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집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4. 1. 31. 06:00

 기황후 인터파크 판매처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4화 조정우 역사소설


   유지는 마치 아무 말도 못들은 듯 고개도 한번 돌리지 않고 왔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사다함이 눈짓한 후 유지의 뒤를 따르자 미실도 사다함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유지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 지 순식간에 수십 보나 앞서 나갔다. 유지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자 사다함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미실이 장난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유지 낭자가 소녀를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사다함 오라버니와 제 말을 못들었을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사다함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손을 턱에 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사매의 언행이 여느 때와 사뭇 다르구나! 어찌 그런 것일까?'

   미실은 사다함이 유지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다함에게 미실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지 낭자가 사다함 오라버니를 마음에 둔 듯하옵니다. 모르시옵니까?" 

   사다함이 두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내란 모두 이리도 눈치가 없는 것일까. 미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호호...... 사다함 오라버니...... 사내가 여인의 마음을 그리도 몰라서야......"

   배를 잡고 깔깔 웃던 미실은 문득 사다함이 자신의 진심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다함은 깔깔 웃다가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는 미실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미실아, 어찌 우는 것이냐?"

   미실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눈물을 글썽인 채 사다함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다함이 답답하여 다시 물었다. 

   "어찌 우는 것이냐? 말을 해다오."

   미실이 한동안 입술을 깨물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여인은 원래 눈물이 많은 법이옵니다. 마음쓰지 마소서."

   미실은 사다함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미실이 지소태후의 명으로 궁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아직은 엄연히 세종전군의 부인이 아닌가! 

   사다함은 미실이 궁에서 쫓겨난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줄만 알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실아, 내가 조만간 태후마마를 뵙고 너의 재입궁을 청할 참이다. 태후마마께서는 어지신 분이시니, 나의 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사다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실이 소리쳤다.

   "아니되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미실의 반응에 말문이 막힌 사다함은 깜짝 놀란 눈으로 미실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실은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소녀, 결단코 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사옵니다. 이 혼인은 애초부터 소녀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사오니, 차라리 궁에서 쫓겨난 것이 잘 된 일이옵니다......"

   실로 뜻밖의 말이었다. 출궁당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니! 미실이 세종과 혼인하여 궁에서 행복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던 사다함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다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구나. 이 사다함에게 너는 친누이나 다름없으니, 혹여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부디 말해다오."

    미실이 살며시 사다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리도 든든한 오라버니가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사옵니까?"

    사다함은 자신도 모르게 미실의 손을 꼭 잡았다. 

    "나를 친오라버니처럼 여겨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말할 수 없이 애틋한 사다함의 눈빛. 미실은 자신이 사다함을 사모하고 있는 것처럼 사다함도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생각했다. 

   '사다함 오라버니도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이 틀림없구나! 이제 내 마음은 정해졌다. 오직 죽음만이 나와 사다함 오라버니와의 사이를 가를 수 있으리라!'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걷고 있는 유지의 눈가에 이슬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 이 아픈 가슴을 어찌하랴! 지난 5년간 사다함을, 오직 사다함을 사모해 왔건만, 그 마음을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방금 전 사다함이 미실의 손을 잡은 채 넋이 나간 듯 대문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을 본 유지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다함이 미실을 사모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굵은 눈물 방울이 유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열넷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 유지를 보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사저!"

  비보랑이었다. 당황한 유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후 말했다.

  "사제가 여긴 어인 일입니까?" 

  "종외할머님을 뵈러 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비보랑의 아버지인 비대전군의 어머니가 미실의 외할머니 옥진이었으니,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은 비보랑의 종외할머니였다. 비보랑은 사부인 문노로부터 유지가 실수로 사다함의 오른팔에 검흔을 냈다는 말을 듣고, 급히 금진을 만나러 가다 유지와 마주친 것이다. 유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혹여 저 때문에 가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수고스럽게도 사다함 사형이 나서셔서 해결하신 모양입니다. 하여 사부님께 보고드리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시지 않으시렵니까?" 

   비보랑이 비록 유지의 사제(손아래 남자 동문)였지만, 법흥왕의 아들로, 진흥왕의 이복형 비대전군의 아들인 비보랑을, 유지는 깍듯이 대해왔다. 비보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종외할머님을 뵐 참이라...... 저는 나중에 사부님을 뵙지요."

  유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유유히 걸어가는 유지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이제 겨우 열넷인 비보랑은 유지가 어째서 눈물을 흘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다함 형님의 팔에 검흔이 난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사저가 어째서 눈물을 흘리신 것일까?'

   한동안 곰곰히 생각에 잠겼던 비보랑은 아무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사다함의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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