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비담의 난 (하)

조정우 2013. 3. 31. 06: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장편소설


특별회 - 비담의 난 (하)


    비담의 난이 일어난 지 10일째 되는 날 밤, 잠시 휴전 상태일 때, 혜성이 성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삼국시대엔 혜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기 때문에 선덕여왕의 시위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반면, 비담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비담은 지금이야 말로 월성을 함락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전군을 이끌고 월성으로 진격하였다. 사기가 오른 비담군은 천지를 진동시킬 듯한 함성을 지르며 질풍노도의 기세로 월성의 정문과 후문을 앞뒤에서 공격하였다. 춘추가 시위들에게 외쳤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거늘, 어찌 나라가 국난에 처했는데 목숨을 아끼겠느냐? 모두 목숨을 바쳐 왕성(월성)을 사수하라!"

   춘추의 외침에 시위들이 죽을 각오로 싸우니, 월성의 수비망이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리라는 것을 춘추는 알고 있었다. 이때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고, 순간 춘추의 뇌리에 번뜩이는 기지가 떠올랐다.

   '풍연을 올려 불을 붙이자. 허면 적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춘추는 사람을 시켜 10척 길이의 커다란 풍연에 사람 키만 한 허수아비를 맨 후 기름을 뿌리고는 저 멀리 서형산 봉우리에서 연을 띄우게 했다. 기름을 뿌린 허수아비에 불화살을 쏘아 올리자, 허수아비가 화염에 휩싸였다. 땅에서 풍연에 맨 허수아비를 바라보니, 마치 혜성이 날아다니는 듯하였다. 춘추가 외쳤다.

   "신라의 병사들은 모두 보라! 월성에 떨어진 혜성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는 하늘의 뜻이 우리 성상께 있음이 분명하다! 용맹하게 싸워 하늘을 거역하는 역도들을 물리쳐라!"

   비담군은 혜성이 까만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사기가 땅에 떨어져 전의를 상실하였다. 이번에는 시위들이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기세를 떨쳤다. 갑작스럽게 전세가 불리해지자, 비담은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춘추는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여 총공격 명을 내렸다.

   "성문을 열어라! 총공격!"

   열흘째 성문을 닫고 수비만 하던 시위들이 갑자기 성문을 열고 공세로 전환하자, 비담의 병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춘추가 예원과 선품에게 명을 내렸다.

   "내가 역도들의 중앙을 공격할 터이니, 너희들은 각각 좌측과 우측을 공격하라!"

   춘추가 먼저 수백 기를 거느리고 맹렬하게 돌격하여 퇴각하는 비담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렸다. 이어 예원과 선품이 수백 기를 거느리고 비담군의 진영으로 돌진하여 순식간에 수십 명을 베자, 사기가 땅에 떨어진 비담군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진영이 무너졌다. 비담군이 패주하여 명활성에 이르니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비담이 앞으로 나와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나 상대등 비담이 왔다!"

   순간 성루에서 화살 하나가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비담을 향해 날아왔다. 비담이 간신히 피하자 쩌렁쩌렁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역적 비담아! 나는 화랑도의 풍월주 천광이다. 너의 반역 소식을 듣고 화랑군을 이끌고 돌아왔으니, 목을 내놓거라!"

   그때, 성문이 열리며 화랑기를 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열이 무너진 채로 양쪽에서 적군을 맞은 비담군은 도망치기에 급급하여 순식간에 진영이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천광은 2천 기를 이끌고 비호처럼 말을 몰아 도망치는 비담을 추격하였다. 거리가 좁혀지자 천광은 단숨에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고, 등에 화살을 맞은 비담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천광은 그대로 말을 달려, 겨우 몸을 일으킨 비담의 목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번뜩이는 검을 휘두르니, 비담의 목이 피를 뿜으며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참으로, 천하의 군주가 되느냐 역도가 되느냐는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의 방향과도 같았다. 너무도 쉽게 손에 쥘 수도, 허망하게 놓쳐버릴 수도 있는 가랑잎과 무엇이 다르랴.

   천광은 비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말에 올라 잘려 나간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는 아직 저항하는 역도의 무리들 앞에 보란 듯이 시위하였다.

   진덕태자가 도망치는 비담군을 향해 외쳤다.

   "항복하라!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모든 죄를 불문에 붙이겠노라!"

   반란의 주동자가 불귀의 객이 된데다 항복하면 죄를 불문에 붙이겠다는 진덕태자의 외침을 듣고 비담군은 앞 다투어 항복하였다.

   2천 기를 이끌고 서라벌에 당도한 천광은 비담군이 총공격에 나서 명활성을 비우면 성을 점령하라는 춘추의 명을 전서구를 통해 전해 받고 명활성 근처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비담군이 총공격에 나서 수백여 기만 남긴 채 명활성을 비우고 떠나자, 천광은 병사들을 성 근처에 매복시킨 후 기다리고 있다가 전령병이 성 밖으로 나오는 틈을 타서 성안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명활성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성문 앞에 2천기를 대기시켰다가 비담군이 명활성으로 돌아오자 기습에 나섰던 것이다.

   춘추는 풍연작전을 통해 반란군의 기세를 꺾을 수만 있다면 분명 비담군이 명활성으로 퇴각하리라는 것을 예측했었다. 그래서 전서구를 띄워 천광에게 대비케 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비담의 목을 벤 천광의 활약으로 비담의 난은 종식되었지만 선덕여왕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춘추의 지혜와 충성심이 아니었다면 모반이 거의 성공에 이를 뻔했기 때문이었다. 선덕은 왕위를 진덕에게 물려줄 것을 천명했는데도 목숨을 걸고 자신과 사직을 지켜낸 춘추가 더없이 미덥고 애틋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 유신은 가혜진의 군영 근처에 있는 야산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남쪽 하늘에서 희미하게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위치를 보니 서라벌 남산 산마루에 설치된 봉화대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분명하였다. 천광이, 비담의 난이 종식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유신은 천광에게 비담의 난이 진압되면 남산 산마루 봉화대에서 불꽃을 올려 신호를 보내라 명했던 것이다. 유신은 곧장 막사에 제장들을 소집하였다.

   "방금 남산의 봉화대에서 비담의 난이 진압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왔소. 백제의 의자가 아국의 정변을 틈타 도발해올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가 먼저 백제를 공격하여 그들의 전의를 꺾는 것이 상책이오. 곧 기습공격을 감행한 후 총공격에 나설 것이니, 명을 내려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시오."

   "대장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제장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유신은 자신이 아끼는 장수 비녕자를 보며 말했다.

   "내 너에게 이천기를 줄 터이니, 백제의 우군을 기습하거라."

   유신은 비녕자가 성미가 급하고 적을 깔보는 성격이기는 하나 용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장수인지라 적군을 기습하는 데는 제격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삼가 대장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자시가 넘은 한밤중에 계백이 백제의 군영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우군의 군영 쪽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백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적군의 기습이다! 속히 나서서 응전하라!"

   열흘 동안 진지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신라군이 기습에 나설 것이라고는 계백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백제군은 크게 당황하였다.

   비녕자는 아들 거진과 함께 2천 기를 이끌고 거침없이 말을 몰아 백제군의 군영으로 돌격하여 순식간에 백제군 수십 기를 베는 동시에 수십 개의 막사를 창으로 쓰러뜨렸다. 비녕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백제군 진영 깊숙이 침투하여 용맹을 떨치자, 백제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그때 신라군의 진영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리더니, 신라군이 질풍노도의 기세로 백제군 진영을 덮쳐왔다. 일순간에 백제군의 진영이 무너지자, 계백은 어쩔 수 없이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유신은 전군을 이끌고 총공격에 나서서 퇴각하는 백제군을 추격하였다. 계백은 5에 이르는 병력을 잃고 패퇴하였다.

 

   비담의 난을 진압한 선덕여왕은 역모에 연루된 승만태후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승만태후를 친어머니처럼 모시라는 진평왕의 유지가 있었다 하여도, 두 차례나 반란을 주도한 승만태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장차 화근이 될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은 고심 끝에 승만태후의 죄를 불문에 붙이기로 하였다. 아버지 진평왕이 승하하기 전에 남긴 유지를 차마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보위에 오른 이후 쉴 새 없이 돌봐야 하는 정사의 과중함과 백제와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데다 비담의 난으로 큰 충격을 받자 지병인 심통이 점점 악화되더니 얼마 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리 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의 몸으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던 선덕여왕은 매우 현명하고 사려가 깊었으나, 두 번씩이나 커다란 역모를 겪었고, 삼국이 치열하게 삼한의 패권을 다투는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재위 16 만에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와의 협약으로 일부만 하이라이트로 발췌하였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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