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김춘추 대왕의 꿈 특별회, 김춘추의 유언

조정우 2013. 6. 10. 00:00

특별회 - 김춘추의 유언


김춘추 대왕의 꿈

저자
신재하, 조정우 지음
출판사
아름다운날 | 2012-09-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누구인가!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파란만장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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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소의 원한을 푼 지도 근 1년이 지났건만 춘추의 가슴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더욱 더 떠나간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가을밤에 춘추는 왕궁의 뜰을 쓸쓸히 거닐고 있었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진 춘추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천명공주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어머님께서 삼한 땅에 평화가 오기를 그토록 바라셨건만, 끝내 평화를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애석하기 그지없구나!'

   이 무렵, 백제 부흥군은 복신의 지휘 아래 크게 세력을 떨치며 의자왕의 왕자 풍을 보위에 세웠다. 춘추는 백제 부흥군이 이토록 세력이 커진 것은 자신이 패망한 백제 민심을 돌보기보다는 고타소를 죽인 의자왕에 대한 복수에 혈안이 되었던 탓이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춘추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내가 복수에 눈이 어두워 패망한 백제의 민심을 어루만지지 못하여 이 지경이 되었구나!'

   이때, 어디선가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곡조로, 어머니 천명공주가 생시에 자주 연주하던 곡이었다. 춘추가 퉁소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니, 시녀들이 거처하는 처소에서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궁중의 악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솜씨였다. 춘추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다. 어머니와 고타소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한 맺힌 복수를 하였건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고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왠지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이 한없이 슬퍼지고 덧없이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자, 춘추는 호롱불을 들고 곁에 서있는 시종에게 명했다.

   "지금 퉁소를 연주한 시녀를 내 처소로 들이거라."

   얼마 후, 시종이 시녀 하나를 춘추의 처소로 데리고 들어왔다. 시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올렸다. 고개를 숙여 얼굴이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초롱불에 비치는 시녀의 미색은 곱디 고왔다. 춘추가 명했다.

   "고개를 들거라."

   시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녀는 바로 의자가 총애했던 딸 비화공주였다. 비화는, 춘추의 명으로 나당의 장수들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르는 치욕을 당한 후 화병으로 죽은 아버지 의자왕의 복수를 위해 시녀로 궁에 잠입했던 것이다. 비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춘추는 20여 년 전 작고한 딸 고타소를 보는 듯하였다. 비화의 얼굴이 딸 고타소와 어딘지 모르게 닮았기 때문이다. 춘추가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비화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월화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월화라 하옵니다."

   "어느 가문의 여식이냐?"

   춘추의 물음에 비화가 머뭇거리자 시종이 말했다.

   "월화는 백제궁 시녀 출신이옵니다."

   시종의 말에 비화는 두려운 기색으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춘추는 비화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니다. 백제인 또한 짐의 백성이거늘, 어찌 이유 없이 박대하겠느냐?"

   비화는 춘추에게 손이 잡히자, 황망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춘추는 비화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짐이 오늘 너를 부른 것은, 너의 퉁소 곡조를 듣기 위함이니라. 오늘 뜰을 거닐다 우연히 너의 퉁소 연주를 들었는데, 솜씨가 제법이더구나. 짐에게 한 곡조 들려주지 아니하겠느냐?"

   "성상께서 소녀의 보잘 것 없는 연주를 듣고자 하시오니, 광영일 따름이나이다."

   비화는 손에 들고 있던 퉁소를 입으로 가져와 숨을 불어넣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신라 곡으로, 아련한 감정을 퉁소에 담은 듯,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저며오는 구슬픈 가락이었다. 평생 전쟁터를 누비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백성을 잃어야 했던 춘추였다. 그러한 춘추의 심금을 울리는 비화의 퉁소 연주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연주가 끝나자 춘추가 물었다.

  "너는 백제 출신인데, 어찌 신라의 음악을 아는 것이냐?"

   비화가 연주한 곡조는 할머니 선화에게 배운 것이지만, 신분을 속이기 위해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였다.

   "소녀의 어미는 본래 신라인이셨는데, 전쟁의 포로가 되어 백제에 정착하셨사옵니다."

   "어미는 어디 있느냐?“

   "소녀의 아비와 어미, 모두 지난해 전쟁 중에 돌아가셨사옵니다."

   춘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난해 있었던 동족상잔으로 말미암아 네가 부모를 잃었구나!"

   춘추는 고타소와 어딘지 모르게 닮은 비화에게 혈육 같은 정을 느꼈다. 춘추는 보면 볼수록 고타소를 닮은 비화를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너를 수양딸로 삼고자 하는데, 짐의 뜻을 따르겠느냐?"

   비화는 깜짝 놀란 얼굴로 춘추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성상께서 소녀를 어여쁘게 여겨주시오니 망극하기 이를 데 없사오나, 미천한 소녀가 어찌 성상의 수양딸이 될 수 있겠사옵니까?"

   "짐은 이 나라 만백성의 어버이거늘, 어찌 아니된단 말이냐?"

   비화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은 후 말했다.

   "소녀는 죄인의 몸이옵니다. 소녀가 지은 죄를 아뢰겠사오니, 사람을 물리쳐주소서."

   춘추는 좌우에 있는 시종들에게 명했다.

   "잠시 물러가 있거라."

   시종들이 물러나자, 비화는 눈물만 줄줄 흘리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모든 죄를 불문에 부칠 터이니, 말해보거라."

   비화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다가 갑자기 품속에서 비수를 빼어 들고는 춘추의 심장을 겨냥해 단박에 찔러버렸다. 은장도였다. 춘추가 날렵한 동작으로 피했지만, 비수의 끝이 오른팔을 스쳤다. 춘추가 비화의 손을 낚아채 뒤로 꺾자, 비화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왕의 처소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나자, 시종들이 놀라 우르르 몰려왔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시종장의 외침에 시위들이 몰려와 비화를 포박하였다. 시위들이 비화를 끌고 나가려는 순간, 춘추가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춘추가 노한 얼굴로 비화에게 물었다.

   "짐은 너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였거늘, 어찌 감히 짐을 암살하려 하였느냐?"

비화는 눈물을 글썽인 채 말했다.

   "소녀는 백제의 비화공주로 아바마마의 원한을 갚고자 하였을 뿐이옵니다."

   아, 업보로다! 춘추는 백제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마친 자신의 딸 고타소의 복수를 위해 그토록 원한을 품었건만, 그 한을 풀자 그로 인해 또 다른 원한을 잉태한 비극적 운명의 사슬이 더없이 가슴 아프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춘추는 고타소를 닮은 데다 혈육의 정을 느낀 비화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춘추는 시종에게 비화를 풀어주라 명을 내리려는 순간, 온몸이 마비된 듯하고 가슴에는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때서야 자신을 찌른 비수를 보니 칼 끝에 묻은 선혈이 독화살에 중독된 것처럼 검붉은 색이었다.

   '비수에 독이 묻어 있었구나!'

   독에 중독되었음을 깨달은 춘추는 가만히 자리에 앉으며 시종장에게 말했다.

   "태의를 부르거라."

   이어 호위시녀를 불러 비화를 별궁에 유폐시키도록 하였다.

   명을 받고 온 태의는 은장도 끝 날과 은장도에 찔린 춘추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비수에 극독이 묻어 있사옵니다."

   "능히 치료할 수 있겠느냐?"

   태의가 말을 못하자, 춘추가 다그쳤다.

   "어찌 대답하지 아니하는 것이냐?"

   태의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인이 모르는 독이라 독을 쓴 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듯하옵니다."

   춘추가 시종을 시켜 비화를 불렀다.

   "무슨 독을 쓴 것인지 알려줄 수 없겠느냐?"

   춘추가 비화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딸을 대하는 것 같았다. 비화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송구하오나, 극독이라는 것밖에 소녀도 모르옵니다."

   춘추는 비화의 말을 듣자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짐의 명줄이 다한 모양이구나. 여봐라. 이 여인을 방면하거라. 절대 해치면 아니되느니라."

   "어찌 소녀를......"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비화는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춘추는 회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너를 보니, 이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내 딸 고타소가 떠오르는구나! , 죽어도 너를 원망치 아니할 터이니, 백제로 돌아가거라."

   비화는 눈물을 쏟으며 춘추의 처소를 떠났다.

   비화가 떠난 지 한 시진이 지나, 춘추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직감한 춘추는 유신과 법민을 불렀다. 춘추는 유신을 보며 말했다.

   "짐의 명줄이 다한 듯하오. 우리가 나라의 고굉이 되어 삼한을 통일하기로 맹세한 지도 삼십여 년이 지났건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는구려. 유신공께서 나의 분신인 법민을 보필하여 내가 이루지 못한 삼한통일을 이루어주시오. 지금 천하의 형세를 보아하니, 어리석은 왕자 풍을 옹립한 백제의 잔적은 오래가지 못하여 사분오열할 듯하고, 고구려는 조정 실권자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 하나같이 무능하고 욕심이 많아 연개소문이 죽고 나면 필시 내분이 생길 것이오. 그때 우리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정벌에 나선다면, 능히 백제의 잔적과 고구려를 멸할 수 있을 것이오. 당은 일찍부터 우리 삼한을 통째로 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냈으니, 고구려를 멸한 후에는 필시 우리 신라를 침략해올 것이오. 신라는 소국이니 대국인 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고구려 백제 양국의 백성을 아국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의 백성들이 하나로 똘똘 뭉친다면 능히 삼한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오."

   유신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신, 목숨을 바쳐 성상의 뜻을 받들어 삼한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여 이 땅의 백성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춘추는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유신공께서 잘 아시다시피 내가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은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였으나 기실 백제의 의자왕에게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심에 절치부심했기 때문이오. 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치욕적인 나당동맹을 성사시킨 것이오.”

   춘추는 숨이 차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요동을 비롯한 고구려 영토는 치우천황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삼한의 땅으로, 우리 신라가 진정한 삼한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려면 마땅히 요동을 비롯한 고구려의 전토를 손에 넣어야 할 것이오. 당이 고구려를 멸하면 필시 고구려의 영토를 침탈하려 할 터이니, 국력을 기울여 삼한의 영토를 지켜야 할 것이오. 만약 삼한의 영토를 지키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대할 수 있겠소? …… 무도하기 그지없는 당나라 군사를 우리 삼한 땅에 끌어들인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간들 우리의 후손들을 어찌 대할 수 있겠소. 공께서 반드시 고구려의 영토를 정복하여 통일을 이루시어 삼한의 조상들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오. 부탁하오.”

   춘추는 유신의 손을 굳게 잡았다. 춘추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유신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했다.

   "소신의 목숨을 바쳐 삼한의 땅을 지켜내겠사옵니다."

   춘추가 유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공이 있으니, 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오."

   벌써 극독이 온몸에 퍼진 춘추는 몸에 경련이 일었고 혈색이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춘추는 유신의 손을 잡은 채 법민에게 말했다.

   "법민아, 유신공은 너의 외숙부일 뿐만 아니라 아비의 분신이기도 하다. 허니 아비가 세상을 떠나거든 유신공을 작은아비로 여기고 잘 모시도록 하거라. 이 아비의 뜻을 따르겠느냐?"

   "소신이 어찌 존귀하신 태자 전하의 작은아비가 될 수 있겠나이까? 소신의 목숨을 바쳐 태자 전하를 보필하겠사오니, 뜻을 거두어주소서."

   "공은 나의 분신인데, 어찌 아니된단 말씀이오. 군신으로 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기로서 청하는 것이니, 부디 나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시오."

   법민이 유신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절했다.

   "숙부님, 소질의 절을 받으소서."

   유신은 법민에게 맞절을 한 후 말했다.

   "삼가, 폐하와 태자 전하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이때 춘추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문희가 자식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처소 안으로 들어왔다. 춘추가 오열하는 문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왕후께서 나의 곁을 지켜주시니, 참으로 든든하오."

   "폐하......"

   문희는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춘추는 문희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왕후와 혼인한 것이오. 왕후와 수십 년을 살며 생사고락을 함께하였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오. 이 몸은 예기치 아니하게 하늘의 부름을 받아 이승을 먼저 떠나니, 부디 여생을 행복하게 사시기 바라오."

   말을 마친 춘추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폐하, 아니되옵니다.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 첩도 함께 데리고 가소서.”

   문희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춘추를 붙들고 울부짖다 혼절하였다.

    그 뒤로 쉰다섯 살이 되도록 춘추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보량새주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역모를 꾀했던 남편 칠숙을 잃고 자칫 함께 몰락할 수도 있었던 자신을 새주에 천거하여 알게 모르게 평생 방패막이가 되어준 춘추였다.

   열 살의 미소녀가 연정을 품고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한평생을 사모했고, 한평생을 그리워했으며, 또한 자신의 한 많은 삶을 끝까지 지켜준 춘추의 죽음에 보량은 뜨거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신유년 (661), 김춘추 태종 무열왕은 즉위 8년 만에 삼한통일의 꿈을 목전에 두고 한 많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7년 후,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동맹군은 마침내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는 꿈에 그리던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춘추가 우려했던 대로 두만강 이북과 압록강 이북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에 넘겨주게 된다. 현재 한반도 면적의 약 열 배에 이르는 광활한 우리 민족의 영토를 지금의 중국인 당나라에 넘겨준 꼴이 되고만 것이다.

   김춘추가 당제 이세민과 그의 아들 고종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약조한 대로 동부여(지금의 러시아 연해주)에서부터 광활한 요동(지금의 만주)과 요하(중국의 라오허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가 당나라에 귀속되어, 130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돌이킬 수 없는 중국의 영토로 자리매김 되고 말았다. 정녕 이를 두고 천추의 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춘추, 태종 무열왕. 그는 최초로 우리 민족 통일의 기틀을 다진 진정한 영웅인가? 외세를 끌어들인 돌이킬 수 없는 민족의 간웅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그는 분명 최초로 삼국통일의 초석을 이룬, 한 세상을 풍미했던 영웅이자, 선덕여왕과 김유신에 이르기까지 충절과 의리를 목숨보다 더 중시했던 인물이었고, 자식에 대한 사랑과 백성에 대한 사랑이 그 어떤 임금보다 애틋하여 눈물짓던 군주였다. 또한, 복수에 대한 일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집념의 인간이었으며, 지략과 권모술수, 냉철함과 따듯한 인간애, 용맹과 비굴함을 동시에 지녔던, 우리 역사상 거의 유일한 군주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오직 독자의 가슴 속에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