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 백제의 멸망

조정우 2013. 5. 27. 08:00

김춘추 대왕의 꿈 신재하 조정우 장편소설


김춘추 대왕의 꿈

저자
신재하, 조정우 지음
출판사
아름다운날 | 2012-09-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는 누구인가! 삼국을 통일한 민족의 영웅인...
가격비교


   특별회 - 백제의 멸망


   소부리벌의 전투에서 흥수마저 전사하였다는 소식에 의자왕은 절망하며 크게 탄식하였다.

   "흥수마저 전사하였다 하니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의자왕의 옆에 있던 은고왕후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라하소부리벌이 무너졌으니 곧 적들이 도성으로 몰려올 것이옵니다옛 도성인 웅진성은 정병이 오천이니 속히 웅진성으로 피하소서."

   "사비성의 백성들은 어찌한단 말이오?"

   "무엇보다 이 나라의 사직을 지켜야 하옵니다칠백 년의 백제 사직을 지키지 못하면무슨 면목으로 선조를 뵐 수 있겠사옵니까?"

   사비성을 떠날 결심을 굳힌 의자왕은 맏아들 융과 차남 태를 처소로 불렀다올해로 마흔 두 살인 융과 마흔 한 살인 태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었다융과 태가 처소에 들어오자의자왕은 먼저 융에게 말했다.

   "이 아비는 웅진성으로 가서 사직을 지키고자 한다이 나라의 사직만 지킬 수 있다면 그 어떤 치욕이라도 감내할 작정이다너를 당군 대총관 소정방에게 사신으로 보낼 터이니사죄를 청하거라."

   "소자아바마마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이어 태에게 말했다.

   "내 너에게 사비성을 맡길 터이니목숨을 걸고 사비성을 사수하라마음 같아서는 너희들도 웅진성으로 데려가고 싶으나풍전등화의 신세가 된 이 나라의 사직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구나!"

   "소자목숨을 걸고 사비성을 사수하겠나이다."

   의자왕은 은고왕후와 왕후의 친아들 태자 효를 데리고 사비성을 떠나 웅진성으로 향했다의자왕의 열 번째 아들인 효가 태자의 위에 오른 것은 5년 전으로의자왕의 총애를 입은 금화가 백제 왕실에 분란을 만들기 위해 은고왕후를 부추겨 당시 태자였던 융을 폐위시키고 효를 태자의 위에 올렸던 것이다.

    의자왕이 사비성을 떠나 웅진성으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크게 분개하였다사비성이 함락된다면 사실상 백제는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의자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지금과 같은 망국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개탄한 중신들과 귀족들은 사비성마저 버리고 도망간 의자왕으로는 도저히 백제의 안위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사비성이 적에게 함락된다면 자신의 가족들 역시 모든 것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하여 귀족들은 대궁으로 몰려가 융을 보위에 추대하려 했지만 융은 이미 사신으로 떠나고 없었다귀족들은 다급한 마음에 융의 동복동생 태를 보위에 추대하였다오래전부터 보위에 오르고자 하는 야심을 품어왔던 태는 형식적으로 세 번 사양한 후 보위에 올랐다이로서 백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소정방에게 화친을 거절당한 후 사비성으로 돌아온 융은 동생 태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격노하였다.

   "어찌 친형을 두고 동생이 보위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융이 심복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18만에 이르는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에 이르렀다나당군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총공격에 나섰다태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사비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백만 대군이 쳐들어온다 하여도 군관민이 죽기로 싸운다면 능히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니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

   사비성은 절반은 백강이 둘러싸고 있고나머지 절반은 비탈진 산과 숲이 빼곡한 야산에 견고한 성벽을 세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하지만 사비성의 허실을 훤히 꿰뚫고 있는 조미압이 나당군의 길잡이로 활약하였기에 백제군은 사비성의 약점을 파고드는 나당군의 공격에 고전하였다계속되는 나당군의 맹공에 사비성의 수비망이 무너지기 시작하자융의 아들 문사가 융에게 말했다.

   "어라하께서 태자와 함께 웅진성에 있는데숙부님께서 자의로 왕위에 오르셨으니설령 나당군이 물러간다 하여도 아버님이 당장 보위에 오르실 기회가 요원해졌사옵니다또한 우리 백제군이 대군인 나당연합군에게 중과부적으로 전멸할 경우 아버님의 옥체조차 보존하시기 어려울 수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항복하는 도리밖에 없사옵니다."

융은 고심 끝에 항복을 결심하여 성벽에 밧줄을 매달아 식솔들과 함께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갔다융이 식솔들을 데리고 빠져나가자이를 본 백성들이 서로 앞다투어 밧줄을 타고 빠져나갔다성벽을 지키는 병사들마저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자사비성의 수비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이 틈을 노려 신라군이 성벽을 점령한 후 신라기를 꽂으니성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이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사비성이 함락되자태는 호위병 수백 기를 거느리고 왕자비와 함께 나룻배가 있는 대왕포로 달려갔다나당군이 성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성안에 있던 궁녀들도 후문을 통해 우르르 산길을 따라 대왕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도망치다 당군에게 붙잡혀 질러대는 궁녀들의 비명소리가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뒤쪽으로 당군의 병장기 소리와 함성소리가 굶주린 늑대가 으르렁대는 소리마냥 들려왔다.

   당군은 자국 군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점령한 백제인의 재물을 마음껏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강탈하기를 독려할 정도였다그것이 이민족인 당나라와 우리 민족끼리 전쟁할 때의 차이였다고구려백제신라와의 전쟁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울지언정 그 밑바닥에는 모두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그래서 성을 점령했을 때나 전투에서 이겼을 때에도 점령지의 백성만큼은 학살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지는 않았다. 삼한 모두가 통일에 대한 집념은 있을지언정 통일된 삼한은 원래 하나의 백성이요하나의 민족임을 잘 알고 있음이었다그러나 당나라 입장에서 삼한은 짓밟아야 할 적국이요힘으로 억눌러 착취해야 할 대상이었다그렇기에 삼한의 백성보다 당군의 사기가 더 없이 중요했다그래서 당군은 무자비하게 백제인들을 학살하고부녀자를 강탈했다하물며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백제의 꽃다운 궁녀들이야말로 그들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젊은 궁녀들이라면 무조건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가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삼천이나 되는 궁녀들은 굶주린 이리떼와도 같은 당군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대왕포의 끝자락(지금의 낙화암)까지 이르는 5리나 되는 산길을 따라 치맛단을 끌며 걷고 또 걸었다대부분 열다섯에서 스물둘에 이르는 꽃다운 궁녀들이었다그들은 어린 나이에 궁녀로 들어와 왕자나 공주들을 수발하거나의자왕의 사치와 향락의 재물이 된 물망초 같은 백제의 딸들이었다.

   태가 왕자비와 함께 나룻배를 타기 위해 절벽 아래 나루터로 내려가려고 할 때삼천에 이르는 궁녀들이 대왕포로 물밀듯이 몰려왔다사비성과 백성들을 뒤로 하고 몸을 피하는 어라하를 보며 궁녀들이 태에게 애원하였다.

   "어라하부디 소녀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사비성 귀족들의 추대로 보위에 오른 태는 사비성에서만큼은 백제의 어라하였던 것이다궁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자 태는 이들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태가 호위병사들에게 말했다.

   "부교를 만들거라내 궁녀들과 함께 떠날 것이다."

   호위대장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나당군이 곧 들이닥칠 터인데어느 세월에 부교를 만들겠사옵니까?"

   "부교를 만들 때까지 너희들이 나당군을 막으면 가능치 아니하겠느냐아니 된다면내 궁녀들과 운명을 함께할 생각이다."

   나룻배를 타고 도망친다 하여도 어디로 갈지 막막하였기에 태는 궁녀들과 함께 죽을 작정이었던 것이다태의 말에 궁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다.

   "어라하께서 소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오니소녀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어느새 수천의 당군이 대왕포로 몰려왔다.

   "저들을 막아라궁녀들을 보호하라!"

   태의 명이 떨어지자호위병사들이 궁녀들을 보호하며 진을 쳐 사력을 다해 막았지만중과부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대왕포 끝자락인 절벽 쪽으로 밀렸다궁녀들이 태에게 말했다.

    "어라하이제 소녀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사오니어라하께서는 속히 아래로 내려가셔서 배에 올라 옥체를 보존하소서."

    대왕포 절벽 아래 나룻터에는 왕이 타고 갈 나룻배 하나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니다내 어찌 딸 같은 너희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느냐?"

    이때호위병사들의 진이 무너져 당군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당군이 대왕포로 몰려오자궁녀들은 급히 태에게 하직인사를 한 후 백강에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꽃다운 삼천 궁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밀고 밀리어 낙화암에 뿌려진 꽃잎처럼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끝내 백제에 대한 정절을 지키고 스러져가는 이름 모를 궁녀들의 고귀한 죽음이 더없이 슬프고 아름다웠다이를 바라보는 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태가 왕자비에게 말했다.

    "적국의 포로가 되어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궁녀들과 함께 죽는 것이 낫지 아니하겠소?"

   왕자비가 태를 붙잡으며 울면서 말했다.

   "어라하어찌 지존이신 어라하께서 가벼이 목숨을 버리려 하시나이까옥체를 보존하시어 훗날을 기약하소서."

   “미안하오왕후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아니하구려내 백성들과 함께 가리다.”

   “어라하그러시다면 첩도 함께 따르겠나이다.”

   어느새 당군이 코앞까지 몰려오자태는 백강에 몸을 던졌다태가 백강에 몸을 던지자왕자비도 태를 따라 백강에 몸을 던졌다.

   웅진성으로 온 의자왕이 수심에 찬 얼굴로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웅진성주 예식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라하임존성주 흑치상지가 수천 기를 이끌고 오고 있다 하나이다십리 거리에 있다 하오니곧 당도할 것이옵니다."

   예식진의 말에 의자왕이 반색하며 물었다.

   "다른 구원군 소식은 없는가?"

   예식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송구하오나아직 다른 구원군 소식은 없사옵니다."

    의자왕은 고구려가 원병을 보낼 것이라 믿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식진에게 물었다.

   "허면 고구려로부터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의자왕은 실낱 같은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 연개소문을 그토록 믿었거늘연개소문이 짐을 배신하였단 말인가!"

    금화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보더니 말했다.

    "평양에 사신을 보낸 지 닷새밖에 아니되었으니좀 더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어린 시절 백제군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금화였기에 한때 의자왕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였지만지금은 오히려 의자왕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생겼다자신에 대한 의자왕의 지극한 사랑에 오랜 증오심이 사라지자 풍전등화 신세의 백제 사직을 지키려는 의자왕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의자왕은 금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내 곁에 있어 마음에 큰 위안이 되는구나!"

   "어라하께서 소녀를 어여삐 여겨주시니망극할 따름이나이다."

    웅진성에 당도한 나당동맹군의 대장 소정방은 예식진에게 서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했다.

   '웅진성주 예식진은 감히 천병과 맞서지 말고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천자의 뜻이 곧 하늘의 뜻임을 모르느냐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항복하면 세세토록 부귀를 누릴 것이나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항전한다면 멸문을 면치 못하리라신중히 결정하여 조상의 제사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를 바라노라.'

   소정방의 서신을 받은 예식진은 마음이 흔들렸다예식진의 가문인 예씨는 비록 조부 예다와 아버지 예사선이 무왕 시절에 총애를 받아 웅진을 하사받은 덕분에 웅진성주의 직을 이어받았지만의자왕의 신임을 받지 못해 직위를 잃을까 안절부절못해 왔었다예식진은 오랜 고민 끝에 당에 항복할 것을 결심하고 몰래 사신을 보내 그 뜻을 알렸다.

   7월 18일 자시예식진은 10여 명의 장사들을 이끌고 가서 처소에서 잠을 자고 있던 흑치상지를 급습하여 포박하였다흑치상지는 천하장사였지만잠자는 중에 장사 10여 명이 덤벼들자 꼼짝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당에 항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흑치상지를 잡은 예식진은 이어 병사들을 이끌고 흑치상지의 병사들 군영을 급습하였다.     흑치상지의 휘하에는 용맹한 병사들이 많았지만보초도 세워두지 않은 채 대부분 잠든 상태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잠을 자던 중 바깥에서 예식진의 병사와 흑치상지의 병사가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깬 의자왕은 크게 놀라 예식진을 불렀다.

   "여봐라예식진은 어디 있느냐?"

   이때 예식진이 병사들을 이끌고 처소 안으로 들어왔다의자왕은 곧 예식진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고 꾸짖었다.

   "예식진네 이놈네 조부와 아비가 선왕의 큰 총애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너 또한 웅진성주로서 영화를 누렸거늘어찌 감히 짐을 배신한단 말이냐?"

   예식진이 읍을 하며 말했다.

    "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이오니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의자왕이 대노하여 벽에 걸려 있는 검을 잡으려 하는 순간병사들이 몰려와 의자왕을 포박하였다의자왕은 눈을 부릅뜨고 호통치며 발버둥을 쳤지만의자왕의 곁을 지키고 있던 금화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눈을 감은 채 담담히 받아들였다이처럼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던 타락한 군주 의자왕은 신하에게 포박당한 채 적군에게 넘겨지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판사와의 협약으로 일부만 하이라이트로 발췌하였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