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소부리벌 전투

조정우 2013. 5. 11. 12: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장편소설



김춘추 대왕의 꿈

저자
신재하, 조정우 지음
출판사
아름다운날 | 2012-09-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는 누구인가! 삼국을 통일한 민족의 영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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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회 - 소부리벌 전투


    백강 언덕에서 당군의 갑주를 입은 인문이 말에 탄 채 사비성이 있는 북동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춘추의 둘째 왕자인 인문이 당의 숙위가 되어 사랑했던 금화와 헤어진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갔다. 금화가 백제 의자왕의 후궁이 되어 밀정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4년 간, 인문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인문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금화야, 곧 너를 구하러 갈 터이니, 부디 무사해다오. 너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때, 멀리서 4만 쯤 되는 대군이 백강 하구로 진군해오고 있었다. 황산벌을 넘은 신라군이 백강 하구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정방과 약조했던 710일보다 이틀 늦게 당도한 신라군은 독군 문영을 당군의 막사로 보내 늦은 사정을 설명하였다.

   "황산벌에서 아군이 계백의 지략에 고전한 관계로 이제야 당도하게 되었나이다. 대총관께서는 아무쪼록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소정방은 문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기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군령을 어긴 것이니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여봐라! 당장 이 자를 포박하여라. 내 이자에게 군령을 어긴 죄를 물어 목을 벨 것이니라!"

   천자의 나라에서 대군을 이끌고 온 장수로서 톡톡히 주인 행세를 하고자 하는 것이 소정방의 의도였다. 일종의 기싸움인 셈이다. 때마침 막사에 들어온 인문이 소정방을 만류하였지만, 소정방은 당군의 부총관인 인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인문이 급히 수하 병사를 유신에게 보내 문영의 위급함을 알렸다. 포박당한 문영이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소정방은 오히려 더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목을 벨 기세로 문영을 중죄인 다루듯 하였다. 그때 한달음에 달려온 유신이 막사의 입구를 지키던 병사 둘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멈추거라!"

   유신은 보검을 뽑아 들었다.

   "대총관이 황산벌의 싸움을 보지 아니하고 기일에 이틀 늦은 것을 문제 삼아 죄 없는 우리 장수를 죽이려 함은 우리 신라를 능멸하는 것으로,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받을 수 없소. 우리 장수의 목을 벤다면 먼저 당과 결전한 후에 백제를 쳐부수기로 하겠소."

   “무엄하오!”

   소정방의 수하 장수 하나가 검을 빼 들고 유신 앞에 나서자 유신은 거침없이 그자의 몸을 두 동강 낼 듯한 기세로 검을 내리쳤다. 유신의 검을 막은 장수는 유신의 엄청난 힘에 중심을 잃어 몸이 휘청거렸다. 순간 유신이 당나라 장수의 가슴팍을 발길질로 사정없이 내지르자 그 장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분노로 머리칼이 꼿꼿이 선 유신은 당장이라도 보검으로 소정방을 벨 기세였다. 하얀 수염에 하얀 머리칼이 곤두선 채, 팔 척 장신에 호랑이 같은 풍모에서 내뿜는 살기가 소름 끼쳤다.

   “당장 해보겠느냐?”

   당의 막사 안이어서 유신이 혈혈단신으로 당의 군사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정방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입을 까딱 잘못 놀렸다가는 단칼에 목이 날아갈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

   소정방은 겁에 질려 자기도 모르게 항복하듯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진정하시오, 장군. 내가 신라군의 사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 장군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오."

   소정방은 호랑이 같은 안광에서 불을 내뿜듯 하는 유신의 쩌렁쩌렁한 일갈에 오금이 저렸다. 신라군 총관이 와서 사정이라도 하게 함으로써 기세를 잡으려던 소정방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가고 만 것이다.

   유신이 문영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를 들은 제장들은 소정방을 혼쭐낸 유신의 기개에 크게 감탄하였다. 유신이 문영을 위로하였다.

   "문영공께서 고생이 많으셨소."

   문영은 죄 없는 자신의 목을 베려 했던 소정방의 횡포를 생각하면 치가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대장군께서 소신을 살려주셨으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유신은 제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당이 백제가 망하기도 전에 아국을 종 부리듯 하니, 마땅히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오."

    나당군은 사비성으로 가는 길목인 소부리벌로 진격하였다. 소부리벌은 앞으로 백강이 굽이쳐 흐르고 좌우로 비탈진 산에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로, 전날 귀양지에서 풀려난 흥수가 도성 수비병 1만을 총동원하여 진을 치고 있었다. 이는 수전에 약한 당군을 막기에 가장 적합한 지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당군이 소부리벌 앞의 백강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척후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백제군의 대장은 좌평 흥수라고 하옵니다."

    흥수는 오래전부터 사해에 명성을 떨친 천하의 명장이라는 척후병의 보고에 소정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때 까마귀 한 마리가 소정방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소정방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점쟁이를 막사로 불러 점을 쳤다.

   "까마귀가 아군 진영에 맴도는 것은 지금은 불길한 징조라는 뜻이니 섣불리 공격하다가는 필시 대총관께 변고가 일어날 것이옵니다."

   적장이 흥수인데다 불길한 점괘가 나오자 소정방은 군대를 물리기로 결심하고 유신에게 말했다.

   "예로부터 까마귀가 날면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긴다는 하늘의 계시라 여겼소. 또한 까마귀로 인하여 병사들의 사기가 꺾였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선 후에 내일 공격에 나설 터이니, 그리 아시오."

   유신이 정색하며 말했다.

   "어찌 한낱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로 인하여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시오? 백제가 무도하여 하늘을 대신하여 군사를 일으켜 치는 것인데, 어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소?"

   때마침 까마귀가 유신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이를 본 유신이 거침없이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리니 정통으로 몸을 관통당한 까마귀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유신이 소정방에게 말했다.

   "까마귀가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면, 어찌 나의 화살에 이처럼 속절없이 죽었겠소? 백제의 구원병이 오기 전에 승부를 끝내는 것이 상책이니, 속히 공격에 나서야 할 것이오."

   순간 소정방은 신라가 백제와 혈전을 치르도록 하여 양패구상이 되도록 만든다면, 그때 당군이 백제를 멸한 후 신라마저 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정방은 당 고종에게서 백제를 멸한 후 가능하면 신라도 멸하여 삼한 이남을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소정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신라군이 선봉에 선다면, 우리 당군도 공격에 나서겠소."

   "좋소. 오늘 야밤에 공격을 개시할 터이니, 우리 신라군이 선봉에 나서면, 엄호하여 주시오."

   신라군의 막사에서 작전회의가 한창일 때, 파수병이 한 사내를 포박하여 데리고 들어왔다.

   "이자가 자신이 전 종발성주라며 급히 대장군을 뵙기를 청하기에 사실 여부를 확인키 위해 데려왔나이다."

   유신은 파수병이 데려온 사내를 보자 포박을 풀어주며 제장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백제의 밀정으로 활약한 미압공이오!"

   5년 전, 백제의 밀정이 되기 위해 백제에 항복했던 종발성주 조미압이었다. 나당군이 소부리벌에 이르자, 조미압은 방비가 소흘한 성벽을 넘어 신라군 진영으로 달려왔지만, 신라 파수병들에게 첩자로 오인받아 체포된 것이었다. 유신에게서 조미압의 활약상을 들은 춘추는 보검을 하사하며 그의 공을 치하하였다.

   "미압공, 참으로 장한 일을 하였소! 스스로 몸을 낮추어 적국의 포로가 되어 큰 공을 세웠으니, 백제를 멸한다면 공을 일등공신에 봉하겠소."

   "성상께서 소신의 작은 공을 크게 치하하여 주시니, 망극할 따름이나이다."

   유신이 조미압에게 말했다.

   "지금 흥수의 진을 깨뜨릴 방책을 세우고 있었는데, 때마침 잘 와 주셨소. 흥수가 비록 명장이라 하나, 백제의 지리를 잘 아는 공이 길잡이가 되어 준다면, 능히 흥수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오."

   조미압은 품속에서 지도를 깨낸 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백강의 지류인 석성천을 따라가면 사잇길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한 마장쯤 거리에 있는 어라산에 소부리벌로 통하는 숲길이 있어, 그 길을 넘어 진군한다면 백제군의 진영을 기습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춘추는 손으로 탁자를 치며 감탄했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오! 결사대를 선발하여 야밤에 어라산을 넘어 기습한다면, 계백이 살아난다 하여도 필승할 수 있을 것이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되자, 5천의 신라군이 뗏목을 타고 소부리벌에서 남쪽으로 한 마장 떨어진 백강 나루를 건너 석성천을 따라 진군하였다. 신라군은 조미압의 인도 하에 사잇길을 따라 어라산을 넘어 소부리벌 동쪽의 숲속에 매복했다.

    조미압이 전서구를 띠워 소부리벌에 매복했음을 알리자, 5천의 신라 선봉군이 앞뒤로 두꺼운 나무 방패가 붙어 있는 뗏목을 타고 도강에 나섰다. 백제군이 신라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 강변으로 바짝 다가가자, 백강가에 포진한 신라군은 쇠뇌를 쏘며 선봉군을 엄호하였다.

    백강을 사이에 두고 양군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을 때, 소부리벌 동쪽 숲속에 매복해 있던 신라군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백제군 진영을 덮쳤다. 비탈진 산이 가로막고 있어 백제군이 철벽으로 여기던 동쪽에서 갑자기 신라군이 쏟아져 나오자, 백제군 동쪽 진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선봉에서 백제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백제군 대장 흥수는 신라군의 기습으로 무너진 동쪽 진영을 향해 외쳤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자리를 지켜라. 이 전투에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 속히 진영을 정비하라!"

   당군 진영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소정방은 신라군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자 공격 명을 내렸다.

   "공격하라!"

   소정방의 공격 명이 떨어지자, 수만의 당군이 소부리벌에서 한 마장 떨어진 백강 나루에서 뗏목을 타고 도강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흥수는 결사대 1천 기를 보내 당군의 도강을 막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도강에 성공한 수만의 당군은 진을 친 후 백제군 진영을 향해 돌격하였다. 양쪽에서 협격하는 신라군과 악전고투를 벌이던 백제군은 당의 대군이 돌격해오자, 진영이 한꺼번에 붕괴되어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10만에 이르는 당군이 백강을 건너니,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흥수는 붕괴된 진영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나당군을 보며 크게 탄식하였다.

   "하늘이시여, 정녕 백제를 버리셨나이까?"

   흥수의 부장인 정무가 흥수에게 탈출을 권하였다.

   "장군은 백제의 희망이오니, 속히 탈출하여 훗날을 기약하소서."

   흥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대장이 어찌 병사들을 버리고 전장을 떠날 수 있겠소? 이 몸은 병사들과 운명을 함께 할 터이니, 정무공이 떠나 훗날을 기약하시오."

   정무가 머뭇거리자, 흥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는 대장으로서 내리는 명이오. 속히 전장을 떠나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이 나라의 사직을 지켜주시오."

   흥수의 명에 정무는 눈물을 뿌리며 전장을 떠났고, 흥수는 남은 병사들과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