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집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5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2. 9. 06:00

 기황후 인터파크 판매처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5화 조정우 역사소설


   사다함과 미실이 나란히 산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다함과 미실은 문득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약속이나 한듯 서로 몇 발짝 떨어졌다. 바로 그때,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실 누님!"

   비보랑이었다. 미실이 궁에서 쫓겨난 사실을 모르는 비보랑으로서는 미실이 사다함과 함께 있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보랑의 질문은 사다함과 미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다함 형님, 유지 낭자의 일이 해결된 것이옵니까?"

   사다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다 끝난 일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비보랑은 그제야 근심어린 눈으로 미실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실 누님, 어찌 궁에 아니 계시고, 여기 계신 것이옵니까?"

   미실이 뾰르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못 들었느냐? 이리도 누이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야......"

   미실의 어머니 묘도와 비보랑의 아버지 비대전군이 이복남매인데다, 미실의 아버지미진부의 누이동생 실보가 비보랑의 어머니로, 겹사촌인 미실과 비보랑은 어려서부터 친남매처럼 지내왔다. 친동생 같은 비보랑이 자신이 궁에서 쫓겨난 사실조차 모르니, 미실로서는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뾰루퉁한 미실의 모습에 비보랑이 난감해하자, 사다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실 누이가 궁에서 쫓겨났다......"

   순간 비보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어찌 그런 일이......"

   미실이 비보랑과 사다함을 번갈아 바라보며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비보랑 아우도, 사다함 오라버니도, 다들 이 누이의 일에 너무 무심하군요."

   비보랑이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실 누님, 소제가 폐하께 아뢰어 누님께서 입궁하실 수 있도록 주선하겠사옵니다. 심려치 마소서."

    비보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실의 입에서 날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다. 결단코 다시는 입궁하지 아니할 것이다. 비보랑 아우도 이 누이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는구나!"

   2년 전이었던가. 미실이 비보랑에게 사다함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비보랑은 미실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미실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고 있었다. 사내란 여인의 마음을 이리도 모르는 것일까. 미실이 답답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는 순간, 뭔가 뇌리에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사다함 오라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사부님을 뵈러 가야지요."

   사다함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실이 비보랑을 보며 말했다. 

   "비보랑 아우도 우리와 함께 가겠느냐?" 

   비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 낭자의 일이 해결되었다니, 이 아우도 사부님을 뵈러 가겠사옵니다."


   '魂劍一體'(혼검일체)

   문노는 붓을 든 채 자신이 방금 쓴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혼과 검이 일체가 되었다면 어찌 유지가 사다함의 팔을 베었겠는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검을 잡은 이래 지난 20여 년을 오로지 검술 연마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문노로서는 유지가 실수로 사다함의 팔을 벤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미실이 갑자기 큰 소리를 쳤다 한들 검술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오른 유지가 그와같은 실수를 한 것은 필시 다른 데 정신을 판 것이리라. 물론 당연히 막아야 했을 유지의 검을 막지 못한 사다함의 잘못이 컸지만, 평소의 유지라면 충분히 검을 멈출 수 있었다.

   이때 문 밖에서 유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유지이옵니다."  

    유지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베어있음을 문노는 직감할 수 있었다. 

    "들어오거라."

    "사부님......"

    유지가 고개를 숙여 문노에게 인사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지의 울음이 잦아들자 문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찌 우는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유지는 한마디만 내뱉은 채 흐느껴 울 뿐이었다. 문노는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 문화공주가 세상을 떠난 이래, 가야의 핏줄인 문노에게 유지는 친자식과 같은 제자였다. 유지가 하염없이 흐느끼는 가운데, 문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부에게 못할 말이 뭬 있겠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그제야 울음을 그친 유지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제자는 오직 한마음으로 사다함 사형을 사모해왔건만...... 사다함 사형은 미실 낭주를 마음에 둔 듯하여......"

   가슴이 복받친 유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음보를 터뜨렸다. 문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녀간의 사사로운 정은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거늘, 마음을 다잡지 못하겠느냐?"

   "송구하옵니다......"

   이 한마디를 다시 내뱉은 유지는 연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문노는 눈을 감은 채 회상에 잠겼다. 문노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부하 병사의 어린 딸 유지를 데려온 것이 8년 전이었다. 천애고아인 유지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문노는 지난 8년간 유지를 친딸처럼 대해왔다. 그러한 유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문노 역시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문노의 입에서 흐느끼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리자 유지는 깜짝 놀라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외쳤다. 

   "사부님!" 

   생전 처음으로 제자에게 눈물을 보인 문노는 겸연쩍어 껄껄 웃었다. 

   "어찌 놀라느냐? 이 사부는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 것이냐?"

   사부가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다니! 가슴이 뭉클해진 유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소녀의 철없음과 버릇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문노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여인이 눈물이 흘리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느냐? 울고 싶거든 마음껏 눈물을 흘리거라."

   "사부님......"

   마치 부모 같은 사부의 사랑에 감격한 유지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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