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백제와 함께 스러져간 계백이여!

조정우 2013. 4. 29. 08: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장편소설 


  아! 백제와 함께 스러져간 계백이여!

  


김춘추 대왕의 꿈

저자
신재하, 조정우 지음
출판사
아름다운날 | 2012-09-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는 누구인가! 삼국을 통일한 민족의 영웅인...
가격비교

  오시 무렵, 5만에 이르는 신라의 대군이 황산벌에 이르렀다. 백제군 진영 앞에 세워진 높다란 목책은 두꺼운 소나무로 세운 것으로 성벽처럼 견고해 보였다. 신라군이 천천히 공격 태세를 갖추자, 계백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용맹스러운 백제의 병사들이여! 결전의 때가 다가왔노라! 오래전에 나제동맹을 일방적으로 깨어 아국의 영토를 빼앗고, 마침내 선대왕을 비명횡사케 하더니, 이제 이민족을 끌어들여 아국을 멸하려는 신라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고구려의 양만춘은 오천의 병력으로 천책상장이라는 당제 이세민의 오십만 대군을 무찔렀거늘, 우리 오천의 병사들이 분전하여 각자 열 명씩 당해낸다면 어찌 오만의 신라군을 무찌를 수 없겠는가? 오자에 이르기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하였으니,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국은에 보답하자! 대백제 만세! 어라하 만세!"

  계백의 외침을 들은 백제군은 사기가 크게 올라 우렁찬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대백제 만세! 어라하 만세!"

  백제군의 우레 같은 함성에 황산벌이 떠나갈 듯하였다. 신라군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춘추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백제가 자국의 강성함만 믿고 아국을 침탈하기를 일삼은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되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수십만의 우리 신라 백성들이 백제군의 창검에 죽임을 당하였으니, 어찌 이 원한을 갚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용감하게 나아가 싸워 우리 신라가 당한 치욕을 갚자!"

   신라군이 함성을 지르자, 대장군 유신이 검을 뽑아 들며 공격 명을 내렸다.

   "공격!"

   유신의 외침과 동시에 신라 화랑군 1만 기가 함성을 지르며 충차(앞에 쇠망치가 있어 성벽이나 목책 등의 장애물을 부수는 전차)를 앞세워 세 개의 백제군 진영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였다. 수십 대의 충차를 목책에 맞부딪치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함정이다. 목책 앞에 철질려가 깔려 있다!"

   목책 앞에 깔려 있던 철질려에 막혀 신라군이 주춤거리는 순간, 목책 위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함정으로 진격이 힘든데다 화살마저 쏟아지자 유신은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추격하라!”

   바로 그때, 계백이 추격 명을 내리자, 수십 개의 목책 문이 열리며 백제군이 쏟아져 나왔다. 목책 문 앞에는 철질려가 깔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 진영의 목책 문을 나선 계백은 수백의 기병을 이끌고 질풍노도의 기세로 신라군을 추격하였다. 이어 좌우 진영의 목책 문이 열리며 좌측에서 충상, 우측에서 상영이 계백과 나란히 추격에 나섰다. 예상치 못한 백제군의 허를 찌르는 역공에 신라군의 진영이 흐트러졌다. 계백은 흐트러진 신라군의 진영을 뚫고 질주하여 수십의 신라군을 베었다. 백제 기병이 좌우 중앙에서 죽기를 각오한 기세로 돌격하여 신라군의 진영을 무너뜨리자, 계백은 총공격 명을 내렸다.

   "총공격!"

   계백의 명이 떨어지자, 백제군이 모두 목책 문을 나서 총공격에 나섰다. 신라군은 불과 5천의 백제군이 5만의 신라 대군을 상대로 총공격에 나서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터라 크게 당황하였고, 우왕좌왕 퇴각하느라 전열이 무너졌다. 계백은 신라군 진영의 한복판으로 돌진하며 외쳤다.

   "무도한 신라군을 격파할 기회가 왔다. 모두 나를 따르라!"

   계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신라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계백이 천지를 개벽시킬 듯한 기세로 용맹을 떨치자, 백제군은 용기백배하여 거침없이 돌격해서는 신라군의 진영을 무너뜨렸다. 신라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 유신이 백제군의 좌측을 향해 돌격하며 외쳤다.

   "적군의 좌측을 집중 공격하라!"

   유신은 쏜살같이 말을 몰아 백제군의 좌측 진영을 지휘하는 충상을 향해 돌진하였다. 유신이 번개처럼 검을 휘두르자, 충상은 방패를 들어 가까스로 유신의 검을 막았다. 유신의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충상은 유신의 적수가 못되어 몇 합 만에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때 흠순의 아들 반굴과 품일의 아들 관창이 각각 백여 기의 화랑군을 이끌고 백제군의 좌측 진영을 향해 돌격했다. 올해로 열여덟 살의 반굴과 열여섯 살인 관창은 화랑도에서 가장 용맹한 소년 장수로, 조국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것이었다. 유신이 반굴과 관창과 함께 화랑군을 이끌고 백제군의 좌측 진영을 무너뜨리자, 질풍노도 같은 기세로 신라군의 진영에 맹공을 퍼붓던 백제군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백제군의 좌측 진영이 무너진 틈을 타서 신라군이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에 나서자, 계백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신라군을 무찌를 절호의 기회였거늘, 충상 장군이 무위로 만들었구나!"

   기세가 오른, 열 배나 많은 적군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백은 마침내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계백이 방패 부대를 거느리고 퇴각하는 백제군의 후방을 지키니, 신라군은 추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신라군은 백제군이 진영을 정비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유신이 명을 내렸다.

   "목책 문 앞은 함정이 없다. 목책 문을 뚫고 나가라!"

   그러나 신라군의 충차가 목책 문을 부수는 순간, 충차를 밀고 전진하던 신라군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철질려 함정이다!"

  어느새 백제군이 목책 문 뒤에 철질려를 깔았던 것이다. 백제군이 주춤거리는 신라군에 화살과 쇠뇌를 퍼붓자, 유신은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하라!"

   이때 백제 진영의 목책 문이 열리며 방패 부대가 목책 밖으로 나와 일렬로 늘어서고, 그 뒤로 궁수가 도열하여 퇴각하는 신라군에 화살을 퍼부었다. 백제군이 목책 문 뒤에 깔려 있는 철질려 함정을 넘어 목책 밖으로 나오자, 신라군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백제군은 철질려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서 신라군에게 화살을 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목책 문을 나선 백제군이 하나같이 나막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책과 철질려로 요새를 만든 백제군에 잇따라 패한 유신은 제장들을 소집하여 작전회의를 열었다.

   "우리가 백제군을 너무 얕보고 덤빈 것 같소. 백제군이 사방에 철질려를 깔고 있는데다 목책에서 화살과 쇠뇌를 쏘아대니 진격이 요원하오. 백제군의 수비망을 무력화시킬 좋은 방책이 없겠소?"

   춘추가 말했다.

   "석포를 쓰면 목책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오. 석포를 공수할 방도가 없겠소?"

   신라군은 급히 진군하느라 석포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유신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탄현은 길이 좁고 경사가 가파른 협곡이라 석포를 운반하기 용이치 아니하옵니다. 백제군이 목책을 방패로 삼아 화살과 쇠뇌를 퍼부으니, 백제군의 화살과 쇠뇌가 얼마나 있느냐가 이번 승부의 관건이옵니다. 계속 공격하여 백제군의 화살과 쇠뇌를 고갈시킨다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춘추는 문득 천하제일의 노사(쇠뇌 기술자) 구진천이 전장에 따라온 사실이 떠올라 유신에게 말했다.

   "천하제일의 노사 구진천이 여기 있으니, 백제군의 목책을 부술 방도를 물어보는 것이 좋겠소."

   구진천이 오자, 춘추가 말했다.

   "백제군의 목책이 견고하여 아군이 고전하고 있다. 목책을 부술 좋은 방책이 없겠는가?"

  "아군에게 천보뇌가 천여 개 있사오니, 이를 돌쇠뇌로 개조하여 목책을 부수면 될 것이옵니다. 소인에게 맡겨주시오면, 밤사이 개조하겠사옵니다."

   "내일 동이 트기 전에 공격할 참인데, 그때까지 만들 수 있겠는가?"

   "충분한 인원을 주시면, 가능할 듯하옵니다."

   ", 사람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동트기 전에 완비토록 하게."

   춘추의 명을 받은 구진천은 병사들을 시켜 황산벌 주변의 소나무 숲에서 소나무를 베어 오게 하였다. 병사들이 베어온 소나무의 속을 뚫고 다듬어 기다란 원통으로 만들어 쇠뇌 발사 장치에 연결하니 돌쇠뇌가 만들어졌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직전, 아직 어두운 새벽에 신라군은 세 번째 공격에 나섰다. 신라군은 구진천이 쇠뇌를 개조하여 만든 돌쇠뇌를 쏘며 진격하였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수백 개의 돌덩이에 백제군의 목책이 무너졌다. 쏟아지는 돌쇠뇌에 백제군은 누벽으로 퇴각하였다. 흠순과 품일이 이끄는 신라의 선봉군이 접첩교를 타고 철질려가 깔려 있는 함정을 건너가 백제군 누벽으로 돌진하였다. 그러나 백제군이 계백의 지휘 아래 누벽에 숨어 쇠뇌와 화살을 퍼부으며 항전하자, 신라군은 백제군의 수비망을 뚫지 못한 채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전사자가 늘어나자, 결국 유신은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자, 신라군은 허겁지겁 접첩교를 타고 퇴각하였다.

   신라군은 곧이어 네번째 공격에 나섰다. 신라군은 수백 개의 돌쇠뇌를 발포하며 돌격하였지만 백제군은 누벽에 숨어 돌쇠뇌를 피했다. 신라군이 누벽을 향해 돌진해오자, 계백이 신라군을 속이기 위해 작전을 내렸다.

   "시위를 겨눈 채 기다리라."

   신라군이 누벽에 이르자, 누벽 뒤에 숨어 있던 백제군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백제군의 갑작스러운 화살 공격에 신라군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계백은 맹렬하게 돌진하여 신라군을 베며 외쳤다.

   "모두 누벽에서 나와 공격하라!"

   백제군이 모두 누벽을 나와 용맹하게 싸우니, 신라군이 당하지 못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계백이 다시 명을 내렸다.

   "추격하라!"

   백제군 모두 한마음으로 계백의 명에 목숨을 걸고 따르니, 110의 수적 열세에도 신라군을 압도하였다. 처자식까지 다 죽이고 싸움에 임한 계백과 그만을 믿고 따르는 백제의 병사 5천 명의 투지는 실로 놀라웠다. 신라군은 맹렬한 기세로 추격하는 백제군을 겨우 뿌리치고 진영으로 퇴각하였다. 신라군은 네 번의 싸움에서 1만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4연패를 당한 신라군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전의를 상실하였다. 유신이 주최한 작전회의가 끝나자, 흠순이 비장한 얼굴로 나가더니 아들 반굴을 불러 말했다.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충을 다해야 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효를 다해야 한다. 지금 아군이 위기에 처해 있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과 효를 다하는 것이 신하와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느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아버지 흠순의 뜻을 알아차린 반굴은 아내 영광과 아들 영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인, 사랑하오. 부디 행복하시오. 비록 이승에서는 부부의 연이 끝날지라도 저승에서는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싶소. 아들아, 이 아비 먼저 이승을 떠나니, 네 어미를 잘 모시거라.'

   반굴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가 아버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반굴이 단기필마로 백제 진영을 향해 돌진하자 백제의 장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반굴이 백제군 진영의 코앞까지 말을 달려오자 그제야 부장 정복이 명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나가 싸우라!"

   말을 탄 백제군 수십이 반굴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반굴이 용맹하게 돌진하여 순식간에 서너 명을 죽이자, 백제군이 물러서더니 일제히 화살을 쏘아댔다. 반굴은 10여 발의 화살을 맞고 온 몸이 벌집이 될 때까지 검을 높이 치켜들고 고함을 지르며 백제군 진영으로 돌진하다 말 아래로 고꾸라졌다. 반굴이 죽자, 반굴과 의형제를 맺었던 관창이 비분강개하여 아버지 품일 앞에 나가 말했다.

   "소자, 반굴 형님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기에 출전하고자 하나이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20여 년 전 백제군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은 형 품석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했던 품일은 아들의 기개에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내 아들이로다. 장하다!"

   품일이 허락하자, 관창도 단기필마로 백제군 진영을 향해 내달렸다. 반굴에 이어 관창이 단기필마로 돌진해오자, 계백은 장수를 희생시켜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신라군의 저의를 알아차리고, 사로잡으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백제군 수십 명이 관창을 사로잡기 위해 말에서 내려 포위망을 좁혀왔다. 관창은 거침없이 창을 휘둘러 여러 명의 백제군을 베었으나, 결국 말이 창에 찔려 쓰러지는 바람에 땅에 떨어졌다. 그 틈을 타서 백제군이 땅에 쓰러진 관창을 사로잡았다. 병사들이 사로잡혀 온 관창의 투구를 벗기자, 열여섯의 어린 얼굴이 드러났다. 계백은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신라는 소년도 이처럼 용맹하거늘, 장정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계백은 순간 열네 살의 어린 나이로 출전하겠다던 아들 계용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아들도 열여섯 살쯤 된다면 이처럼 용맹하게 자랄 터이거늘, 내 손으로 죽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할 수 있겠는가!'

   유신의 신라군에게 패할 것이라 확신하여 처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계백은 싸움을  이길 때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계백은 관창에게 아들 같은 정을 느껴 차마 죽일 수 없어 관창의 손을 묶은 채 말에 태워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진영으로 돌아온 관창은 아버지 품일에게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자가 살아온 것은 소자의 뜻이 아니었사오니,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가서 죽기로 싸우겠사옵니다."

   관창은 우물물로 바싹 마른 입을 축인 후 다시 단기필마로 백제군 진영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계백은 나와서 나의 창을 받거라!"

   관창의 외침을 들은 계백은 말을 달려 나와 관창을 상대했다. 계백은 관창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 검으로 말을 찔러 땅에 떨어뜨려 사로잡았다. 계백이 관창을 다시 돌려보내려 하자 관창이 외쳤다.

   "대장부가 어찌 구차하게 적장에게 목숨을 빚질 수 있겠소? 차라리 죽이시오."

   계백은 어쩔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그 시신과 함께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어린 나이지만 기개가 높은 관창의 시신을 그의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계백의 의연함과 인간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말안장에 매달린 관창의 목을 본 품일은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아들의 면목이 마치 살아있는 듯하구나. 죽어도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을 것이다."

   이를 본 신라 병사들의 비분강개함을 놓치지 않고 흠순이 소리 높여 외쳤다.

   "열여섯의 어린 관창이 이처럼 용맹한데, 우리가 어찌 백제군을 두려워할 수 있겠느냐? 오늘 백제군을 무찔러 관창의 원한을 갚자! 대 신라 만세!"

   "대 신라 만세! 대 신라 만세!"

    신라군의 만세 소리가 황산벌을 진동시켰다. 관창의 죽음으로 신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자, 유신이 총공격 명을 내렸다.

   "총공격!"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던 관창의 낭도들이 유신의 명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미친듯이 돌격하였다. 4만에 이르는 신라군이 백제군 진영으로 성난 파도와 같이 돌진하니, 백제군의 수비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신은 백제군의 좌측 진영을 지휘하는 충상을 향해 돌진하며 외쳤다.

   "좌측을 집중 공격하라!"

    충상이 지휘하는 백제군 좌측 진영이 유신에게 돌파당하자, 충상은 수십 명의 신라군에 둘러싸여 공격을 받게 되었다. 지휘관을 제대로 호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백제군 좌측 진영은 신라군의 집중 공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계백은 좌측 진영이 무너지는 것을 보자, 승부가 판가름 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늘이시여, 정녕 백제를 버리고자 하시나이까?"

   충상은 성난 신라군의 칼을 맞고 그대로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사기가 떨어진 백제군의 우측 진영도 무너졌다.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자 백제군이 군사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신라군을 상대하기는 그야말로 중과부적이었다.

    계백은 백제군 중앙 진영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죽기로 싸웠다. 그러나 채 5천 명도 안 되는 백제군은 여기저기서 신라군의 창검에 찔려 피를 뿌리며 쓰러져갔다. 거의 모든 백제군이 전멸하였고, 계백은 홀로 수백 명의 신라군에게 에워싸여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그가 탄 말이 창에 찔려 땅에 떨어지고서도 계백은 자신을 에워싼 신라군을 상대로 처절한 칼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찌른 누군가의 창에 등이 찔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에 베이고도 계백은 수십 명의 신라군을 베고 쓰러뜨렸다.

    어느덧 계백은 갑옷과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서운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뒷머리에 검을 맞은 계백은 투구가 깨져 얼굴과 뒷목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한쪽 귀가 잘려나가고, 팔과 가슴, , 허리, 다리까지 온통 창검에 베이고 찔리고도 믿을 수 없는 투혼으로 신라군을 찌르고 베었다. 마치 눈을 감지 못하는 귀신처럼 섬뜩한 몰골을 한 계백은 포효하듯 괴물과도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 곧, 누군지도 모를 수많은 신라 병사들의 창과 검에 수십 번이나 찔리고 베인 끝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신라군은 계백이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나서도 그간 계백에 대한 복수심과 공포심을 분풀이라도 하듯 수십 번이나 창으로 찌르고 검으로 난도질해댔다.

   경신년(660) 초가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주검이 된 비운의 장수 계백을 앞에 두고 우레와 같은 신라군의 승리의 함성이 황산벌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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