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유신과 연개소문

조정우 2012. 9. 21. 06:00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유신과 연개소문, 용호상박의 싸움 

  

  92p~98p

 

  

   병사들을 이끌고 적성산 기슭의 들판에 당도한 연개소문은 대형 온군에게 명을 내렸다.

   "내, 장군께 철기병천기를 줄 터이니, 신라군을 깨뜨리시오."

   "소장, 막리지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온군은 39년 전 신라에 빼앗긴 고구려의 영토 계립현과 죽령을 수복하기 위해 신라 정벌에 나섰다가 신라군의 매복에 전사했던 온달의 아들로, 아버지 온달의 복수를 위해 아들 온사문과 함께 연개소문을 따라 신라 원정에 나섰던 것이다. 온군은 아들 온사문과 함께 철기병 5천기를 이끌고 적성산 기슭의 들판에 진을 친 신라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병사의 머리에서부터 말의 다리까지 온통 철갑을 두른 고구려 철기병은 요란한 금속성의 출동음을 내며 신라군의 진영을 덮쳤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39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린 온군이 아들 온사문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맹렬하게 돌진하니, 들판에 구축한 신라군의 수비망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러자 들판에 포진한 신라군은 전의를 상실하여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바로 그때, 유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신라군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내 듣건데, 옷깃을 떨쳐야 옷이 바르게 펴지고, 벼리를 당겨야 그물이 바르게 펴진다고 하니, 내가 옷깃과 벼리가 되겠다. 뜻있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유신은 말을 마치자마자, 단기필마로 고구려군 진영을 향해 돌격하였다. 양손에 쌍검을 쥔 유신은 신들린 듯이 검을 휘두르며 돌진하여 순식간에 수십 명의 철기병을 베었다. 고구려 철기병 수십기가 유신을 애워싸자, 유신이 걱정된 덕만공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유신공을 엄호하라!"

   덕만공주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춘추가 예원, 선품, 진주, 양도, 군관 등의 화랑들과 함께 5천여 화랑군을 이끌고 고구려 철기병을 향해 돌진하였다. 이어 유오랑이 딸 유란과 함께 수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뒤따랐다. 유신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고구려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유신이 단기필마로 적진을 누비며 용맹을 떨치자, 유신이 화랑도에 입문했을 때부터 20여 년 간이나 따라왔던 용화향도 2백여 명도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유신공, 우리 용화향도 모두 목숨을 바쳐 유신공을 따르겠나이다!"

   5천여 명의 화랑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분전하니, 신라군의 기세는 전장을 삼킬 듯 하였다. 화랑군의 파상공세에 고구려 철기병은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총공격!"

   덕만공주의 명에 신라군이 총공격에 나서자,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본 연개소문은 즉시 전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섰지만, 승세를 탄 신라군는 거침없이 돌진하여 고구려군 진영을 무너뜨렸다. 연개소문은 패전을 직감하였지만, 여자인 덕만공주에게 패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한 나머지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나 연개소문은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거늘, 여자인 덕만공주가 이끄는 신라군에 패하다니!"

   연수진이 연개소문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전황이 아군에게 불리하오니, 낭비성으로 퇴각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연개소문은 연수진의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오기가 생겨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전열을 정비하여 역공한다면 능히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개소문이 창을 치켜들어 작전을 지휘하고 있을 , 유신이 용화향도를 이끌고 순식간에 고구려군을 초토화시키면서 연개소문의 앞에 나타났다. 유신이 고구려군의 중앙을 뚫고 온 것이다. 고구려 최고의 장수 연개소문과 신라 최고의 장수 김유신이 맞닥뜨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유신은 쌍검을 휘둘러 고구려 병사들을 사정없이 베며 연개소문 앞으로 다가갔다.

8척 거구에 한눈에 봐도 호랑이와도 같은 기상이 뻗쳐나는 연개소문이었지만, 한 마리 성난 독수리처럼 양 날개의 쌍검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적진의 심장부까지 돌진해온 유신의 용맹함에 비록 적장이지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신라에 저런 장수가 있다니, 죽이기는 너무 아깝구나. 어차피 삼국은 모두 배달민족이 아닌가!'

   연개소문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유신을 향해 외쳤다.

   "나는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이다. 너는 누구냐? 칼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네가 고구려에 귀순한다면 내 후히 대하리라. 항복하라!"

   유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 김유신, 너의 목을 베려 애써 여기까지 왔거늘, 어찌 항복하겠느냐? 허튼 소리 말고 내 검이나 받거라!"

   유신은 연개소문을 향해 말을 몰아 돌진하였다. 연개소문도 유신을 향해 돌진하였다. 유신이 태산을 쪼갤 듯한 기세로 검을 내리치자, 연개소문이 창으로 막았다. 그 순간 연개소문의 팔과 몸 전체에 엄청난 전율이 전해졌다. 연개소문이 지금까지 그 어떤 싸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힘이었다. 유신의 쌍검이 어지러이 연개소문을 찌르자, 연개소문은 방패를 버리고 허리에 찬 오도(연개소문은 몸에 다섯 개의 검을 찼다고 전해진다) 중 하나를 뽑아 유신의 쌍검에 맞섰다. 연개소문은 힘이 천하장사로 힘에서는 연개소문이 압도했지만, 유신은 번개처럼 빠른 쌍검술로 힘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유신과 연개소문은 50합을 넘게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연개소문은 화려한 유신의 검술공격에 적잖이 놀랐다. 지금까지 일대일 싸움에서 연개소문은 자신을 대적할만한 장수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연개소문이 온 힘을 다해 아무리 맹공을 가해도 유신은 조금도 물러섬 없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맞받아 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개소문의 주변에 신라군이 늘어갔다. 이때 연수진은 유오랑의 딸 유란과 여장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을 벌이고 있었는데, 전황이 크게 불리함을 깨닫고 연개소문에게 외쳤다.

   "전세가 지극히 불리하오니, 속히 퇴각 명을 내리소서!"

   연개소문이 사방을 둘러보니, 방진(사각형 모양으로 진영을 구축하는 진법)을 펼친 고구려군의 진영이 신라군의 맹공에 붕괴되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마침내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고구려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자, 덕만공주는 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외쳤다.

   "추격하라!"

   덕만공주의 명을 받고 유신은 말을 몰아 질주하여 퇴각하는 고구려군을 사정없이 베며 외쳤다.

   "끝까지 추격하여 섬멸하라!"

   연개소문은 두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기세로 전장을 휘젓고 있는 유신에게서 난생처음 위협을 느꼈다. 유신이 기병 수천 기를 이끌고 질풍노도의 기세로 고구려군을 추격하자, 고구려군은 서로 앞다투어 퇴각하느라 전열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고구려군이 낭비성에서 10여 리 떨어진 숲길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이어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어라! 함정이다! 온통 마름쇠(날카로운 쇠가시가 달린 마름 모양의 무기)와 철질려(마름쇠를 줄로 이은 무기)가 깔려있다."

   순간, 사방에서 쇠뇌와 화살이 쏟아져 고구려군을 덮쳤다. 전세가 신라군 쪽으로 기울자 춘추가 수천의 낭도들을 데려와 숲길에 마름쇠와 철질려를 깔아놓고 숨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군이 당황한 틈을 타 춘추가 말을 몰아 돌진하여 맨 앞 열에서 지휘하고 있던 고구려 장수의 목을 베었다. 동시에 매복해 있던 낭도들이 뛰쳐나와 고구려군을 덮치자, 고구려군의 전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때를 같이하여 후방에서 유신이 거세게 몰아붙이자, 앞뒤로 적을 맞은 고구려군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연수진이 연개소문에게 말했다.

   "이대로 낭비성으로 퇴각한다면 퇴로가 끊길 우려가 있사오니 낭비성을 포기하고 패하(임진강)를 건너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한순간의 방심에 이 지경이 되었구나!"

   연개소문은 크게 탄식한 후 패잔병을 수습하여 패하를 건넜다. 연개소문에게는 치욕적인 패배였다. 수나라와 당나라도 어쩌지 못하는 대고구려가 아니였던가. 게다가 그 고구려의 수장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막리지 연개소문일진데…… 연개소문은 오늘의 패배가 너무나 뼈아팠다. 신라군의 수장이 공주라고 얕본 것부터가 실수였다.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적진 한가운데 혈혈단신 뛰어들어,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검술을 불을 뿜듯 휘둘러대는 유신의 얼굴이 연개소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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