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왕총아 12화 조정우 무협소설

조정우 2015. 4. 27. 08:00

  왕총아 12화 조정우 무협소설


  한편 제림은 하옥되어 있던 왕총아의 어머니 서천련을 관청으로 불러 심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서천련을 방면하고 싶었지만, 가능한 한 청나라 국법에 따라 처리하여 후환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천련은 심문받는 중간에 거듭 억울함을 토로했다. 

  "소인의 딸이 아미의 제자로, 하늘에 맹세코 저희 모녀는 백련교와 아무 상관이 없사온데, 터무니 없는 모함을 당한 것이옵니다."

  이어 서천련은 왕총아가 만주족 사내들을 봉으로 때린 이야기를 하며 두손을 모아 애원하며 말했다. 

  "저들이 곡예 공연으로 푼돈을 번 저희 모녀에게 피해를 보상하라며 터무니 없이 시비를 걸어 생긴 일이긴 하나, 사람을 때린 것이 죄라면 소인에게 죄를 물으시고, 부디 딸만은 죄를 묻지 마옵소서."

  제림이 딸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서천련을 위로하기 위해 말했다. 

  "이 몸이 부인 모녀의 무고함을 알거니와 조만간 부인을 방면할 참이니, 부인께서는 심려치 마시오."

  제림의 말에 서천련이 너무도 기뻐 손뼉을 치며 물었다.

  "정말이옵니까? 허면 소인의 딸도 사면되는 것이옵니까?"

  제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낭자는 죄가 없음을 이미 확인하였으니, 아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서천련은 여지껏 참았던 눈물을 봇물 터지듯 터뜨리고 말았다. 간신히 눈물을 진정시킨 서천련은 제림에게 큰 절을 했다. 

  "지현 나리께서 진실로 저희 모녀의 은공이시옵니다. 지현 나리의 크신 은혜, 평생토록 잊지 않고 반드시 결초보은하겠사옵니다."

  서천련의 절을 받자 제림은 몹시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왕낭자는 무림의 태두 아미의 제자인데, 부인께서 큰 절을 하시니 이 몸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천련이 여전히 고개를 땅으로 향한 채 말했다. 

  "소인의 못난 딸이 아미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지현 나리께서는 조정의 고관으로 지극히 존귀하신 분인데 나리께서 소인을 공대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제림은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의 어머니를 존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는 짝사랑일지도 사모하는 여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제림이 공손하게 말했다. 

  "왕낭자는 어린 나이에도 일신의 무공을 지니신 천하의 기재이니, 설령 아미에서 쫓겨났다 한들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것입니다."

  제림의 목소리가 어쩐지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천련은 문득 제림이 자신의 딸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천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가지 여쭈어봐도 실례가 안될지요."

  "무엇이든 말씀해 보십시오."

  "지현 나리께서는 혼인을 하셨는지요."

  제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서천련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혼인은......"

  사내가 어찌 이다지도 수줍어 할 수 있을까. 서천련은 제림이 자신의 딸에게 사모의 정을 품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제림이 비록 나이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여도 용모가 준수하고 범상치 않은 기품이 있는 것이 사윗감으로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제림은 그녀의 고향인 양양의 지현이 아닌가! 서천련은 제림이 천하에 둘도 없는 사윗감이라는 생각에 어렵사리 말을 꺼내었다. 

  "혹여 지현 나리께서 혼인하지 아니하셨다면, 소인의 딸을 배필로 삼으면 어떨지요."

  실로 난데없는 혼담에 제림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제림이 당황하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서천련은 겨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소인의 딸이 부족하다 여기지 아니하신다면, 청컨대 소인의 딸을 배필로 맞아주시기 바라나이다."

  제림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주저하다 생각나는대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 나이가 많은 지라......"

  서천련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현 나리께서는 앞길이 창창하신데 나이 차이가 대수겠사옵니까?" 

  선녀와도 같이 아리따운 왕낭자와 혼인이라니! 제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자가 사모하는 여인이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혼담을 거절할 생각으로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서천련은 제림이 체면치래 하느라 선뜻 혼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고 느긋한 마음으로 제림의 승락을 기다렸다. 제림이 뭔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숙부님! 큰 일 났사옵니다!"

  아까전에 급히 일행을 이끌고 왕총아와 요지부를 뒤쫓아갔던 제국모가 돌아온 것이다. 급히 관청에 들어선 제국모는 서천련을 보자 제림에게 바짝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유대협마저 팔기군에 붙잡혔다 하옵니다."

  제림이 탄식섞인 한숨을 내쉬더니 제국모의 귀에다 속삭여 물었다. 

  "지부와 왕낭자는 어찌 되었느냐?"

  "지금 화림과 함께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화림이 어째서 바로 북경으로 가지 않고 양양으로 오는 것일까. 마음이 다급해진 제림이 제국모에게 말했다. 

  "국모야, 서부인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거라."

  순간 제림이 제국모를 향해 비장한 눈빛을 번뜩였다. 여차하면 봉기를 일으키겠다는 뜻이리라. 제림의 뜻을 눈치챈 제국모가 올 것이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천련에게 말했다. 

  "소인을 따라오소서. 부인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사옵니다." 


  화림의 수만 대군과 함께 양양성으로 향하는 왕총아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무슨 꿍꿍이인지 화림은 왕총아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계속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왕낭자의 고향이 양양인가?"

  "그러하옵니다."

  "왕낭자의 부모도 양양에서 사는가?"

  "아버님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님은 양양에서 살고 계십니다."

  "허면 오늘 왕낭자의 어미를 만날 수 있는가?"

  실로 예상치 못한 화림의 질문에 왕총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용무로 소녀의 어머님을 만나려 하시는지요."

  화림은 왕총아의 어머니에게 혼담을 청할 참이었다. 한마디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격과 무엇이 다르랴! 자신이 천하의 권력을 거머쥔 화신의 아우인 만큼 왕총아의 어머니가 혼담을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화림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용무인지는 어른들의 일이니 왕낭자가 물을 일이 아니다. 그대의 어미에게 이 화림이 오늘 보자 한다고 알려달라."

  화림의 속셈을 눈치챈 왕총아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말했다. 

  "송구하오나, 실은 소녀도 어머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모르옵니다."

  화림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허면 양양의 지현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어머니가 방면된 줄 모르는 왕총아는 어쩌면 화림이 어머니를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만주족 사내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총아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본 화림이 물었다. 

  "어찌하여 고개를 젓는 것인가?"

  무의식중에 고개를 젓던 왕총아가 흠칫하며 대답했다. 

  "습관일 뿐이니, 마음쓰지 마소서."

  화림은 왕총아가 자신에게 조금의 호의도 없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왕낭자는 올해 나이가 몇인가?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된 듯한데......"

  올해로 열여섯인 왕총아는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여 열일곱여덟 살은 되어 보였다. 시집이라는 말에 왕총아는 귓볼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 

  "열여섯이옵니다."

  열여섯이라는 말에 화림은 희희락락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열여섯이라, 시집가기에 딱 알맞는 나이로군."

  이 말에 울컥한 왕총아는 시집가건 말건 상관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입술을 앙 다문 채 꾹 참았다. 바로 그 순간 요지부와 눈이 마주쳤다. 왕총아에게 자꾸 수작을 부리는 화림을 요지부는 못마땅한 기색을 애써 감춘 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왕총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를 짓는 왕총아의 희고 고운 얼굴은 얀 꽃이 활짝 피어오른듯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화림은 왕총아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은 줄로 알고 입이 헤벌어졌다. 

  "왕낭자, 그대의 미소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난데없는 화림의 말에 왕총아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화림도 자신이 경솔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인 왕총아에게 해명하듯 말했다. 

  "우리 만주족은 한족과는 달리 남녀간의 예의에 억매이지 않는 편이니, 내 말에 당황하였다면 양해하라."

  왕총아는 마음 같아서는 어디론가 말을 달려 화림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요지부만 남겨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왕총아는 마지못해 고개만 끄덕였다. 이러한 왕총아를 바라보며 화림은 생각했다.  

  '오늘 참으로 큰 경사가 덩달아 일어나는구나. 송지청과 유지협을 잇달아 사로잡은데다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왕낭자까지 만났으니 하늘이 이 화림에게 큰 복을 내리시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화림이 생각에 잠긴 사이 왕총아는 화림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말을 몰았다. 화림의 속내를 눈치챈 왕총아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지만, 화림은 왕총아가 수줍어 그런 것이라 여겨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때 요지부는 유지협, 송지청을 구출할 궁리를 하면서도 왕총아를 이따금 힐끗 쳐다보았다. 화림으로부터 되도록 멀어지려 애쓰는 왕총아가 몹시도 안쓰러워 보였지만, 요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왕총아를 돕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이 멀지 않은 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왕총아에게 큰 위안이 되리라. 게다가 이제는 왕총아가 화림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양양성에 이르렀을 무렵, 멀리서 한떼의 군마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제림이 양양의 관병을 이끌고 화림을 마중나온 것이다.

  "팔기군 대장께서 양양에 들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청나라 주력군인 팔기군의 대장인 화림은 형인 화신에 이어 청나라 조정의 2인자였다. 화림이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양양의 방비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이오."

  송지청과 유지협을 사로잡은 화림이 북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양양에 온 것은 왕총아의 어머니에게 혼담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화림의 속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제림으로서는 어째서 화림이 양양에 온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양양의 방비는 철통같으니 심려치 마소서."

  순간 제림의 시선이 왕총아와 마주쳤다. 왕총아는 눈짓으로 제림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묻고 있었다. 왕총아로서는 하옥된 어머니가 방면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림이 걱정 말라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왕총아는 너무도 기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왕총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화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왕낭자,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는가?"

   화림은 왕총아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요지부가 재빨리 나섰다.

   "왕낭자의 어머님이 계신 양양이 무탈하니 기뻐 그러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왕낭자는 외모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참으로 효녀이구나. 하늘이 이 화림에게 내려준 보물임에 틀림없다.'

   제림이 화림에게 말했다.

   "기왕에 양양에 오셨으니 관청에서 술이나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왕총아의 어머니를 만날 생각이었던 화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어 제림이 왕총아에게 말했다. 

   "왕낭자도 관청에 들리는 것이 어떻겠소?"

   왕총아는 관청에 어머니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제림의 인도로 관청의 객실에 들어선 화림이 제림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실은 내가 양양에 들린 것은 왕낭자에게 호의가 있어 혼담을 청하러 온 것이니, 왕낭자의 어미를 만나도록 주선해 주시오."

  제림은 난처했다. 혼담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 불보듯 뻔한데, 기고만장하기 짝이 없는 화림이 이제 막 방면된 왕총아의 어머니에게 앙심을 품지 않을까. 게다가 자신이 조정의 허락없이 왕총아의 어머니를 방면하였으니,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트집을 잡지 않을까.

제림이 말없이 머뭇거리자 화림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혹여 그대도 왕낭자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오?" 

  제림은 어떻게 해서든 화림이 왕총아의 어머니를 만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제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대인께 말씀드리기 참으로 송구하오나, 이미 왕낭자의 모친께서 게 혼담을 넣은 터이니, 아무쪼록 화대인께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림의 말에 화림의 안색이 굳어졌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 끝에 화림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한발 늦었군.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화림이 비록 화신의 아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백성들의 원망을 받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리 나쁜 위인은 아니었다. 화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혼담 이야기가 끝났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소."

  관청의 객실을 나서자 화림이 제림에게 말했다. 

  "왕낭자에게 인사를 하고 가겠소."

  이때 왕총아는 관청의 다른 방에서 어머니와 재회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국모가 두 모녀를 재회시켰던 것이다. 제림이 제국모를 불러 물었다. 

  "왕낭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제국모가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방에 계십니다."

  제림이 왕총아 모녀가 있는 방문 앞에서 기척을 넣으며 말했다. 

  "왕낭자, 화대인이 그대에게 인사를 하시고 싶어 하시니 잠시 나와주시겠소."

  얼굴이 눈물로 범벆되어 있던 왕총아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후 밖으로 나왔다. 왕총아를 보자 화림이 제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왕낭자가 제지현과 혼담이 오갔다 들었는데, 왕낭자는 이 혼담을 받아들일 작정이오?"

  화림의 물음에 왕총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난데없는 혼담이라니! 어언이 벙벙한 왕총아의 시선이 제림에게 향하자, 화림이 순순히 물러설 줄만 알았던 제림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총아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화림의 물음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방에 있던 서천련이 밖으로 나와 왕총아를 가리키며 화림에게 인사했다. 

  "소인이 이 소녀의 어미이올시다. 이미 소인의 딸이 지현 나리와의 혼담이 결정된 것이 사실이옵니다."

  혼담이 결정되었다는 서천련의 말에 제림, 왕총아, 요지부 모두 깜짝 놀랐다. 화림만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은 내, 왕낭자에게 호감이 있어 혼담을 넣으려 하였는데, 내가 한발 늦었구려."

  왕총아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림은 한숨을 내쉬고는 제림에게 말했다. 

  "제지현과 왕낭자의 혼례식 때 나를 초대해주면 반드시 오겠소."

  제림은 예의상 두손을 모아 감사를 표시했다. 

  "화대인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왕총아도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화대인의 호의에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치르지도 않을 혼례식에 초대해 달라니 당치 않은 소리였지만, 화림이 자신을 포기하기 만들기 위해서였다. 화림이 떠나자 서천련이 딸의 팔을 잡아 이끌어 방으로 데려가 말했다. 

  "총아야, 네가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감히 어미가 정한 혼담을 그르칠 생각이냐?"

  왕총아가 제림과 혼인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왕총아가 따지듯 말했다.   "대체 어쩌자고 소녀의 의사도 묻지 않고 어머님의 뜻대로 결정하신 것입니까?"

  서천련이 반박하듯 말했다. 

  "언제 네게 물어볼 기회나 있었느냐?"

  왕총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도저히 이 혼담을 받아들일 수 없나이다."

  서천련이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것이냐?"

  왕총아가 대답하자 않자 서천련이 다시 물었다. 

  "혹여 마음에 둔 사내라도 있는 것이냐?"

  왕총아가 수줍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그 사내를 많이 사랑하느냐?"

  "그러하옵니다."

  "그 사내를 잊을 수 없겠느냐?"

  "그러하옵니다."

 마침내 왕총아가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생명이 살아있는 한 요지부를 잊을 수 없었다. 서천련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말했다. 

 "어미가 이미 지현 나리께 혼담을 청했거늘 어미가 실없는 사람이 되어도 좋단 말이냐?"

 이때 왕총아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어머님, 소녀, 다른 것은 모두 어머님의 뜻을 따를 수 있으니, 이번만은 어머님의 뜻을 따를 수 없나이다. 부디 통촉하여 주소서."

 서천련은 딸에게 더이상 원하지 않는 혼인을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천련이 탄식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정녕 원치 않는다면, 강요하지는 않으마. 허나, 지현 나리 같은 분은 천하의 둘도 없는 남편감이니 부디 심사숙고하여 결정해다오."

  왕총아는 어머니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부디 소녀를 용서하소서. 백번이 아니라 천번, 만번을 심사숙고 한다 하여도 소녀의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것이옵니다."

  서천련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이 어미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내가 대체 누구인지나 알려주거라."

  서천련의 말에 안도한 왕총아는 눈물로 감사를 표시하며 말했다. 

  "곧 어머님께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왕총아]를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링크 : 왕총아 네이버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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