지 못하는 듯하오니 경상좌우도의 자체 방어력으로 능히 격퇴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란을 일으킬 것을 예측하고도 전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했던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왜적의 병력을 최대한 축소해 보고한 것이다. 1만이라면 경상좌우도의 방어력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무렵, 4월 13일에 400여 척의 왜선이 부산포에 상륙했다는 경상감사 김수의 장계가 당도한데 이어 동래성을 비롯한 경상도의 여러 성들이 왜군의 손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그제야 전란이 일어난 것을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었다.

   "김성일이 과인을 기만한 것이 틀림없으렸다! 김성일을 즉시 파직시켜 도성으로 압송하라! 과인이 친히 국문할 것이다!"

   선조의 분노는 김성일을 향해 폭발했다. 황윤길과 함께 통신사에 임명되었던 김성일이 제작년과 작년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어 다녀왔지만 그들의 보고는 전혀 딴 판이었다. 그들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 대전 회의가 열렸을 때 황윤길이 먼저 보고했다. 

   "소신의 소견으론 앞으로 반드시 병화가 있을 듯하옵니다."

   김성일이 황윤길의 보고에 반박하며 말했다. 

   "소신의 소견으론 전란의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사온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보고하여 민심을 동요시키니, 이는 매우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도 둘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눈빛에 광채가 있는 것이 담략이 범상치 않아 보였사옵니다."

   황윤길이 이렇게 보고하자, 김성일이 이번에도 반박했다. 

   "눈은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워할 인물이 못되옵니다."

   대전회의가 끝난 이날, 류성룡은 김성일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아 물었다. 

   "그대가 매번 황윤길과 다르게 말하는데, 후일 병화가 있다면 어찌 감당하려 하시오?"

   김성일이 괴로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었다. 

   "내가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아니하리라 장담할 수 있겠소이까? 소생은 다만 온 나라가 전란 소문에 휩싸여 백성들이 동요할까봐 그리 말했던 것이오."

   김성일이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거짓 보고를 한 줄도 모르고 조정의 정권을 잡고 있던 동인들은 같은 당파 사람인 김성일의 말만 믿고 전란이 없을 것이라 단정하였던 것이다. 류성룡은 이를 알고도 여지껏 침묵을 지켰으니 어찌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류성룡과 김성일 모두 이황의 문하였던 관계로 류성룡은 차마 동문의 죄를 들춰낼 수 없었던 것이다. 류성룡은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며 탄식했다. 

   '아! 그때 주상께 사실대로 아뢰었어야 했건만......'

   류성룡은 문득 전란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십만 대군을 양병할 것을 주청했던 이이가 떠올랐다. 십여 년 전, 군신들이 모인 경연 석상에서 이이가 선조에게 주청을 올렸다. 

   "나라의 기운이 부진함이 극에 달하였으니 십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토붕의 화가 있을 것이옵니다. 원하옵건대 미리 십만의 군사를 양성하여 도성에 이만, 각도에 일만씩 두어 군사들에게 호세(집집마다 징수하는지방세)를 면해 주고 무예를 단련케 하여 육개월로 나누어 교대로 도성을 수비토록 하였다가 변란이 있을 때는 십만을 합쳐 지키게 하여 위급한 때를 대비하소서. 이와 같이 아니하면 하루아침에 변란이 일어나 백성들을 내몰아 싸우게 함을 면치 못할 것이니 나라가 큰 화를 입을 것이옵니다."

   가장 먼저 앞장서 이이의 주청을 반대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류성룡 자신이었다.

   "불가하옵니다! 나라가 태평할 때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

   대부분의 대신들이 이이의 우려가 지나치다 하며 류성룡의 의견에 찬동했으므로 선조는 이이의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이가 경연 석상에서 물러나 류성룡을 나무라듯 말했다. 

  "속유(식견이나 행실이 변변치 못한 선비)들은 진실로 시의를 알지 못하겠지만 공 또한 이런 말을 하오?"

   류성룡도 이이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지금은 나라가 태평할 때이니 마땅히 민생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공은 어떠한 소견을 가지셨기에 우리들과 상의도 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곧장 주청을 올리셨소?"

   류성룡의 말에 이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 차례 실소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후 십만 양병을 주청해 대신들의 눈 밖에 난 이이는 삼사로부터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고, 그로부터 1년이 채 못 되어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류성룡은 크게 탄식했다. 

   "아! 율곡 선생은 참으로 성인이시다! 만약 선생의 주청대로 시행했더라면 나라의 형편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한동안 탄식하던 류성룡은 불현듯 지난 1년 전에 자신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에 부임해 전란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 왔던 이순신이 떠올랐다. 

   "여해(이순신의 자), 그대만이 오직 이 나라의 희망일세. 부디 국난에 처한 이 나라를 지켜주게나."

   올해로 쉰한 살인 류성룡보다 세살 적은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막역한 친구였다. 한양의 건천동에서 이순신과 어린 시절을 함께 자란 류성룡은 누구보다 이순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이라면 능히 수십 척의 함선으로 수백 척의 왜선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장인 이순신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진작에 이순신을 추천하여 중용하지 못한 것이 몹시도 후회스러웠다. 이이가 병조판서였을 때 류성룡이 이순신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소생의 지기 중 이순신은 공의 문중 사람인데 손오병법에 통달한 자로서 장차 이 나라 최고의 장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이다."

   류성룡이 이순신을 극구 칭찬하자 이이는 귀가 번뜩 뜨여 물었다. 

   "우리 문중에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니! 자네가 언젠가 이순신을 만나면 나를 찾아오라 전하게나."

   그 당시 건원보 권관으로 (종9품의 하급 무관) 있던 이순신에게 류성룡이 이이의 말을 전하자 이순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생과 나는 같은 문중 사람이니, 선생이 나를 고위직에 추천한다면 사람들이 자기 문중의 사람을 추천하였다 말할 터, 그리되면 내가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류성룡이 이이를 만나볼 것을 여러 차례 설득했음에도 이순신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이순신을 이이에게 소개시켜 주지 못한 것이 말할 수 없이 후회되었다.

   "아! 내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율곡 선생께 순신을 소개시켰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터인데......"


  출판사와의 출간 계약으로 미리보기에 해당되는 앞부분만 연재할 예정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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