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왕총아 5화 조정우 역사소설

조정우 2015. 1. 11. 08:00

   왕총아 5화 조정우 역사소설 


   말 두 마리가 끄는 사내의 마차는 그야말로 쏜살처럼 양양에 당도했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온갖 상념에 사로잡힌 왕총아의 시야에 멀리서 사람들이 성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참으로 고마웠소!"

   왕총아가 마차에서 뛰어 내리려는 찰나, 사내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낭자의 차림새로는 백련교도로 의심받을 것이오!"

   그제야 왕총아는 자신이 흰 옷을 입고 붉은 댕기로 머리를 묶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흰 옷과 붉은 댕기는 백련교의 표식이 아니던가! 왕총아는 머리를 묶은 붉은 댕기를 풀어 마차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바로 그때, 사내가 마차에서 뛰어내려 붉은 댕기가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낚아 채 급히 품안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낭자는 경솔하구려! 이 댕기가 청병의 눈에 뜨이면 백련교도 여인이 버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소?"

   바로 그 순간, 사내의 얼굴이 왕총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스무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왕총아의 시선이 끌릴 정도로 준수한 얼굴이었다. 그간 정신이 없어 사내의 준수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왕총아는 사내가 자신의 댕기를 품안에 넣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찌 여인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품안에 넣은 것이요?'라고 말하려던 왕총아는 품안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말을 잇지 못했다. 사내가 품안에서 댕기를 꺼내 왕총아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어차피 낭자가 버린 것이 아니오? 차라리 내게 마차 삯으로 주지 않겠소?"

   마차 삯으로 댕기를 달라는 사내의 말에 실망한 것일까? 왕총아는 돌연 분기가 솟구쳤다. 

   "흥, 호인인 줄 알았더니, 무뢰배로군! 사내가 어찌하여 면식조차 없는 여인의 댕기를 가지려는 것이오?"

   격분하여 쏘아붙이는 왕총아의 말에 사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낭자의 붉은 댕기에 내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이오......"

   실로 뜻밖으로 사내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에 왕총아는 기분이 참으로 미묘했다. 화가 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남녀간의 예의를 모르는 사내의 말에 머리로는 화가 났지만, 생전 처음 받아보는 사내의 진솔한 고백에 마음은 기뻤던 것이다. 왕총아는 할 말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불현듯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좋소! 그 댕기를 마차 삯으로 주겠소! 그간 고마웠소!"

  왕총아는 이 한마디를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성문 앞에 서 있던 문지기는 검을 찬 왕총아를 보더니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검은 무슨 용도요?"

   문지기는 검을 찬 왕총아가 백련교도가 아닐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문지기가 왕총아의 검에 손을 갖다대려는 찰나였다. 귀에 익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낭자는 아미파의 제자니, 검의 용도를 물어볼 것도 없소."

   다름 아닌 그 사내였다. 사내는 마차에 탄 채 왕총아의 바로 뒤에 있었다. 문지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낭자는 그만 가보시오."

   성문을 통과한 왕총아는 자신이 아미파라는 사실을 아는 그 사내가 몹시 수상쩍었으나, 어머니 걱정에 곧바로 청룡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청룡사에서 왕총아를 마중나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백부 왕충정이였다. 왕총아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다짜고짜 물었다. 

   "백부님, 어머님은?"

   왕충정은 고개를 떨구며 길게 탄식했다. 

   "아! 네 어머니는......"

   마음이 급해진 왕총아가 절규하듯 물었다. 

   "어찌 되셨습니까?"

   왕충정은 다시 길게 탄식하다 마침내 운을 떼었다. 

   "아...... 네 어머니는 관아에 자수하셨다."

   왕총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관아에 자수했다니! 왕총아는 깜짝 놀라 두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급히 물었다. 

   "어머님이 자수하시다니요?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세요."

   왕충정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 왕총아의 어깨를 잡은 채 입을 열었다. 

   "너희 모녀가 백련교도라니? 대체 어찌된 노릇이냐? 너희 모녀를 수배한 방을 보았느냐?" 

   마음이 급한 왕총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네 어머니는 너희 모녀가 백련교도가 아님을 밝히기 위해 관아에 자수한 것이다."

   왕충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총아는 절규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되옵니다! 썩어빠진 관아를 어찌 믿겠습니까? 자수라니! 결단코 아니되옵니다!" 

   왕충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것이 네 어머니의 뜻이니, 여기서 소식을 기다려 보거라."

    이성을 잃은 왕총아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벌써 관아에 자수하신 것입니까? 얼마나 되었습니까?"

    왕충정은 한손으로 왕총아의 어깨를 잡은 채 서신으로 보이는 종이를 내밀었다. 

    "엊그제, 네 어머니가 방을 보고 관아에 자수하였다고 이곳의 주지 스님이 내게 찾아와 이것을 전하더구나."

    왕총아가 종이를 펼치는 순간, 마침내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지고 말았다. 

    '혹여 어미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이 청룡사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거라.'

   글을 읽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진 왕총아는 털썩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하고 또 절규했다.

   "어머님! 소녀가 어머님없이 산다한들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어머님......"

   절망에 빠진 왕총아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정신을 차린 왕총아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쥔 채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짐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거늘 결단코 어머님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왕총아는 감옥을 부수어서라도 어머니를 구출할 작정이었다. 결심을 굳힌 왕총아는 고개를 숙이며 왕충정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백부님, 소녀는 이만 떠날까 하오니, 부디 옥체 보중하소서!"

    왕충정은 왕총아가 뭔가 큰 일을 벌일 것 같아 불안한 눈초리로 물었다. 

    "대체 어쩔 작정이냐?"

    "무림의 동지들에게 도움을 청해 저희 모녀가 백련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밝힐 것이옵니다!"

   왕총아는 아미파를 찾아가 사부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현재로서는 사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왕충정이 채 말릴 새도 없이 왕총아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 버렸다. 

   저의 신작 소설 [왕총아] 북팔 웹소설 '떠오르는 작가'에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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