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왕총아 13화 조정우 무협소설

조정우 2015. 5. 3. 08:00

    왕총아 13화 조정우 무협소설


  이 무렵 제림은 요지부와 제국모를 불러 유지협과 송지청을 구출할 방도를 논의하고 있었다. 

  "화림은 필시 하남성을 지나 북경으로 갈 터 너희들은 양양 백련교 고수들을 총동원하여 하남성으로 가서 유대협과 송대협을 구하거라. 이번 일에 백련교의 운명이 달렸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대협과 송대협을 구해야할 것이다."

  요지부가 대답했다. 

  "제 목숨을 걸고라도 기필코 유대협과 송대협을 구하겠나이다."

  제국모도 대답했다.

  "소질의 목숨을 걸고 유대협과 송대협을 구하겠나이다."

  제자와 조카의 목숨과 두 사형들의 목숨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는 듯 제림은 요지부와 제국모를 번갈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이 사부의 뜻은 그것이 아니다. 나의 사형들을 구하고 너희들이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구하라는 말이지, 너희들의 목숨을 버려 구하라는 말은 아니란 말이다. 알겠느냐?"

  요지부와 제국모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제림이 구체적인 작전을 말했다. 

 "하남성은 유대협의 근거지이니 필시 하남성의 형제들도 유대협과 송대협을 구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킬 것이다. 하남성의 형제들과 힘을 합쳐 기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러지 못한다면 화약과 진천뢰를 최대한 동원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알겠느냐?"

  요지부와 제국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제림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유대협과 송대협,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면 유대협을 구해야 한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요지부와 제국모가 떠나자, 제림이 결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부와 국모가 대사형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양양의 병력을 이끌고 거사를 일으키는 수 밖에......"

  제림의 대사형이자 백련교의 교수인 유지협을 구출하지 못한다면, 수뇌를 잃은 백련교는 분열될 수 밖에 없었다. 백련교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유지협을 구할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림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유지협을 구할 생각이었다. 

  "내 목숨과 대사형의 목숨을 바꿔서라도 백련교가 분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 수백만의 백련교 형제들이 일치단결하여 거사를 일으킨다면 썩어뻐진 만주족 왕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 문제일 터, 한족의 왕조를 재건하라는 사부님의 유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지현 나리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왕총아의 목소리였다. 제림은 왕총아가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림이 즉시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방으로 들어온 왕총아가 두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지현 나리께 혼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제림의 짐작대로였다. 왕총아는 말을 꺼내기가 수줍은 듯 귓볼이 붉어진 채로 말을 이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어머님께서......"

  이때 제림이 손사례를 치며 왕총아의 말을 가로막았다. 

  "혼담 이야기는 화림을 속이기 위해 그리 말한 것일 뿐이니, 더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오."

  제림의 이 한마디에 왕총아는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현 나리께 큰 폐를 끼친 듯하여 참으로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제림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화림을 속일 다른 방도를 생각하지 못하여 거짓으로 혼담이 성사된 것처럼 말하였으니, 오히려 왕낭자에게 미안할 따름이오."

  왕총아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매번 저희 모녀를 도와주시는 지현 나리의 크신 은혜에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릴지 모르겠사옵니다."

  제림이 마음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오."

  이때 왕총아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현 나리께서 유대협을 구출하고자 하신다면, 소녀 또한 동참하고자 하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소서."

  화림이 떠난 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관청의 분위기를 본 왕총아는 제림이 유지협을 구하라는 명을 내린 것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총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일은 백련교의 일이니 왕낭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오."

  왕총아가 간청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또한 백련교에 입교하겠사옵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소서."

  왕총아가 백련교에 입교하겠다니, 제림이 바라던 바였지만, 왕총아가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왕낭자가 본교에 입교하겠다면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본교의 중차대한 일에 참여토록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오."

  제림이 재차 거절하였음에도 왕총아는 순순히 물러설 기색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하오면 어찌해야 소녀가 이번 거사에 동참할 수 있겠사옵니까?"

  왕총아의 계속되는 간청에도 제림의 대답은 이전과 같았다. 

  "왕낭자가 이번 거사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소."

  왕총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제림은 침묵했다. 대체 뭐라 말해야 왕총아를 설득할 수 있을까. 왕총아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제림으로서는 결단코 왕총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제림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왕낭자가 백련교에 입교하겠다 하였으니, 이제 왕낭자도 백련교의 사람이 아니겠소? 나는 백련교의 교수로서 백련교에 가입한 여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오."

  왕총아가 말도 안된다는 듯 반박했다.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하옵니다. 소녀, 아미에서 십년이나 무예를 닦았는데, 양가집 여인을 다루듯 하시니 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사옵니다."

  제림이 나무라듯 말했다. 

  "본교에 입교하자마자 본교의 교수인 내 명을 어길 작정이오?"

  왕총아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소녀, 아직 백련교에 입교하지 아니하였사오니, 그 같은 명에 따르지 못하겠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소서."

  이 말을 마치자 왕총아는 두손을 모아 제림에게 인사하고 방문을 나섰다. 왕총아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제림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로서는 왕낭자의 뜻을 꺾을 수가 없구나. 지부에게 왕낭자의 안위를 맡기는 수 밖에......"


  왕총아는 관청 곳곳을 돌아다니며 요지부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왕총아는 요지부가 관청을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지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을까 관청을 두리번거리다 때마침 관청을 나서는 포졸에게 물었다. 

  "혹여 지현 나리의 조카되시는 분이 어디에 계신지 아시오?"

  요지부가 필시 제국모와 함께 있으리라는 생각에 물은 것이다. 여인의 수줍음이라 할까. 낯선 사내에게 요지부의 행방을 물으려 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포졸이 대답했다. 

  "지현 나리의 조카되시는 분이라면 제포졸이 아니오? 제포졸은 얼마전에 관청을 떠났소."

  왕총아는 급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도 하지 않고 곧장 말에 올라 관청을 나섰다. 지금쯤 요지부가 백련교도들과 함께 팔기군을 추격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왕총아는 인근 백성들에게 팔기군의 행적을 물었다.  

   "팔기군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하남성 방향으로 갔소."

   왕총아는 전속력으로 하남성을 향해 달려가며 중얼거렸다. 

   "지부, 부디 내가 당도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대 혼자 위험한 일을 하게 둘 수는 없소."

   이 무렵, 하남성에 이른 팔기군은 하남 총독 의금의 호위를 받으며 행군하고 있었다. 3만의 팔기군에 5만의 하남성의 관군, 도합 8만이나 되는 병력이었다. 화림은 행여라도 백련교도들이 백련교의 교수 유지협을 구출하러 반란을 일으킬까봐 하남성의 5만 관군을 동원하여 호위토록 지시한 것이었다. 이때 수백의 백련교도들을 산속에 매복시켜 유지협을 구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요지부와 제국모는 8만의 대군을 보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지부와 제국모가 할 말을 잃자 옆에 있던 고균덕이 푸념하듯 말했다. 

  "저들은 8만이나 우리는 수백에 불과하니, 우리만의 힘으론 승산이 없을 듯하오."

  올해로 스물여덟살인 고균덕은 제림의 제자들 중 용병술에 가장 능해 제림이 없을 때는 백련교도들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유지협을 구출하려는 것이라 제림의 수제자인 요지부가 백련교도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요지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남성의 백련교도들과 힘을 합쳐야만 이번 거사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오."

  요지부가 하남성에 전령을 보낸 백련교도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여지껏 하남성의 형제들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오?"

  "이곳 하남성이 유대협의 근거지임을 파악한 관군의 탄압으로 하남성의 형제들이 뿔뿔히 흩어진 터라 연통을 넣기가 쉽지 않은 듯하옵니다."

  하남성에는 수만에 이르는 백련교도들이 있었지만, 유지협이 서천에서 거사를 일으킨 직후부터 시작된 관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피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고균덕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백련교의 형제들이 아무리 일기당천의 용사들이라 해도 고작 삼백인데, 8만의 관군을 기습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소?"

  고균덕은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수백 배나 되는 적군을 기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요지부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남성의 형제들이 속히 와주기를 바랄 뿐이오."

  이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요지부는 하남성의 백련교도들이 전령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발굽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쳤다. 

  "총아!"

  다름 아닌 왕총아가 말을 몰아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지부는 그 즉시 왕총아를 향해 말에서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말발굽 소리 때문에 산속에 매복해 있는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지부의 신호를 본 왕총아는 조용히 말에서 내렸다.

왕총아는 요지부에게 다가와 나무라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부, 어찌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만 홀로 떠난 것이오?"

  요지부는 마치 동문서답하듯 잇다라 물었다. 

  "여긴 어찌 온 것이오? 대체 어떻게 찾아온 것이오?"

  왕총아가 서운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힘들게 찾아온 사람을 너무 냉대하시는군요."

  왕총아가 이곳까지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요지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거사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끼여들도록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요지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는 외부 사람이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오."

  왕총아는 추호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돌아가라니요?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을 내쫓는 법이 어디있나요?"

  왕총아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오직 요지부를 잃을까봐 두려울 뿐이었다. 요지부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거사는 백련교의 일이오. 그대는 백련교도가 아니질 않소? 그대를 믿지 못하는 형제들도 있을 터,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될 뿐이니 그냥 돌아가시오."

  왕총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 이미 그대의 사부께 백련교에 입교하겠다 밝혔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어요."

  요지부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고균덕이 끼어들었다. 

  "지부, 이 낭자는 그대와 무슨 관계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요지부가 당황하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 관계도 아니오."

  고균덕이 이번에는 왕총아를 보며 물었다. 

  "헌데 낭자는 어찌하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오."

  왕총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때 제국모가 나섰다. 

  "고교사, 예의를 갖추시오. 왕낭자는 사부님과 혼인하실 분이시오."

  직책이 교사인 고균덕을 양양의 백련교도들은 고교사라 불렀다. 고균덕은 제국모의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것은 고균덕 뿐만이 아니었다. 요지부와 왕총아가 모두 놀란 눈길로 제국모를 바라보았다. 아직 요지부와 왕총아의 관계를 잘 모르는 제국모는 왕총아가 자신의 숙부인 제림과 정말 혼담이 정해진 사이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왕총아가 해명하기도 전에 고균덕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낭자께서는 부디 소생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왕총아가 당황하는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직 혼담이 정해진 것은 아니예요."

  고균덕은 왕총아가 수줍어 부인하는 줄로만 알고 벌써부터 상전을 대하듯 공손히 말했다. 

  "혼담이야 어떻게 되든 나중 일이 아니겠소? 경솔히 낭자를 의심한 소생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왕총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요지부를 바라볼 뿐이었다. 요지부가 나서 해명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요지부가 끝없이 이어지는 관군의 행렬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유대협을 구하는 일이 시급하니 다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요지부의 한마디에 제국모와 고균덕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여 있는 모든 백련교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관군의 행렬로 향했다. 마치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왕총아의 출현으로 모두가 한눈을 판 셈이었다. 왕총아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백련교도들의 시선이 관군의 행렬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안도하며 생각했다. 

  '그래, 지금은 유대협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혼담에 대한 오해는 나중에 해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왕총아는 이곳 백련교도들이 자신과 제림이 혼담을 맺은 사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걸렸지만, 유지협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때 까마득히 이어지는 관군의 행렬을 바라보던 요지부가 절망하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약과 진천뢰를 모두 쓴다 해도 유대협을 구하는 일은 용이하지 아니할 듯하오."

  고균덕에게 하는 말이었다. 고균덕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국모를 향해 물었다.

  "국모의 생각은 어떤가?"

  제국모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고균덕의 시선이 왕총아를 향하고 있었다. 고균덕은 제국모에게 그들의 사부 제림의 아내가 될 왕총아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총아가 이 자리에 없다면, 죽기를 무릅쓰고라도 유지협을 구하려 시도라도 해보겠지만,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유지협 때문에 왕총아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고균덕의 뜻을 알아챈 제국모가 끝없이 이어지는 기병의 행렬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팔기군의 기병이 수만이니 설령 유대협을 구한다 해도 무사히 탈출하기가 어려울 듯하오."

  요지부, 제국모, 고균덕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거사를 중지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였다. 

  "사내 대장부들이 어찌 그리 나약한 소리만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왕총아가 나선 것이다. 

  "외부인인 제가 참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화약과 진천뢰를 잘 사용한다면 유대협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거사에 동참할 터이니 일단 시도는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왕총아의 말에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할 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지협을 구하려는 왕총아의 용기에 감격하여 말문이 막힌 것이다. 

  "화약과 진천뢰가 얼마나 있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왕총아가 요지부를 보며 물었다.

  "제가 외부인이라 알려줄 수 없나요?"

  요지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고균덕이 공손히 대답했다. 

  "왕낭자는 저희들의 사모님되실 분인데, 어찌 감히 숨기는 일이 있겠습니까?"

  고균덕의 말에 두 뺨이 새빨게진 왕총아가 당황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이라니요!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았다니까요."

  고균덕은 두 뺨이 새빨게진 채 당황하는 왕총아를 보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여하튼 왕낭자는 외부인이 아니니 우리가 보유한 화약과 진천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고균덕도 정확한 것은 모르는지 화약과 무기를 담당하는 백련교도에게 말했다. 

  "형제가 왕낭자께 상세히 말씀드리시오."

  백련교도가 대답했다. 

  "화약이 백근이고 진천뢰가 스무개 있습니다."

  왕총아가 댕기를 풀어 바람의 세기를 제어보더니 요지부, 제국모, 고균덕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바람이 제법 부는데다 화약과 진천뢰가 충분한듯하니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왕총아의 말에 백련교도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왕낭자의 말이 맞소. 되든 안되든 유대협을 구하기 위해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할 것이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8만에 이르는 관군의 위세에 주눅들어 거사를 일으킬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백련교도들의 마음을 왕총아의 말 한마디가 바꾸어 놓었던 것이다. 요지부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련교도들의 중론을 따라 거사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요지부가 고균덕에게 물었다. 

  "고교사의 뜻은 어떠하오?"

  고균덕이 요지부와 제국모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만약 거사가 실패한다면, 우리 형제들이 총력을 다해 왕낭자를 보호하면 될 것이오. 내 목숨을 걸고라도 왕낭자를 보호하겠소."

  요지부는 충직한 고균덕에게 사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로지 사부와 혼담을 맺었다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던져 사부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리라. 요지부는 고균덕과 제국모에게 진실을 밝힐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지부가 고균덕과 제국모에게 속삭였다. 

  "실은 왕낭자가 사부님과 혼담이 오간 것은 화림이 왕낭자에게 혼담을 넣어 사부님께서 화림이 단념케 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요."

  순간 제국모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사부이자 숙부가 천상의 선녀처럼 아리따운 왕총아와 혼인할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도 기뻤는데 그와 같은 사연이 있는 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실망하여 한숨을 내쉰 제국모는 뭔가가 뇌리에 떠오른듯 눈빛을 반짝이더니 속삭였다. 

  "혹여 왕낭자가 사부님을 좋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 우리가 나서서라도 사부님과 왕낭자를 맺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실로 예상치 못한 제국모의 말에 요지부는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균덕도 제국모의 말에 동의하듯 왕총아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저리도 아름답고 총명한 왕낭자가 우리 사모님이 된다면 좋지 않겠소?"

  순간 요지부는 머리가 멍해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부인 제림이 왕총아에게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양보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요지부가 간신히 대답했다.

  "더 없이 좋은 일이오만, 왕낭자의 생각이 어떨지 모르겠소......"

  요지부의 말끝이 흐려졌다. 요지부는 어쩌면 자신이 사부에게 왕총아를 양보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제국모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요지부에게 말했다. 

  "사부님이야 말로 천하의 호걸이니, 왕낭자도 사부님께서 성의를 보이시면 마음이 움직일 것이네."

  요지부, 제국모, 고균덕이 계속 귓속말로만 말하자 왕총아가 나섰다. 

  "세 분께서 조용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모양인데, 일단 유대협을 구하고 나서 이야기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지요."

  요지부, 제국모, 고균덕이 자신과 제림의 혼담을 두고 속삭이고 있다 짐작한 왕총아는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어 나선 것이다. 

  요지부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듯 눈짓하자 고균덕이 왕총아에게 말했다. 

  "왕낭자께서는 총명하시니, 유대협을 구할 좋은 방책이 있다면 말해보시오."

  왕총아가 고균덕이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제가 이 검으로 화림의 혼쭐을 빼놓을 터이니, 그 사이 형제들이 유대협을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지부가 안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좋은 계책이긴 하나 왕낭자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맡길 순 없소."

  왕총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고균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하튼 좋은 계책을 말씀해 주서셔 참으로 감사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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