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이순신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9화

조정우 2016. 2. 6. 08:00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9화 


    이순신을 찾아온 내산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방씨가 눈에 맞아 감기라도 걸릴까봐 걱정된 이순신은 시동 돌쇠를 불러 말했다.


    "부인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거라."


   이미 날이 제법 어두워져 돌쇠는 휏불을 켰다. 돌쇠의 손에 들린 휏불이 방씨의 얼굴을 비치는 순간, 이순신은 방씨의 머리가 히끗히끗해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순신이 세번째 백의종군에 처해 여수로 발령나자 두 아들 이회와 이울과 함께 여수에 정착한 방씨는 늘 날이 저문 후에야 이순신을 찾아오곤 했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히끗히끗해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 무술년(1598년) 때까지만 해도 새까많던 방씨의 머리가 어느새 히끗히끗해진 것을 보자 이순신은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휏불을 켠 돌쇠가 방씨를 집으로 모시고 가려 하자, 방씨가 이순신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영감, 저는 이만 떠나보겠사오니 편히 쉬소서."


   눈을 맞으며 면사첩을 들고 있는 방씨의 손이 마음에 걸린 이순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부인, 면사첩은 내가 보관하겠소. 이리주시오."


    방씨는 면사첩이 눈에 맞아 젖지 않도록 가슴에 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면사첩은 제가 보관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방씨는 혹시라도 이순신이 면사첩을 없애버릴까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방씨가 면사첩을 건네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이순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씨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알겠소. 부인, 잘 가시오."


    방씨가 휏불을 든 돌쇠와 함께 떠나자 이순신은 방씨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방씨가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눈발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굵어져 있는 가운데, 난모를 쓴 두 여인이 눈발을 맞으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갈수록 거세지는 눈발에 발이 미끄러진 듯 난모를 쓴 두 여인 중 색동옷을 입은 여인이 눈길에 넘어지자 흰옷을 입은 여인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괜찮으시옵니까!"

   

    돌부리에 부딛치기라도 한 듯 색동옷을 입은 여인은 '아...' 하고 외마디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 손과 옷에 묻은 눈을 털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


   색동옷을 입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이순신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내산월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거기, 산월이가 아니냐?"


    "통제공 대감!"


   병신년(1596년)에 거북선을 제조하는데 보태라며 전재산을 기부한 것을 인연으로 이순신과 부녀 같은 관계가 된 한양의 명기 내산월이었다. 한때 이순신은 자신의 셋째 아들 이면과 내산월을 짝지어주려 했으나 이면이 비명횡사하자 내산월은 시집가지 않고 한양으로 돌아가 기생으로 살아왔다.


    이러한 내산월이 이순신을 찾아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만, 이순신은 애써 기쁨을 감추며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산월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내산월은 자신을 무덤덤한 얼굴로 대하는 이순신이 야속한 듯 반문했다. 


    "제가 이곳에 왜 왔겠사옵니까?"


    내산월이 반문하자 이순신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산월이 네가 나를 만나러 온 것이냐?"


    내산월은 조금도 지체없이 대답했다. 


    "통제감 대감께서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한양의 집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옵니다."


    내산월은 다시는 이승에서 볼 수 없을 줄로만 알았던 이순신을 만나게 된 것이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산월의 말에 이순신은 무언가가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소식이라고 집까지 처분하고 왔단 말이냐?"


   내산월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순신이 야속한 듯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말했다.


    "통제공 대감께서 이곳에 계신데, 제가 어찌 한양에 살 수 있겠사옵니까?"


    이순신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너를 면과 짝지어주려 했건만...... 면이 세상을 떠났으니, 너와 나는 이제 완전히 남남이 된 것이 아니냐? 헌데, 내가 이곳에 있는 것과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내산월이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했다.

   

    "통제공 대감은 제게 아버님과도 같은 분이시옵니다. 하온데, 통제공 대감께서 이곳에 계신 것이 어찌 저와 상관없다 말씀하실 수 있으시옵니까?"


    이순신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남남일 뿐더러, 나는 이제 통제사가 아니라 한낱 백의종군하는 사람일 뿐이다. 더 이상 나를 통제공 대감이라 부르지도 말고, 나를 더 이상 만나러 오지도 말거라."


    내산월은 이렇게 말하는 이순신이 말할 수 없이 야속했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지금은 돌아가겠으나, 대감께서 백의종군에서 풀려나실 때까지 기다리겠사옵니다."


   내산월은 이순신에게 고개를 숙여 하직 인사를 하고서 함께 온 여종 옥매와 함께 떠났다. 이순신은 내산월이 멀리 떠나버린 후에서야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산월아, 잘 가거라. 부디, 네가 마음을 고쳐 먹고 한양으로 돌아가 좋은 혼처를 찾기를 바라겠다."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퓨전 더 비기닝'에 출품했습니다. 현재 51화 연재 중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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