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왕총아 10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5. 3. 22. 08:00

   왕총아 10화 조정우 역사소설 


   요지부가 제림에게 하직인사를 하고서 말위에 뛰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왕총아가 어느새 나타나 손을 들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 왕총아의 외침에 놀란 요지부가 입을 열 새도 없이 왕총아가 순식간에 다가와 요지부가 쥐고 있는 말고삐를 잡아채며 말했다. 

   "유대협은 내게 맡기시오! 그대는......"

   왕총아는 눈으로 제림을 가리켰다. 유지협은 자신이 데려올테니 어머님을 구해달라는 뜻이리라. 요지부가 제림을 쳐다보자, 제림이 왕총아를 향해 말했다. 

   "왕낭자, 심려치 마시오. 그대의 어머니는 이 몸이 책임지고 구하겠소. 지금은 유대협의 일이 시급하니......" 

   제림이 눈짓하자 요지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왕총아에게 말했다. 

   "속히 유대협을 따라 잡아야 하오. 그만 말고삐를 놓아주시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왕총아가 잡아챈 말고삐를 놓자, 요지부가 말고삐를 당겨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내 곧 유대협을 모시고 돌아올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요지부가 말을 몰아 나가는 순간, 왕총아가 손을 들며 외쳤다. 

   "나도 곧 뒤따라 가겠소!" 

   왕총아가 외치는 소리에 요지부가 멈칫거리자, 제림이 호통치듯 외쳤다. 

   "빨리 가라! 유대협을 놓치면 어찌 하겠느냐?"

   사부의 독촉에 요지부는 왕총아에게 여기서 기다려달라는 듯 눈짓하더니 질풍처럼 말을 몰아 달려나갔다. 요지부가 떠나버리자 왕총아의 시선은 제림이 탄 말을 향하고 있었다. 제림의 말을 빌려 타 요지부를 뒤따를 생각이었지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시 주춤하던 왕총아가 재빨리 제림을 향해 다가가더니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말했다.  

   "송구하오나, 말을 빌려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나이다."

   왕총아가 다가오자 의아해하던 제림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하시오."

   천상의 선녀라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왕총아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에서 뛰어내린 제림이 말고삐를 건네주자마자 왕총아가 말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대협의 크신 은혜, 절대 잊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말을 남기고 왕총아는 말을 몰고 떠나버렸다. 제림은 긴머리를 흩날리며 사라져가는 왕총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래야 뗄 수가 없었다. 제림은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아!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로다! 허나, 내 어찌 제자가 마음을 둔 여인에게 마음을 둘 수 있단 말인가! 지부와 왕낭자가 서로 마음이 있는 듯 하니, 차라리 서둘러 지부와 왕낭자를 맺어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백련교의 교수 유송의 제자가 되어 지금껏 오직 무예와 병법을 연마하며 백련교의 부흥에 혼신을 다해온 제림이었다. 올해로 서른 다섯인 제림은 단 한번도 여인을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마음이 갔던 여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백련교를 부흥시켜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라는 사부의 유지를 이루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림이 천상의 선녀처럼 아리따운 왕총아를 떠울리며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만백성을 위한 새로운 왕조 창건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전에는 혼인하지 아니하리라 스스로에게 굳게 맹세하였건만 그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림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여인의 아름다움이란 한낱 헛 것에 불과한 것이다. 오로지 백성과 나라를 위한 대의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불멸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 어찌 한낱 헛 것에 불과한 것을 쫓기 위해 새 왕조 창업의 대의를 이루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맹세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여전히 제림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리따운 왕총아의 모습이 아른거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좀처럼 마음이 다잡히지 않았다. 제림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지부와 왕낭자를 맺어주어야 마음이 다잡아질 듯하구나."

   이때였다. 제림은 뭔가를 깜빡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치며 중얼거렸다. 

   "아뿔사! 화림의 병력이 지금 사천에서 양양으로 오고 있다 하였으니, 지부는 물론 왕낭자마저 위험해질 수 있겠구나!"

   이 무렵, 사천에서 백련교가 일으킨 봉기를 제압한 화신의 아우 화림이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양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혈혈단신으로 송지청을 구하겠다며 떠난 유지협을 데려 오는 것만 생각하다가 문득 요지부는 물론 왕총아마저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림은 재빨리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제국모가 멀리 떨어진 곳에 말을 타고 서 있었다. 제림은 급히 제국모에게 손짓했다. 제림이 다급히 손짓하자, 제국모가 쏜살처럼 말을 몰아 달려왔다. 

   "국모야, 지금 화신의 아우 화림이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양양으로 오고 있다. 송대협을구하겠다고 혈혈단신으로 떠난 유대협은 물론 지부와 왕낭자까지 위험하니, 속히 형제들을 인솔해 다녀오너라!"

  만인을 평등히 여기는 백련교에서는 사내는 형제, 여인은 자매라 불렀다. 모든 백성들은 조물주 앞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이 백련교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명을 따르겠나이다!"

   급히 하직인사를 하고서 일행을 인솔해 떠나는 제국모를 바라보며 제림은 자책하듯이 연신 이마를 치며 중얼거렸다. 

   "내가 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었단 말인가! 화림이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사실을 지부에게도 왕낭자에게도 일러주지 아니하다니! 국모가 지부와 왕낭자를 따라잡아야 할 터인데......"

   초조해진 제림은 발만 동동구르며 멀리 사라져가는 제국모의 일행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랴! 이랴!"

   왕총아는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뒤따라지만 요지부는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지부! 지부!"

  왕총아가 연신 목청껏 외쳐댔지만 메아리만 돌아올 뿐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왕총아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지. 지부가 보일 때까지 계속 전력을 다해 달리는 수 밖에!"

   얼마나 달렸을까. 까마득히 먼 산길에 누군가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요지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왕총아는 혼신을 다해 목청껏 외쳤다. 

   "지부!"

   이때 산길을 따라 질풍처럼 말을 달리던 요지부는 어디선가 희미하게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총아가 아닐까?'

   요지부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메아리가 왕총아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말을 세운 후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외쳤다. 

    "총아!"

   까마득히 먼 거리라 얼굴이 식별되지 않았지만, 요지부가 틀림없으리라 확신한 왕총아는 그대로 전속력으로 말을 몰며 다시 목청껏 외쳤다. 

   "지부!"

   멀리서 말을 몰아 달려오는 사람이 왕총아임을 확신한 요지부는 마침내 말머리를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외친 상대의 얼굴이 식별되지 않았지만, 왕총아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요지부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총아!"

   요지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자 왕총아도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지부!"

   서로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에 이르자 요지부가 나무라듯 외쳤다. 

   "기다려 달라 하지 않았소?"

   왕총아도 지지 않고 외쳤다. 

   "곧 뒤따라 가겠다 했잖아요!"

   이 말을 하고서 왕총아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의 눈물에 스스로 깜짝 놀란 왕총아는 마치 눈에 흙먼지라도 들어간 것처럼 연신 눈을 부벼댔다. 눈물을 그치려 해도 그쳐지지 않았다. 왕총아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요지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견우와 직녀 같은 천생연분을 찾았다는 생각에 감격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흐르고 만 것이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던 외로운 산길을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고 달린 끝에 가까스로 요지부를 만난 것이 더 없이 감동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내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은 이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어느새 요지부가 말을 몰아 다가와 눈물이 흐르는 눈을 부비는 왕총아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괜찮소? 눈에 흙이 들어간 것이오?"

   어쩐지 수줍어 고개를 숙인 왕총아는 말없이 눈물을 닦고는 손수건을 쥔 채 침묵했다. 손수건을 돌려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문득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에 요지부가 자신의 댕기를 마차 삯으로 달라고 해서 가진 기억이 떠오른 왕총아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지부, 일전에 그대가 내 댕기를 마차 삯으로 가져갔으니, 이 손수건은 댕기 값으로 가지겠소."

   일각일초를 다투는 이때 참으로 난데없는 소리가 아닌가! 요지부는 어의없다는 듯 실소하며 다급히 말했다. 

   "허허, 유대협만 찾으면 그깟 손수건이 대수겠소. 어서 유대협을 쫓아갑시다!" 

   한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한가지는 잊기 마련이었다. 왕총아는 깜빡 했다는 듯 '아차!'하며 손수건을 쥔 채 재빨리 말고삐를 거머쥐었다. 

   "이랴!"

   요지부가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려나가자 왕총아도 급히 말을 몰아 바짝 뒤따라갔다. 


   이 시각 유지협은 미친듯이 말을 몰아 중경(호북과 사천 중간 지역)의 산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이때 멀리서 거대한 흙먼지가 희뿌옇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규모의 군마가 일으키는 흙먼지가 틀림없었다. 유지협이 경악하며 혼잣말로 외쳤다. 

   "팔기군이다!"

   어림잡아도 수천 수만에 이르는 기병이 맨 앞렬부터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기병을 보유한 군대는 청나라가 자랑하는 정병 팔기군 뿐이었다. 유지협은 나뭇가지를 꺾어 말의 입을 막은 후 나무가 빼곡한 숲에 숨어 팔기군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맨 앞렬에 용이 그려진 정황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3만에 이르는 이들의 군대는 양황기 정백기와 함께 황제의 직속 부대 삼상기 중 하나인 정황기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장수가 호위병에 둘러싸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청나라 조정을 한손에 거머쥔 군기대신 화신의 아우 화림이었다. 만주족 8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팔기군은 황제의 직속 부대 삼상기 3군과 제후의 관할 부대 하오기 5군으로 나누어졌는데, 화신 하오기에 속한 정홍기 출신이었음에도 건륭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삼상기는 물론 하오기의 병권까지 거머쥐고 있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건륭제 친위대의 교위(정9품의 하급 무관)가 되어 온갖 아첨으로 건륭제의 신임을 얻어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군기대신에 오른 후, 건륭제의 막내딸 효공 공주와 자신의 맏아들 풍신은덕을 혼인시킨 화신의 권력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조정의 으뜸인 군기대신의 자리에 오른지도 어느덧 17년, 그간 화신은 대신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백성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청나라의 연간 예산의 십수년 치인 8억 냥의 재산을 모은 희대의 탐관오리였다. 건륭제의 총애를 입은 화신은 동생 화림과 아들 풍신은덕을 각각 팔기군 대장과 어전대신에 앉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절대 권력을 거머쥐고 있었다. 이러한 화신의 오른팔 격인 화림을 보자 유지협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화림! 마음 같아서는 저 놈을 당장......'

   유지협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분기를 억누르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참아야 한다! 지금은 송사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송사제는 필시 저들의 손에 잡혀 있을 것이다!'

   유지협은 숨을 죽인 채 정황기를 펄럭이며 진군하는 정황기 팔기군의 행렬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에 손목과 발목이 쇠사슬에 감긴 채 허리를 여러 겹으로 묶은 밧줄에 질질 끌려가는 피투성이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사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유지협은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송사제......"

   머리부터 다리까지 온통 피투성이인 사내는 다름 아닌 송지청이었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송지청의 몰골을 보자 유지협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낸 것이었다. 송지청은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대사형......"

   송지청은 깜짝 놀라 유지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때 송지청의 옆에 서 있던 병사가 송지청의 시선을 쫓다가 유지협을 발견하고서 외쳤다. 

   "여기 매복한 놈이 있다!"

   송지청은 의도하지 않게 유지협이 숨어 있는 곳을 가르쳐주고 만 셈이 되었던 것이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외쳐대기 시작했다. 

   "잡아라!"
   사방에서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유지협은 '아뿔사'하며 이마를 쳤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유지협은 
재빨리 말위에 올라타서 그대로 말을 몰아 송지청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목숨을 던져 송지청을 구하려 했던 유지협이 아니던가! 도망칠 줄 알았던 유지협이 오히려 미친듯이 산길로 말을 내달리자 유지협을 향해 달려오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약속이나 한듯 모두 비켜서고 말았다. 바로 그때 유지협이 손을 뻗어 송지청을 낚아챘다. 유지협은 송지청을 옆구리에 끼운 채 병사들 사이를 뚫고 산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숲속으로 말을 달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지협과 송지청을 태운 말이 숲속으로 내달리고 나서 화림의 명이 떨어졌다. 

   "화살을 쏴라! 놓치면 안된다!"

   대장 화림의 명이 떨어지자, 송지청을 옆구리에 끼운 채 말을 달리는 유지협을 향해 사방에서 비오듯 화살이 쏟아졌다. 

   "히히힝!"

   유지협과 송지청을 태운 말이 처참하게 울부짓으며 쓰러졌다. 화살 하나가 말의 몸통에 정통으로 박히고 만 것이다. 말과 함께 쓰러진 유지협은 재빨리 송지청을 안아 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양손과 양발이 쇠사슬에 묶인 송지청은 걸을 수는 있어도 달릴 수는 없기에 유지협이 송지청을 들고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송지청이 외쳤다. 

   "대사형! 소제를 두고 가시오! 부탁이오! 대사형마저 잡힌다면 어찌하겠소?"

   송지청의 목소리는 간절했지만, 유지협은 확고부동이었다. 

    "송사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으세! 내 어찌 사제를 버려두고 혼자 살 수 있겠는가?"

    유지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지청이 다급히 말했다. 

    "사부님의 유지는 어찌하시려고요? 대사형이 살아야 사부님의 유지를 이룰 수 있지 않겠소?"

    유지협은 사력을 다해 달리느라 짧게 대답했다. 

    "제림이 있지 않은가? 사부님의 유지는 제림이 이룰걸세!"

    이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팔기군이 말을 몰아 바짝 뒤쫓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유지협은 더욱 속도를 높여 달리려했으나, 왕총아에게 말을 빼앗길 때 다친 한쪽 발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친 발이 힘이 빠져 절뚝거리느라 주춤거리는 사이에 팔기군의 추격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화살을 쏴라!"

   화살을 쏘라는 외침과 함께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앞쪽에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사방이 포위된 것이었다. 

    "제기랄!"

   유지협은 검집에 손을 가져갔지만 검을 뽑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혼자라면 죽기 살기로 싸워 포위망을 뚫는 시도라도 해보련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지청을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때 사방에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자 유지협이 검을 멀리 내던지고서 손을 들며 외쳤다. 

   "화살을 쏘지 마라! 항복하겠다!"

   송지청이 팔기군을 향해 손을 들며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는 유지협을 향해 소리쳤다. 

   "대사형, 지금이라도 소제를 두고 혼자 가시오!"

   유지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이젠 너무 늦었네."

   송지청이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 

   "아! 이런......"

   그때 유지협이 송지청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 둘이 모두 붙잡혔으니, 제림이 우릴 구하러 올지 모르겠네."

   기실, 유지협이 혈혈단신으로 관병에 사로잡힌 송지청을 구하려 했던 것은 설령 실패하여 붙잡힌다 해도 제림이 구해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백련교의 교수이자, 대사형인 자신이 붙잡혀가는 것을 제림이 수수방관하지 않으리라 기대했던 것이었다. 

   "꼼짝마라!"

   순식간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유지협과 송지청을 꽁꽁 묶었다. 어느새 화림이 말을 몰고 다가와 거만한 목소리로 유지협에게 물었다. 

   "네 놈이 백련교의 두목 유지협이냐?"

   "그렇다!"

   유지협의 목소리는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화림이 어의없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네 놈이 머리가 돈 것이냐? 병력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수만의 팔기군을 따돌리고 네 사제를 구할 수 있을성 싶더냐?"

   "내 말이 화살을 맞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 유지협이 바꿔 탄 요지부의 말은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천하의 명마였다. 만약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지만 않았더라면 송지청을 구해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유지협의 말을 듣자 화림은 자칫 송지청과 유지협 둘 다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지만, 의식적으로 말도 안된다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 

    "흥, 붙잡힌 주제에 그따위 망발을 하는가!"

    유지협에게 호통친 후 화림이 장수들과 병사들을 불러 엄히 말했다.

    "여봐라! 저 놈들이 또 다시 도망칠지 모르니, 정신차리고 철저히 지켜라! 저 놈들이 도주하는 날에는 너희들 모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저의 신작 소설 [왕총아] 북팔 웹소설 '떠오르는 작가'에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왕총아 : 북팔 웹소설 연재 링크 ← 클릭

신재하 문예창작교실 (문창과, 작가지망 수강생 모집, 분당 미금역선릉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