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집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2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1.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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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2화 조정우 역사소설


   사다함의 오른팔에 난 검흔을 살펴보던 유지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사형, 아무래도 사부님께 보여야겠어요. 당장 사부님께 가요. 금창약을 바르면 좀 낫지 않겠어요?"

   다행히 사다함의 오른팔에 그어진 검흔은 깊지 않았지만, 유지는 흉터가 남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사다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의 뜻이 그러시다면...... 그리하지요."

   그때 미실이 뭔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소녀의 이모이신 황후마마께 아뢰어 황궁의 금창약을 가져올까요?"

   유지가 미실을 쏘아보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필요없을 듯하오. 황궁의 금창약이 아무리 효험하다 한들, 우리 사부님의 금창약만 못할 것이오."

   그리고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뭐, 황궁의 금창약이 효험하다면, 서둘러 가져오시던지요. 검흔이 굳으면 신선의 금창약이 있다 한들 소용없으니까요."

   유지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미실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사다함이 유지와 미실을 번갈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매, 누이,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 장부의 몸에 검흔이 좀 난들, 뭐 그리 큰 일이 되겠소?"

  사다함이 괜찮다는 듯 오른팔을 살며시 흔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유지와 미실도 사다함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유지가 냉랑한 목소리로 미실에게 말했다. 

   "그대도 사부님을 뵈러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오?"

   미실이 눈으로 사다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녀에게는 친오라비와 같은 분입니다."

   유지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외부인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아니하시니, 그대는 황궁의 금창약이나 가져오시는 것이 좋을 듯하오."

   "소녀는 외부인이 아니니, 오라버니의 사부님께서도 반겨주시리라 믿소."

   유지가 미실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손을 들어 만류하는 사다함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사다함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유지에게 말했다. 

   "사부님의 금창약이 천하제일이거늘, 황궁의 금창약은 어디에 쓰겠소? 게다가 험한 산중에 누이 혼자 둘 수는 없는 일이니, 누이도 함께 가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리하지요."

   유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실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힐끗 유지를 쳐다보았다. 

   '유지 낭자가 나를 질투하고 있구나!'

   유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문득 유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운 미실을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실 낭주의 마음도 편치 않을 터인데, 내가 왜 이리 모질게 구는 것일까?'

   자신의 미모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던 유지는 아침햇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실의 미모에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휩싸였던 것이다.

   사다함이 산등성이 아래 쪽에 보이는 초가집을 가리키며 미실에게 말했다.

   "저기가 사부님의 거처다. 함께 가자꾸나."

   미실은 유지를 힐끗 쳐다본 후 사다함의 곁에 바짝 붙어 나란히 걸어갔다. 유지가 뒤따라 걸어가며 속으로 냉소했다. 

   '흥, 그런다고 내가 질투할 줄 아느냐?'

    사다함의 곁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미실을 보지 않으려고 유지는 고개를 돌린 채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간 걸어가던 유지가 사다함과 미실 쪽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미실이 마치 유지를 약올리듯 사다함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사다함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다 큰 처자가 어찌 예의도 모르느냐? 유지 낭자가 우리를 흉보겠다."

   사다함이 미실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는 유지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내 누이가 철이 없어 그런 것이니, 아무쪼록 양해하여 주시오."

   유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이가 오라버니의 손을 잡은 것이 무슨 흉이 되겠소?" 나는 괜찮으니 마음쓰지 마시오."

   마음 같아서는 '누이가 참으로 철이 없구려.'하고 미실을 나무라고 싶었지만,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점잖게 말한 것이다. 

   사다함이 다시 앞서 걸어가자 미실이 얼른 뒤따라 걸어갔다. 앞장서가는 사다함과 미실을 바라보며 걸어가던 유지는 문득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사다함과 미실이 마치 한쌍의 원앙새처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는 곱게 차려 입은 하얀 삼베옷이 지금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사다함 사형은 대원신통이거늘, 평민인 내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겠는가!'

   규율에 억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유지가 화랑도에 유화로 입문한 것은 오로지 사다함과 혼인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골품제라는 신분의 굴레로 평민인 유지가 대원신통인 사다함의 정부인은 될 수 없었지만, 유화가 되면 화랑인 사다함의 첩이 될 수 있었다. 그 희망을 품고 살아왔건만, 지금 눈앞에 있는 미실은 자신이 경쟁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천상의 선녀처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실을 어느 사내가 마다하랴! 

   어느새 초가집에 이르렀다. 사다함이 인기척을 알리려는 찰나, 초가집 안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일로 손님을 데려온 것이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사내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세 사람이 온 줄 알아차린 것이다. 사내가 싸리로 엮은 울타리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미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스물다섯 쯤 되었을까. 사다함의 사부 문노가 이토록 젊을 줄이야! 미실이 듣기로 사다함이 문노를 사부로 모신 것만 5년으로 사다함이 처음 사부로 모셨을 때 문노는 약관의 나이였으리라. 수려한 용모의 미남자인 문노는 덕이 높은 선비와도 같은 풍모였다. 이러한 사람이 신라 최고의 검객이라니, 미실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다함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제자의 종질녀이옵니다."

   문노는 두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소."

   문노가 비록 사다함의 사부였지만, 가야 유민으로 골품이 없는 문노로서는 대원신통인 미실에게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노가 깍듯이 예를 갖추자, 미실이 황망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소녀는 사다함 오라버니의 친누이와도 같으니, 부디 말씀을 낮추소서."

  문노는 이미 미실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 했다. 

  "낭주는 세종전군의 부인이 아니오? 지극히 높으신 낭주께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오."

  미실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도 전에 알아차린 문노의 혜안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소녀의 신분을 어찌 아셨는지, 여쭈어도 될지요." 

  문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삼한땅에 낭주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그대 이외에 누가 있겠소?"

  문노는 고금에 둘도 없을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실을 보자 누구인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문노의 말에 미실이 부끄러워 두 뺨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때였다. 유지가 눈으로 사다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부님, 사다함 사형이 소녀의 검에 베였사오니, 상처를 살펴주소서."

  문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실에게 말했다. 

  "누추한 집이라 낭주를 집안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안에서 제자의 상처를 살펴볼 터이니, 낭주는 잠시 기다려 주시오."

   미실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문노가 초가집 울타리를 넘어가자 사다함과 유지가 따라 들어갔다. 안방에서 문노가 사다함의 오른팔에 난 검흔을 살펴보더니 엄숙한 얼굴로 유지에게 물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냐?"

  유지는 강직한 성격이라 미실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유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사다함의 오른팔을 베기 전에 검을 멈추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사다함이 다급히 말했다. 

   "사부님, 유지 낭자는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 제자가 모든 책임을 지겠나이다."

   문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검흔은 금창약을 발라도 지워지지 않을 터, 금진 낭주가 보면 뭐라 말씀하실지 모르겠구나."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은 다혈질의 성격으로 아들의 오른팔에 난 검흔을 보면 필시 책임을 추궁하러 문노를 찾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사다함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나이다."

   유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사부님, 모든 것이 소녀의 잘못이니, 마땅히 소녀가 책임지겠나이다."

   문노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유지에게 말했다.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사부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너는 모르는 일로 하거라."

   "하오나......"

   유지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누군가 방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미실이었다.

   "모든 일은 소녀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오니, 소녀가 책임지겠사옵니다."

   사다함이 유지의 검에 베인 과정을 미실에게 듣자, 문노가 유지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내 제자로구나.'

   난데없이 소리를 질러 사다함을 유지의 검에 베이게 만든 미실의 잘못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유지의 강직함이 사부로서 자못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사다함, 미실과 함께 문노의 처소를 나온 유지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천하에 둘도 없는 미남자 사다함의 오른팔에 자신의 검에 베인 검흔이 남게 된다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다함이 미실을 집에 바래다 주기 위해 떠나자, 유지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내 팔이 검에 베였으면 좋으련만...... 내 목숨보다 사모하는 사다함 사형의 오른팔에 지워지지 않는 검흔을 남겼으니, 이를 어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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