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소설 징비록 조정우 역사소설 하일라이트

조정우 2015. 4. 13. 08:00

    소설 징비록 조정우 역사소설 하이라이트


소설 징비록

저자
조정우 지음
출판사
세시 | 2015-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임진왜란이 낳은 불멸의...
가격비교


    목차

 

1화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2화 때 늦은 후회

3화 첫 승전

4화 단기필마로 적진에서 조경을 구해내다

5화 기강 나루 전투

6화 돌아온 홍의장군

7화 정암진 전투

8화 용인 전투

9화 / 천하장사 김덕령 기의에 동참하다

10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11화 김시민진주 목사에 임명되다

12화 진주대첩

13화 상주 전투

14화 진주성이 무너지다

15화 김덕령조선 팔도 의병대장이 되다

16화 만고충신 김덕령이 죽다

17화 정유재란이 일어나다

18화 / 7년 간의 전란이 종지부를 찍다


    책 속으로

 

정기룡이 필기단마로 왜군의 진영에 당도했을 무렵조경의 처형식이 막 거행되려는 순간이었다. 1만 1천에 이르는 왜군들 앞에 무릎꿇린 조경의 목을 향해 왜군 하나가 검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정기룡은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쏜살처럼 말을 몰아 조경을 향해 달려갔다.

-69p-

 

"저 홍의 장군을 죽이는 자에게 영주의 자리를 주겠다!"

곽재우만 죽이면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 여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명이 떨어지자 왜군이 일제히 곽재우를 향해 달려들었다바로 그 순간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곽재우와 똑같은 붉은 철릭을 입은 사내 10여 명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백마를 몰아 왜군의 진영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122p-

 

김시민의 명이 떨어지자 숲에 숨어 있던 관군과 의병이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뛰어 나왔다김시민이 1천여 관군을 이끌고 왜군의 진영 중앙으로 돌진하자우측에서 곽재우가 1천여 의병을 이끌고 돌진했고좌측에서 곤양 군수 이광악과 정기룡이 1천여 관군을 이끌고 돌진했다왜군은 곽재우와 정기룡을 보자 마치 저승사자를 만난 듯 공포에 사로잡혀 외쳤다.

"홍의 장군이다!"

"조선의 조자룡이다!"

-169p-

 

"소녀의 어머님께 장군을 보여드리고 싶사옵니다소녀의 어머니께서 이 남강에 빠져 돌아가셨사오니 남강에 대고 외치면 어머님께서 듣고 좋아하실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논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야무라 로쿠스케는 논개가 잡아끄는대로 걸어갔다논개는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손을 잡고 강변의 바위로 올라갔다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강물에 빠질 듯 했지만게야무라 로쿠스케는 아무 의심없이 논개가 가는대로 따라갔다.

-231p-

 

50여 척의 함선에서 대포가 빗발치듯 쏟아지자 장문포 해안에서 조총을 쏘아대던 왜군이 해안가에서 물러났다조선 함대가 장문포 해안에 상륙하자 김덕령과 곽재우가 의병대를 이끌고 함선에서 하선했다삼도 수군 연합군과 의병대의 수륙 합동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조선팔도 의병대장인 김덕령이 의병대를 이끌고 상륙하자 왜군은 대경실색하여 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석저 장군이다!"

석저 장군이라는 김덕령의 별명만 들어도 도망칠 정도로 왜군은 그를 두려워하였다김덕령의 용맹과 지략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용력에 있어서는 초패왕 항우에 필적하고 지략에 있어서는 제갈공명을 능가한다고 하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으랴!

-246p-



하일라이트


연전연패로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조선군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십 배나 되는 왜군을 상대로 싸우라니, 총알받이가 되란 말인가! 장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싸움이 불가하다고 떠들어대는 가운데, 팔척 장신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장군, 소장에게 좋은 계책이 있사옵니다!"

별장(종구품의 하급 무관직) 정기룡이었다. 올해로 서른한 살인 정기룡의 본명은 정무수로, 기룡이라는 이름은 그가 무과 과거 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의 빼어난 무예에 감탄했던 선조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조경이 대견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책을 말해보라."

무슨 계책이 있겠느냐는 듯 장졸들이 싸늘한 눈초리로 지켜보는 가운데, 정기룡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소장은 나이도 젊고 재간도 노둔하며 또한 전쟁도 겪어보지 않았는데, 어찌 좋은 계책을 능히 알 수 있겠사옵니까만......"

장졸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의식한 말이었다.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본 정기룡이 말을 이었다.

"왜적은 천하를 통일한 군사로 남의 나라를 칠 계획을 세운지 여러 해가 지난 후 출전하였으니 군대를 훈련하고 무기를 정비하는데 최선을 다했을 터이고, 더구나 조총을 쏘는 것은 왜적들의 장기인 반면에 우리 나라는 훈련되지 않은 병사를 갑자기 징발하여 강한 왜적들을 상대로 싸우게 하니 어찌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겠사옵니까? 다만 왜적은 대부분이 보병이니 아군의 장기인 기병으로 상대한다면 능히 대적할만할 것이옵니다. 이를테면 나무가 우거진 들판에 매복하여 왜적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기병으로 기습한다면 필시 왜적들이 놀라 대오가 흐트러질 터, 그때를 이용해 보병이 기병과 합세하여 총공격을 펼친다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참으로 기발한 계책이 아닌가! 조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다! 허면 그대가 선봉장이 되어 기병대를 지휘하겠는가?"

정기룡에게 남다른 담략이 있음을 알고 있는 조경은 이번 기회에 정기룡을 선봉장에 임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소장은 장군의 명에 따를 뿐이옵니다."

  -첫 승전-


이때서야 기병대를 이끌고 돌아온 정기룡은 겨우 목숨을 건진 병사로부터 조경이 왜군에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자 분한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장군이 왜놈들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우리 손으로 장군을 구해내자!"

"무모한 일이오!"

기병들 모두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기룡의 신봉자가 된 김태허조차 이번만큼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왜적들이 1만이 넘는데 어찌 장군을 구할 수 있겠소?"

"할 수 있소! 그대들은 조자룡이 혈혈단신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 속에서 주군의 아들을 구해낸 고사를 모르시오?"

중국 삼국시대 유비 휘하의 맹장 조자룡은 당양현 장판파에서 수십 만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종횡무진 적진을 누비며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해 돌아온 일화로 유명하다. 정기룡은 조자룡이 그랬듯이 자신도 조경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음이 급한 정기룡이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나가며 외쳤다.

"일각도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모두 나를 따르시오!"

-단기필마로 적진에서 조경을 구하다-


"지금이다! 왜선이 돌아오기 전에 강바닥에 말뚝을 박고 밧줄을 매라!"

곽재우의 하인 10명이 등에 길다란 말뚝을 메고, 밧줄을 어깨에 걸치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곽재우의 하인들은 하나같이 수영에 능해 강물 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강바닥에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말뚝을 박은 다음 밧줄로 묶고 나서 몇 보 떨어진 곳에 다른 말뚝을 박아 이전에 박은 말뚝과 밧줄로 묶어 이어 그물 같은 장애물을 만들었다. 두 시진만에 드넓은 기강의 강바닥에 말뚝을 박고 밧줄로 묶어 장애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세 척의 세키부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시진이 더 지나서였다. 남강 상류까지 정찰하다 오느라 네 시진이 걸린 것이었다.

"!"

세 척의 세키부네가 거의 동시에 '' 소리를 내며 멈추자, 왜장은 암초에 걸린 줄 알고 명을 내렸다.

"함선을 뒤로 물려라."

이윽고 실로 놀라운 격군장의 보고가 들어왔다.

"함선이 대체 무엇에 걸렸는지, 아무리 노를 저어봐도 꼼짝도 하지 않사옵니다."

격군장의 보고에 깜짝 놀란 왜장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니! 대체 무엇에 걸렸단 말이냐?"

왜장의 물음에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반나절 전에 지나갈 때만 해도 어떤 장애물도 없었기에 대체 무엇에 걸렸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강물에 대해 잘 아는 왜군이 말했다.

"암초에 걸린 듯하옵니다만, 정확한 것은 강물 속에 들어가 확인하는 수 밖에 없을 듯하옵니다."

왜장은 수영에 능한 왜군 십여 명을 불러 명을 내렸다.

"강물 속에 들어가 바닥에 무엇이 걸렸는지 확인하되, 너희들만의 힘으로 능히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면 한 사람만 올라와 보고하고 나머지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나오도록 하라!"

왜장의 명을 받은 십여 명의 왜군이 갑옷을 벗고 강물로 뛰어들어가려는 찰나였다.

! ! !

어디선가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더니 십여 명의 왜군이 모두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으악!"

-기강나루 전투-


관병들이 곽재우를 끌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관청의 담장 밖에서 수십, 수백여 백성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곽의병장을 방면하라! 김수의 목을 베라!"

김수의 명으로 곽재우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의령의 백성들이 관청으로 몰려와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의령 관청의 관병들이 백성들을 제지하지 않아 수백여 의령 백성들이 순식간에 관청 안으로 몰려와 '김수의 목을 베라'고 외쳐대니 김수는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수는 의병들이 반란을 일으킨 줄 알고 급히 말에 올랐는데, 어찌나 서둘렀던지 말을 거꾸로 타고 말았다. 김수는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말 엉덩이에 채찍을 후려쳐 간신히 관청을 빠져나갔다. 곽재우가 두 손을 들어 소란을 피우는 백성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나라에 국법이 있으니 김수의 목은 마땅히 국법에 따라 처결되어야 할 것이오!"

백성들이 억울하다는 듯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곽의병장이 없으면 의령 백성들 또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곽의병장이 끌려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곽재우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질 않소? , 조정에서 오늘의 일에 대한 처결을 내릴 때까지 의병대와 함께 의령산에 기거할 작정이오. 혹여 왜적이 우리 고을을 다시 침략하면 의령산으로 사람을 보내시오. , 한달음에 달려와 의령을 구원하겠소!"

곽재우는 자신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린 김수가 처형되거나 파직될 때까지 의령산으로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곽재우의 말에 의령 백성들이 안도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곽의병장이 의령의 유일한 희망이오! 부디 의령의 백성들을 버리지 마시오!"

자신을 의지하는 의령 백성들을 보자 곽재우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목숨이 살아있는 한, 결단코 의령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오!"

-돌아온 홍의장군-


이 무렵 안코쿠지 에케이가 이끄는 2천의 왜군이 창원을 점령했다. 이요 국의 다이묘이자 난젠지의 주지승인 안코쿠지 에케이는 스스로를 일본 국왕이 임명한 전라감사라 자칭하며 경상우도 여러 고을의 군수와 의병장에 서찰을 보내 항복을 권유했다.

'일본의 국왕께서 빈승을 전라감사에 임명하셨으니 순순히 항복하고 빈승을 영접하라. 일본의 국왕께서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자 하시거늘, 무슨 까닭으로 아군의 진로를 막아 화를 자초하는 것이냐? 철이 없고 분수를 모르는 짓이로다. 순순히 항복하면 선처하여 살려줄 것이로되 끝까지 항거하면 용서치 아니할 것이니 빈승의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군대를 자진 해산하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지난날 항거한 죄는 묻지 아니할 것이며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 것을 약조하리라.'

안코쿠지 에케이의 성은 그가 젊은 시절 주지승으로 있던 안코쿠지 사찰에서 딴 것이다. 에케이를 우리 말로 하면 혜경(惠瓊)이니, 그의 이름을 우리 말로 하면 안국사 혜경 스님이다. 안코쿠지 에케이의 서찰을 읽은 곽재우는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하하하...... 승려는 승려답게 절에서 수행에 전념할 것이지, 이 따위 말같지 않은 서찰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곽재우는 즉시 붓을 들어 서찰을 써내려갔다.

'내 들으니 일본의 국왕은 원숭이의 관상이라 하던데 어찌 한 나라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느냐? 또한 내가 들은 바로는 너는 일개 승려가 아니라 한 사찰의 주지승이라 하던데 승려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주지승이 군대를 이끌고 와 이웃 나라를 침범하였으면서도 천인공노할 너의 죄를 모르는가?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항복한다면 목숨을 부지하여 사찰로 돌아가 주지승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로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우리 고을을 침범한다면 너와 너의 군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곽재우는 사로잡았던 왜군 포로 하나를 방면하여 안코쿠지 에케이에게 서찰을 전했다. 곽재우의 서찰을 받은 안코구지 에케이는 분노로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미친 놈이로구나! 감히 대일본의 국왕과 나를 능멸하다니!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만들리라!"

-정암진 전투-


반나절이 지나도록 충차가 당도하지 않자 백광언이 이지시, 이지례와 함께 1천여 전라도군을 이끌고 목책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도 목책 위에서 조총을 쏘아대는 왜군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방패를 들고 말을 몰아 목책에 이른 백광언이 철퇴를 휘둘러 목책을 부수려 했지만, 목책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백광언의 1천여 병력의 대부분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라 백광언과 이지시, 이지례 형제가 용맹을 떨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한양에 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1천여 왜군을 이끌고 문소산에 당도했다. 왜의 응원군이 당도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던 백광언과 이지시, 이지례 형제는 퇴각하여 목책에서 한 마장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었는데, 이때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명을 내렸다.

"총공격!"

"! ! !"

고막이 찢어질듯한 조총 소리와 함께 1600여 명의 왜군이 일제히 목책에서 쏟아져 나오자, 1천여 전라도군은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백광언, 이지시, 이지례가 도망치는 병사들을 수습하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하라!"

1천여 전라도군이 뿔뿔이 흩어져버리자 백광언, 이지시, 이지례는 말에 올라 퇴각하려 했지만, 어느새 수백의 왜군이 코앞까지 다가와 조총을 쏘아대니 말에 오를 시간이 없었다. 백광언이 철퇴를 휘두르며 돌진하자 수십 명의 왜군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지만 백광언 자신도 빗발치듯 쏟아지는 조총을 피할 수 없었다.

"으악!"

총탄에 맞은 백광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지시는 동생이라도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사력을 다해 왜군을 베며 외쳤다.

"아우야, 이 형은 상관말고 너라도 도망쳐라! 우리가 다 죽으면 어머님은 누가 모시겠느냐?"

이지례가 형의 옆으로 뛰어들어 왜군을 베며 외쳤다.

"그럼 형님이 사셔야지요! 아우가 어찌 형님을 버릴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는 사이에 왜군이 이지시, 이지례 형제의 퇴로를 가로막아버렸다. 이지시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탄식하며 말했다.

"나 때문에 너까지 죽는구나!"

"형님과 생사를 함께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용인 전투-


627, 충청도 은진에 이른 고경명의 의병대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왜군이 전주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고경명이 부장들을 불러 말했다.

"왜적이 전주로 진격하면 그 틈을 타 금산성을 칠 생각이오! 왜적이 금산성을 잃으면 거점을 잃는 것이니 퇴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오!"

유팽로, 양대박, 안양, 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경명의 작전에 찬성하는 가운데, 김덕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소인이 듣기로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일본에서 명성이 높은 장수라 들었사옵니다. 또한 왜적들의 병력이 2만이 넘는다 하는데, 아군은 6천에 불과하니 이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비록 금산성의 왜적들이 전주성을 친다 하여도 금산성을 지킬 병력은 남길 터인데, 전주성과 금산성은 지척이라 왜적들이 회군하기 전에 금산성을 함락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터라 이야말로 소인이 염려하는 바이옵니다."

김덕령에 이어 김덕홍이 나섰다.

"반드시 금산성을 탈환해야 한다면 여러 고을 의병장과 관군에 구원군을 청하여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아군이 단독으로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특히 아군의 대부분이 입대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아니하였으니 훈련도 더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고경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왜적들이 금산성을 비울 때 아군이 공격에 나선다면 충분히 금산성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이네."

고경명은 금산성을 탈환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기로 결심을 굳힌 상태라 김덕령과 김덕홍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고경명은 7000여 명의 의병들을 집결시킨 후 말했다.

"이제 곧 사생을 건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부자가 모두 의병대에 있는 자들이나, 형제가 모두 의병대에 있는 자들은 한 사람만 남고 떠나도 좋다!"

-천하장사 김덕령 기의에 동참하다-


"퇴각해야 하옵니다!"

고경명도 이제는 퇴각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각하라!"

하지만 양쪽에서 왜군의 협공을 당한 의병대는 퇴로를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의병대의 진영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말타기에 능숙하지 못한 고경명은 도망치다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왜군이 고경명을 향해 개미떼처럼 몰려왔다.

"조선군의 대장을 잡아라!"

이때 의병 하나가 말을 몰아 고경명을 향해 몰려가는 왜군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여기 천하장사 김덕령의 형 김덕홍이 있다! 내 검을 받아라!"

김덕홍이 대장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김덕홍은 천하장사 김덕령의 형답게 수백 수천의 왜군을 향해 필기단마로 돌진해 수십 명의 왜군을 베어버렸다. 김덕홍은 천지를 개벽할듯한 용맹을 떨치며 연신 외쳐댔다.

"여기 천하장사 김덕령의 형 김덕홍이 있다! 내 검을 받아라!"

김덕홍이 용맹을 떨치며 외쳐대는 소리를 들은 안코쿠지 에케이가 조선인 하나를 불러 김덕홍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자가 뭐라 외치는 것이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이튿날, 밤이 깊어갈 무렵, 1만에 이르는 왜군이 십수교를 건넜다. 열물다리라고도 불리는 십수교는 사닥다리형 다리로, 조수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와 다리 밑으로 화물선 같은 큰 배가 지나다닐 수 있었다. 1만여 왜군이 십수교 북쪽의 하동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난데없이 사람 머리만한 쇠공이 데굴데굴 굴러오는 것이 아닌가! 맨 앞렬에 서 있던 왜군 하나가 쇠공을 주워 보니 화약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폭탄임을 알고 멀리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

비격진천뢰가 천지를 뒤흔들 듯한 굉음을 내며 폭발하자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비격진천뢰 한 방에 왜군의 대오가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바로 그때 숲에 숨어 있던 김시민이 말을 달려 나오며 외쳤다.

"총공격!"

김시민의 명이 떨어지자 숲에 숨어 있던 관군과 의병이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뛰어 나왔다. 김시민이 1천여 관군을 이끌고 왜군의 진영 중앙으로 돌진하자, 우측에서 곽재우가 1천여 의병을 이끌고 돌진했고, 좌측에서 곤양 군수 이광악과 정기룡이 1천여 관군을 이끌고 돌진했다. 왜군은 곽재우와 정기룡을 보자 마치 저승사자를 만난 듯 공포에 사로잡혀 외쳤다.

"홍의 장군이다!"

"조선의 조자룡이다!"

-김시민, 진주 목사에 임명되다-


"어서 성문을 여시오!"

성문지기가 성문을 열려는 찰나, 김시민이 손을 들며 외쳤다.

"성문을 열지 말라!"

이미 왜의 선봉군이 동문을 향해 바짝 다가오고 있어 성문을 열면 따라 들어올까봐 성문지기를 제지한 것이다. 어리둥절하여 말문이 막힌 유숭인을 향해 김시민이 외쳤다.

"이미 왜군이 성에 이르러 성문을 엄하게 경계하고 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성문을 열고 닫으면 창졸의 염려가 있을 것이니, 우병사께서는 밖에서 응원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김시민의 말에 진주성의 장졸과 유숭인 휘하의 장졸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군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어 성문을 열지 않으면 유숭인과 그의 휘하 장졸들은 죽음을 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시민이 성문을 열지 않자 유숭인이 격노하여 외쳤다.

"김시민 네 이놈, 하늘이 너를 용서해도 이 유숭인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김시민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우병사, 이럴 수 밖에 없는 나를 부디 용서해 주시오. 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조치요.'

-진주대첩-


"네 놈이 조선의 조자룡이라는 정기룡이냐?"

정기룡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왜장이 검을 뽑으며 외쳤다.

"순순히 목을 바쳐라! 네 놈이 순순히 목을 바치면 백성들을 헤치지 않겠다!"

정기룡도 지지않고 외쳤다.

"너희들이야 말로 백성들을 순순히 놓아주면 그냥 보내주겠다!"

정기룡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한 왜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네 놈이 미쳤구나! 조총을 든 우리 병사들이 안중에도 없느냐?"

왜장이 비록 큰소리는 쳤지만 복병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때, 정기룡이 갑자기 말등에 서서 말을 모는 것이 아닌가! 마상재(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곡예)였다. 두발로 말등을 밟고 서서 말을 몰다가, 말등을 잡고 물구나무서기를 했다가, 말등에서 줄타기를 하듯 한발로 섰다가, 말등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가, 왔다갔가 하며 시범을 보이듯 각종 마상재를 펼치자 왜군은 신기한 듯 두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볼 뿐이었다.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된 듯 떨어질 듯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신출귀몰한 마상재에 왜군은 정기룡이 적군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정기룡이 잡아 보라는 듯 조총의 사정 거리 근처까지 말을 몰았다 말머리를 돌려 물러나는 순간 왜장이 외쳤다.

"조총을 쏴라!"

-상주 전투-


618, 진주성의 관청에서는 경상우도 감사 김륵이 주관하는 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김륵이 의령 의병장이자 형조정랑(5품의 무관 벼슬)인 곽재우에게 말했다.

"10만 왜적이 조만간 진주성으로 몰려올 터, 불과 3천의 진주성 병력만으로는 맞서기 어려울 것이오. 그대에게 2천의 병력이 있으니 진주성에 들어와 수성전에 참여해주시오."

곽재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오직 임기응변에 능한 자만이 군사를 부릴 수 있고 지혜로운 자만이 적을 헤아릴 수 있으니, 진실로 능히 용병을 할 줄 아는 자만이 승리를 획책할 수 있고 적을 헤아리지 못하면 필시 일을 그르칠 수 밖에 없을 것이오. 지금 적병의 성대한 세력을 보아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기세를 떨치고 있는데, 수리 밖에 안되는 진주성으로 어찌 방어할 수 있겠소? 나는 차라리 성 밖에서 응원할지언정, 성 안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겠소."

이전부터 진주성 수성을 포기하고 백성들과 물자를 다른 성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던 곽재우로서는 김륵의 명에 따를 수 없는 일이었다. 김륵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장수가 대장의 명을 따르지 아니하니 어찌 군율이 서겠소?"

곽재우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 몸이 죽는 것은 아까울 것이 없으나 전투 경험이 많은 병사들을 어찌 차마 승산없는 싸움에 몰아넣을 수 있겠소? 차라리 자결을 할지언정 진주성에 입성하라는 명에는 따를 수 없소이다!"

-진주성이 무너지다-


순간 김덕령의 뇌리에 최담령이 최영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정적이었던 최영의 후손 동주 최씨인 최담령은 본관을 전주 이씨로 바꾸어 은거하고 있었다. 혹여 왕실에 불만을 품은 것이라 책이라도 잡힐까봐 숨을 죽이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김덕령은 말문이 막혔다. 최담령에게 기의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역모에 연루되어 죽을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온 자신이나 후환이 두려워 본관을 바꾼 최담령이나 처지가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끝에 김덕령이 최담령의 손을 힘껏 잡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를 알걸세. 나의 별장이 되어주게. 내 목숨을 걸고 자네를 지켜주겠네."

최담령은 지기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네. 부장이든 병졸이든 자네의 뜻을 따르겠네."

명장의 후손에서 명장이 나온다 하였던가. 최담령은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천하의 인재였다. 이러한 최담령을 휘하에 두게 된 김덕령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참으로 고마우이." 

-김덕령, 조선팔도 의병 대장이 되다-


928, 새벽에 칠천량에서 출발한 50여 척의 조선 함대가 장문포로 향하고 있었다. 김덕령, 곽재우, 선거이, 한명련, 승장 신열 등이 이끄는 수천 명의 의병대를 태운 조선 함대는 아침에 장문포에 이르렀다. 50여 척의 조선 함대가 나타나자 장문포 해안에 있던 왜군이 조총을 쏘아댔다. 이때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외쳤다.

"대포를 쏴라!"

50여 척의 함선에서 대포가 빗발치듯 쏟아지자 장문포 해안에서 조총을 쏘아대던 왜군이 해안가에서 물러났다. 조선 함대가 장문포 해안에 상륙하자 김덕령과 곽재우가 의병대를 이끌고 함선에서 하선했다. 삼도 수군 연합군과 의병대의 수륙 합동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팔도 의병대장인 김덕령이 의병대를 이끌고 상륙하자 왜군은 대경실색하여 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석저 장군이다!"

석저 장군이라는 김덕령의 별명만 들어도 도망칠 정도로 왜군은 그를 두려워하였다. 김덕령의 용맹과 지략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용력에 있어서는 초패왕 항우에 필적하고 지략에 있어서는 제갈공명을 능가한다고 하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가 있으랴

-만고충신 김덕령이 죽다-


신재하 문예창작교실 (문창과, 작가지망 수강생 모집, 분당 미금역선릉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