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집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3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1. 25. 06:00

 기황후 교보문고 판매처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3화 조정우 역사소설 


   "아니, 이건 칼자국이 아니냐? 대체 어찌된 일이냐?"

   바로 다음날 아침에 사다함이 자신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는 순간, 그의 오른팔에 길게 그어진 검흔이 금진의 눈에 뜨이고 만 것이다. 사다함은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금진이 사다함의 오른 손목을 잡아채 검흔 자국을 가리키며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누가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소자가 실수로 그만...... 검에 베인 것이옵니다. 살짝 베인 것 뿐이니, 마음쓰지 마소서."

    순간 금진의 뇌리에 사다함의 사매 유지가 떠올랐다. 문노의 수제자로 화랑도에서 적수가 없는 사다함의 몸에 유지가 아니면 누가 검흔 자극을 낼 수 있으랴! 

   금진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미소년인 아들의 오른팔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검흔 자국이 났다는 생각에 울컥 분노가 솟구쳤다. 

    "유지, 그 천한 계집이 내 귀한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내 이것을, 당장......"

   사다함은 분노에 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려는 금진을 붙잡더니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어머님! 진실로 유지 사매에겐 아무 잘못이 없나이다. 소자가 검술 대련 중 실수하여 베인 것이옵니다. 부디, 고정하소서!"

   사다함의 애원에도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금진의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모님!" 

   어느새 미실이 집안에 들어왔을까. 미실이 금진에게 인사하고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사다함의 바로 옆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이모님, 모든 것이 소녀의 잘못이옵니다. 사다함 오라버니와 유지 낭자가 검술 대련을 하는 중, 소녀가 큰소리로 오라버니를 부르는 바람에 생긴 일이옵니다. 부디, 소녀를 탓하시옵고, 유지 낭자를 탓하지 마소서!"

   금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녀시절, 화랑도의 원화(화랑도 초기엔 진골이나 대원신통 가문의 여인을 화랑도의 수장으로 뽑았다)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금진은 검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미실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지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금진이 양손을 내밀어 사다함과 미실을 일으켰다. 금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미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네가 여긴 어쩐 일로 왔느냐?"

   기실, 미실은 오래전부터 사다함을 마음속 깊이 사모해 왔었다. 미실을 왕족과 혼인시키려는 외할머니 옥진의 뜻에 따라 진흥왕의 아우 세종 전군과 혼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미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금진으로서는 궁에서 쫓겨난 미실이 혹여 사다함에게 시집오겠다고 떼를 쓸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미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제 사다함 오라버니께서 저로 인해 다친 일을 이모님께 말씀드리러 온 것이옵니다."

   금진이 촌수로는 미실의 종할머니이지만, 미실은 자신의 어머니 묘도와 비슷한 또래인 금진을 이모라 불렀다. 금진이 냉소하며 말했다. 

    "어젠 뭘하고 왜 이제 왔느냐? 그런 일이 있으면 즉시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 알았다면 황후마마께 황궁의 금창약을 보내달라 하였을 터인데......"

    "송구하옵니다......"

   금진은 고개를 숙인 미실을 외면한 채 사다함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천하의 미남자인 아들의 오른팔에 길게 그어진 검흔이 금진의 가슴을 찢어질 듯이 아프게 만들었다. 

금진은 여인처럼 희고 고운 사다함의 팔에 생긴 검흔 부위를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만져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심하거라. 당분간 검 따위는 만지지도 말란 말이다. 알겠느냐?"

   사다함에게 검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사다함이 검을 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금진의 뜻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다함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자, 어머님의 뜻을 따를 터이니, 근심치 마소서."

   금진은 새삼 울화가 치밀어 가슴을 쳤다. 

    "내 아들의 팔에 칼자국이 생겼는데,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미실이 금진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다함 오라버니의 사부께서 효혐한 금창약을 발라주셨으니, 너무 심려치 마소서."

   순간 금진이 미실을 쏘아보았다. 미실이 아니었다면, 사다함이 유지의 검에 오른팔을 베일 리가 있겠는가! 금진은 미실이 몹시도 얄미웠지만, 내색할 수는 없어 입술만 깨문채 침묵했다. 미실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 말했다. 

   "하오면, 소녀는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금진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미실을 만류할 생각이 없었다. 미실은 금진과 사다함에게 하직인사를 하고서 대문으로 향했다. 미실이 대문을 나서는 순간, 누군가 미실의 손을 덥썩 잡았다. 미실이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사다함이 아닌가!  

   "사다함 오라버니!" 

   사다함은 미실이 어찌나 고마운지 자신도 모르게 미실의 손을 덥썩 잡은 것이었다.   사다함의 손길이 닿는 순간, 미실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린시절부터 오로지 사다함만을 사모해 왔던 미실이었다. 이 느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두눈이 휘둥그래져 자신을 바라보는 미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다함의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사다함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말했다. 

   "미실아, 참으로 고마웠다."

   사다함과 미실은 두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잡은 손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사다함의 눈길을 느끼자, 미실은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사다함 오라버니도 나를 사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그때였다. 사다함의 귀에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사다함이 고개를 돌리더니 외쳤다. 

   "유지 낭자!" 

   난데없는 유지의 출연에 사다함과 미실이 깜짝 놀라 마침내 잡은 손을 떼었다. 

   "유지 낭자께서 어인 일로......"

   사다함은 말문이 막혔다. 방금전 자신이 미실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유지가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워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정작 유지는 아무 것도 못본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다함 사형의 어머님께 사죄드리러 왔사옵니다."

   사다함이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유지 낭자, 어머님께 사정을 다 말씀드렸소. 이미 끝난 일이니, 이제 마음쓰지 마시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지만......"

   불과 하루만에 유지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유지는 자신의 검이 사다함의 팔에 길다란 검흔을 내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수척해진 유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사다함은 가슴이 아려왔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더는 마음쓰지 마시오."

   유지가 사다함과 미실을 번갈아 보며 두손을 모아 감사를 표시했다. 

   "사형께 감사할 따름이오. 낭주께도...... 감사드리오"

   미실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감사라니요, 모든 것이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유지 낭자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할 따름입니다."

   유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야말로 두분께 송구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사다함과 미실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유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이만 사부님께 가보겠습니다."

   유지가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사다함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나도 사부님을 뵈러 가겠소."

   거의 동시에 미실도 손을 들며 말했다.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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