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왕총아 11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5. 4. 20. 08:00

    왕총아 11화 조정우 역사소설


   왕총아와 요지부는 질풍처럼 말을 몰아 나란히 산길을 내달렸다. 말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비좁은 산길에 이르자 요지부가 눈짓으로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서 앞장서 달려나갔다. 왕총아는 앞장서 달려가는 요지부를 바짝 뒤쫓아갔다. 조금이라도 요지부와 가까이 있고 싶은 것이 왕총아의 심정이었다. 요지부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외쳤다. 

   "좀 더 떨어지시오! 이러다 부딪치겠소!"

   왕총아는 자신의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걱정마세요! 이래봬도 내가 곡예꾼이라구요!"

   다소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아미를 떠난 후 어머니와 함께 천하를 유랑하며 곡예를 했던 왕총아가 자신의 과거를 밝힌 것이었다. 요지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래도 조금 떨어지시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법이오!"

   왕총아는 요지부의 말대로 조금 떨어져 뒤쫓아가면서 한마디 외쳤다. 

   "그리 걱정되면 곡예꾼인 내가 앞장서 가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요지부도 장난스럽게 외쳤다. 

   "이래봬도 내가 천리안인데, 내가 앞장서는 것이 적격이 아니겠소?"

   왕총아가 말로는 못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나도 천리안이라구요!"

   장난스러운 말투로 연신 외치는 왕총아는 티없이 순수하고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왕총아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요지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수줍어 고개를 숙인 왕총아는 문득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헌데, 내가 곡예꾼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그렇소. 그대가 밧줄 위에서 곡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소."

   왕총아는 자신이 밧줄 위에서 곡예하는 모습을 요지부가 보았다는 사실에 어쩐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랬군요."

   그때가 언제였는지 몹시 궁금해졌지만 왕총아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은 유지협을 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지 않은가! 왕총아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라고 막 외치려는 찰나에 요지부가 먼저 외쳤다. 

   "자세한 이야기는 유대협을 모시고 와서 합시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왕총아와 요지부는 이렇게 말을 주고 받으면서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비좁은 산길을 지나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달릴 정도가 되자 왕총아는 이전처럼 요지부의 옆으로 바짝 붙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중경의 산길에 이르렀을 때 먼 산길로부터 수만의 군마가 일으키는 희뿌연 흙먼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왕총아와 요지부는 약속이라도 한듯 거의 동시에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유지협 걱정에 잠시 할 말을 잃었던 그들 중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왕총아였다. 

    "족히 수만은 되어 보이는 것 같소! 유대협은 무사하시겠지요?"

    요지부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총아, 그대는 돌아가시오. 나는 유대협의 행방을 알아봐야겠소!"

    요지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총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대도 같이 돌아가요! 그대만 두고 갈 수는 없어요!"

   거대한 군마가 일으키는 희뿌연 흙먼지가 성큼성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요지부가 급히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숲에 몸을 숨기시오! 이 몸은 관아의 포졸이니 상관없소만, 그대는 관아에 쫓기는 몸이 아니오?"

    왕총아가 지지 않고 말했다. 

    "내, 유지협을 체포하라는 아미 장문인의 명을 받았는데, 관병과 마주친들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요지부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왕총아를 다그쳤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어찌 고집을 피우시오?"

    왕총아가 항변하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 

    "누가 고집을 피운단 말이예요? 혼자는 가지 않겠어요!"

   왕총아는 자신이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관아에 쫓기는 몸이니 관군을 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요지부 혼자 남겨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고 싶은 이 마음을 어찌 알랴! 

   "총아......"

   순간 요지부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왕총아처럼 빼어난 미녀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팔기군 장수들과 마주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대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소."

   요지부가 한마디 운을 떼며 왕총아를 설득하려는 찰나였다. 

   "꼼짝 마라!"

   십여 명의 관병들이 왕총아와 요지부를 향해 창을 겨누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군에 앞서 정찰을 나온 관병들이 서로 아웅다웅하던 왕총아와 요지부를 발견한 것이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왕총아에게 요지부가 급히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했다. 왕총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총아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자 요지부는 호패를 꺼내 높이들며 외쳤다. 

   "창을 거두시오! 이 몸은 양양 관아 소속 포졸이오!"

   왕총아와 요지부를 에워싼 관병들은 요지부가 꺼낸 호패를 보자 창을 거둬들였다. 관병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인 왕총아를 가리키며 요지부에게 물었다. 

   "이 여인은 누구요?"

   순간 요지부가 왕총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신분을 밝혀도 되겠느냐는 뜻이었다. 왕총아가 괜찮다는 듯 눈짓을 보내자 요지부가 말했다. 

   "이 여인은 아미의 제자로 나와 함께 백련교의 두목 유지협을 추격하고 있는 중이었소!"

   왕총아는 관병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더욱 숙인 채 부연했다. 

   "이 몸은 아미 장문인의 명을 받고 포졸 나리와 함께 백련교의 두목 유지협을 추격하고 있던 중이었소."

   어느새 겹겹이 호위병에 둘러싸인 화림이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었다. 화림을 알아본 요지부는 그 즉시 말에서 뛰어내린 후 왕총아에게도 말에서 뛰어내리라는 듯 손짓했다. 왕총아가 말에서 뛰어내리자 요지부는 입 모양만 움직여 의사를 전달했다. 

   '고개를 숙이고 계시오.'

   왕총아가 다시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화림이 이미 코앞에 이르렀다. 요지부가 화림의 앞으로 나가 인사를 올렸다.

   "소인, 양양 관아의 포졸 요지부가 대인께 인사올리나이다."

   화림은 요지부의 인사도 받지 않고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뒤쪽에 서 있는 왕총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 중경에 왔느냐?"

   요지부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인은 아미의 제자인 왕낭자와 유지협을 추격하다가 여기까지 이르렀나이다."

   화림은 백의의 요지부가 백련교도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 관병들과 무림인 중에도 백련교도들이 부지기수라 백의의 요지부와 왕총아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순간 화림의 시선이 왕총아를 향했다. 화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왕총아가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렸다. 

   "소녀, 아미의 제자 왕총아가 대인께 인사올리나이다."

   왕총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천상에서 하강한 선녀처럼 눈부시게 아리따운 자태는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었다. 명주실처럼 윤기나는 검은 머리와 백옥과도 같은 하얀 목덜미가 화림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자태가 백옥처럼 고운 것이 천하절색이 틀림없으리라!'

   화림은 넋이 나간 듯 말없이 왕총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화림의 시선이 계속 머물자 왕총아는 좌불안석이었다. 관아에 수배 중인 자신의 얼굴을 화림이 알아볼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이때 요지부가 침묵을 깨고 나섰다. 

   "왕낭자가 고향인 양양으로 오는 도중에 유지협과 마주쳐 격투 끝에 유지협을 놓친 후 관아에 고발하였고, 지현 나리의 명을 받은 소인과 함께 유지협을 추격하고 있는 중이었나이다."

   화림의 의심을 눈치챈 요지부가 말을 그럴듯하게 끼워맞춘 것이었다. 화림은 왕총아를 쳐다보느라 요지부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왕총아는 요지부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포졸 나리의 말이 맞나이다."

   왕총아는 고개를 끄덕이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백옥처럼 희고 고운 왕총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화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로다!'

   마치 칼로 조각한듯 이목구비가 너무도 또렷하여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왕총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화림과 장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왕총아는 온통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요지부의 눈치를 살폈지만, 요지부도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왕총아는 요지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몹시도 후회스러웠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지부가 나더라 몸을 숨기라 한 것이로구나!'

   왕총아가 몹시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숙이자 화림은 장졸들을 질책하듯 쏘아보며 크게 헛기침을 했다.

   "어험!" 

    장졸들은 왕총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별안간 화림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왕총아에게 물었다.

   "내 얼마전에 아미에 다녀왔거늘 왕낭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그때는 어디 있었는가?"

   심상치 않은 화림의 시선을 느낀 왕총아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말했다. 

   "소녀, 아미를 떠난지 반년이 지났나이다."

   화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왕낭자가 아미를 떠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이로군. 하기사, 이제 왕낭자의 나이면 시집갈 때가 된 것이지......"

   실로 난데없는 화림의 말에 왕총아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황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더니, 대체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인지......'

   왕총아는 화림과 시선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들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화림이 물었다. 

   "내, 지금 양양으로 갈 참인데, 왕낭자의 고향도 양양이니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나?"

    화림과 동행이라니! 왕총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송구하오나, 소녀, 유지협을 체포하라는 장문인의 명을 따라야 하오니......"

    화림은 왕총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유지협은 이미 이 화림의 손에 잡혔네. 무모하기 짝이 없게도 혈혈단신으로 송지청을 구하려다 잡혔다네."

   유지협이 잡혔다는 말에 왕총아와 요지부 둘 다 소스라칠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림은 그들의 놀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명을 내렸다. 

   "유지협과 송지청을 이리로 끌고 오라!"

   손목과 발목은 쇠사슬에, 온몸이 밧줄에 꽁꽁 묶인 유지협과 송지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림이 왕총아에게 백련교의 봉기를 진압한 자신의 공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요지부를 보자 유지협과 송지청은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왕총아는 요지부에게 살며시 눈짓을 보냈다. 충격으로 멍해진 왕총아로서는 요지부의 생각을 따르는 도리 밖에 없었다. 요지부가 양양으로 가자는 듯 고개를 양양으로 향하자 왕총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화림이 다그치듯 물었다. 

   "어찌할 것인가?"

   왕총아가 두손을 모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소녀, 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쥔 요지부를 보며 왕총아는 마음 속으로 결연히 다짐했다.

   '지부가 내 어머님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지부가 목숨을 걸고 유대협을 구하려 한다면 나 또한 목숨을 걸고 유대협을 구할 것이다! 천생연분을 만났으니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리라!'


[왕총아]를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링크 : 왕총아 네이버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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